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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기영 Jan 20. 2019

나 답게 사는 법


"황 차장님, 행복하세요?"

사무실 문을 나서려던 동료가 발걸음을 멈추고 내게 물었다.


"네?"

"지금 행복하시냐고요"


뜬금없이 이게 무슨 소리인가. 나는 오늘도 어김없이 야근을 하기 위해 이른 저녁밥을 먹고 와서 막 자리에 앉은 참이었다. 내가 지금 행복하냐고? 허겁지겁 욱여넣은 밥이 체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대답을 못하고 물끄러미 동료를 바라보았다. 그가 말을 이었다.


"제가 볼 때는 차장님 답게 살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서 행복해 보이지 않아요.... 그러니까 황기영으로 살 수 있도록 한번 노력해 보세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사느라 행복이라는 말을 잊고 살고 있었다. 아니 일을 하면서 행복이라는 말을 떠올린다는 것 자체가 사치스러운 것이었다. 말을 마친 동료는 멍하게 있는 나를 뒤로하고 유유히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영업을 해 보고 싶었다


이 회사는 나의 두 번째 직장이었다. 9년 전 면접 당시, 왜 엔지니어 직군으로 지원했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사실은 영업을 하고 싶은데 아무래도 기술을 좀 배우고 영업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기술직으로 지원했노라고. 면접관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외국계 IT회사에 엔지니어로 입사했다. 컴퓨터의 ㅋ 자도 모르던 내가 시스템 엔지니어로 일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휴일이면 근처 도서관에 가서 기술서적을 뒤적였고, 선배들을 따라다니며 닥치는 대로 배우려고 노력했다. 워낙에 기초가 없었기에 노력한 만큼 기술이 늘지는 않았다. 그래도 열심히 공부하고 일했다. 하루빨리 숙련된 엔지니어가 되고 그것을 발판으로 훌륭한 영업사원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기회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입사 2년 차에 영업을 해 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같은 지역 사무실에 있던 영업담당이 다른 곳으로 가면서 나를 후임으로 점찍은 것이었다. 당연히 해보겠다고 하고 부서이동을 추진했다. 하지만 팀장님이 허락을 해 주지 않았다. 입사한 지 2년이 채 안된 주제에 팀을 옮기는 것이 가당키나 하냐는 이유였다. 그 뒤 다른 영업팀으로 한 번 더 시도를 했고 한번 더 실패했다.


몇 년 뒤 콜센터 운영 업무로 자리를 옮겼다. 크게 보면 기술지원 조직 내에 있었고 아태평양 본사의 지령(?)을 받아 한국 콜센터의 오퍼레이션을 담당하는 내근직이었다. 필드 엔지니어 생활에 익숙해져 있던 내게는 색다른 업무였다. 내가 부서를 옮기기 전에 전임자가 퇴사해버렸기 때문에 인수인계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 당연히 처음 몇 개월은 많이 힘들었다. 맨땅에 헤딩하는 고통의 시간들이 지나고 차차 업무에 익숙해지면서 일이 재미있어졌다. 일상적인 운영 업무 외에 새로운 정책을 만들거나 전략을 세우는 등의 일도 하다 보니 하루하루가 즐거웠다.


2년이 다 되어 갈 무렵, 옆 부서의 서비스 영업팀에 자리가 하나 생겼다는 소식을 들었다. 또 마음이 흔들렸다. 그 시절의 나는 영업에 대한 막연한 환상 같은 것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며칠 동안 고민을 한 후에 지원을 했다. 운 좋게 합격을 했고 당시의 팀장님을 어렵게 설득해서 부서이동에 대한 승인을 받았다. 드디어 꿈에 그리던 영업을 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꿈을 이루었지만 행복하지 않았다


최고가 되겠다는 푸른 꿈을 안고 "기업의 꽃"이라 불리는 영업을 시작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완전 영업체질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곳에서의 일은 녹녹지가 않았다. 우선 프로세스가 매우 복잡했고 여기저기 신경 써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았다. 숫자 하나 잘못 적으면 수억 원이 왔다 갔다 했으므로 견적서 하나 꾸밀 때도 온 신경을 집중해야 했다. 그야말로 손 떨리는 순간의 연속이었다. 공식 서류를 만들 때마다 여러 부서의 승인을 받아야 했고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독촉을 위한 아부를 해야만 했다. 제안 작업을 하는 기간에는 야근이 이어졌다. 밤늦도록 제안이나 계약 관련된 업무를 하고 나면 아침 일찍부터 영업보고를 위한 미팅에 참석해야 했다. 힘든 나날이 무한 반복되었다.


영업사원으로서 고객을 상대하는 일도 만만치가 않았다. 한 번은 고객한테 출입금지를 당한 일도 있었다. 서비스 계약을 맺기 위해 견적서를 가져다주었는데, 고객이 각 서비스의 항목별로 원가를 알려 달라고 했다. 회사의 영업기밀이었으므로 알려 줄 수가 없었다.


"부장님, 죄송하지만 그런 내용은 저희 회사 기밀이어서 알려드리기가 곤란합니다"

"뭐? 아니, 고객이 얘기하면 알려주는 시늉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냐? 당신 내일부터 여기 출입금지야"


그렇다. 고객의 기분이 상하지 않게 에둘러서 잘 얘기를 하거나 일단 알아보는 시늉이라도 했어야 했다. 영업 초보였던 나는 큰 실수를 저지른 것이었다. 의사 결정권자로부터 출입금지 명령을 받았으니 눈앞이 캄캄했다. 당장 걸려있는 계약건도 차질이 생길 판이었다. 고민을 하다가 꾀를 하나 내었다. 다른 영업사원이 그 고객을 접대하는 자리에 찾아간 것이다.


"안녕하십니까 부장님"

"어? 뭐야. 당신 내가 출입금지라고 하지 않았어?"

"아 네, 맞습니다. 그런데 그건 낮에 사무실로 오지 말라고 하신 거잖아요. 지금은 밤이잖습니까. 한잔 받으세요 부장님"

"어? 허허. 이 친구 이거... 그래 일단 한잔 줘 봐요"


그 회식자리 후 몇 달이 지난 뒤에 10억이 넘는 서비스 계약서에 도장을 찍을 수 있었다. 사실 고객을 접대하는 일도 나에게는 조금은 버거웠다. 아직은 젊었으므로 술을 잘 마셨고 또 좋아하기도 했지만 고객과 함께 하는 자리가 즐거울 리가 없었다. 고객 중에는 소주나 양주를 맥주잔에 가득 채워서 한 번에 마시게 만들거나 폭탄주를 억지로 권하는 이들도 있었다. 마시고 싶지 않았지만 거절할 수가 없었다.


일이 많거나 힘든 고객을 상대하는 것은 그래도 견딜만했다. "한국에서" 영업을 하다 보니 내 생각과는 다른 방식으로 일을 처리해야 하는 경우가 많이 발생했다. 비즈니스 목표를 달성한다는 명목으로 전에는 생각할 수 없었던 방식으로 일을 하도록 강요를 당했다. 처음 해 보는 일이라 모르는 것 투성이었음에도 누구 하나 차분히 멘토링을 해 주는 사람도 없었다. 어렵고 힘들고 내 가치관과 맞지 않는 일을 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일이 전혀 재미있지가 않았다. 사실 재미없다는 것을 깨달을 겨를도 없었다. 일이 워낙에 많았기에 그냥 밀려드는 일을 처리하기에 바빴다. 그리고 늘 우울했다.


그래서 나답게 살기로 했다


동료에게는 그런 내가 안쓰럽게 보였던 것 같다. 행복하냐는 질문을 받았던 그 날, 퇴근길 버스 안에서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나는 무얼 하고 있는 건지, 이 일은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인 건지, 왜 이렇게 힘이 드는 건지, 그리고 나는 지금 행복하게 살고 있는지... 부서를 옮긴 지 일 년이 채 못되었던 그때, 나는 '나답게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몇 달 뒤, 원래 있던 부서의 서비스 기획팀으로 되돌아갔다.


나 답게 살기 위해서는 우선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야 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또 싫어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사람에 따라 다를 수는 있지만 대부분은 업무 자체가 즐거워서라기 보다는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한다. 취미를 직업으로 가지고 있지 않는 이상 내가 좋아하는 일만 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취미로 생계를 유지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고, 아무리 취미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직업이 된다면 그 즐거움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어찌 되었던 사람들에게 일은 돈벌이의 수단이다. 돈을 벌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이지만 너무 힘들고 재미가 없으면 삶은 고통스러워 진다. 특히 일로 인해 나답지 않은 생각이나 행동을 해야 한다면 더욱 그렇다. 적어도 업무로 인해 내 가치관을 바꿔야 하는 경우는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누구나 하고 싶은 일이 있다. 그걸 꿈이라고 표현해도 좋겠다. 나는 한동안 영업을 해 보고 싶다는 꿈을 꾸었었다. 몇 번의 도전 끝에 그 일을 해볼 수 있었다. 하지만 영업은 내가 잘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었다. 실패를 경험했고 그 일을 계기로 내가 좀 더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은 사실 별개의 문제이다. 모든 사람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내가 할 수 있는 일 중에서 가장 재미있고 잘할 수 있는 일, 가장 내 가슴을 뛰게 하는 일을 찾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겠다. 그런 일을 하는 동안에는 적어도 '나 다움'을 지킬 수 있을 테니까.


나답게 살도록 해 보라고 충고를 해 준 10년 전의 그 동료 덕분에 나는 시간을 더 낭비하지 않고 내가 조금 더 행복할 수 있는 일을 찾아갈 수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 중에서 좀 더 잘할 수 있고 좀 더 재미있는 일 말이다. 그 이후에는 때때로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곤 한다. 지금 나는 얼마나 행복한지 그리고 충분히 나 답게 살고 있는지.




*Cover image by @bkotynski | unsplas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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