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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기영 Nov 11. 2020

곧 반백 살

거울을 본다. 아저씨가 한 명 서 있다. 희끗희끗 흰머리가 늘어가고 눈가에는 주름이 가득하다. 언제부터인가 입가에 생기는 팔자주름을 펴보려 볼에 한껏 공기를 불어 놓곤 하지만 다 소용없는 일이다. 이제 곧 반백 살이 될 처지에 놓여있는 아저씨이니까.


운동은 꾸준히 하려고 노력해 왔다. 회사가 멀어 새벽에 잠깐 동안 운동할 짬이 난다. 달리기도 하고 덤벨도 들면서 몸을 단련해 본다. 한 시간도 안 되는 짧은 운동이지만 이 마저도 일주일에 두세 번 하면 많이 하는 것이다. 최근에는 스쿼트를 좀 욕심내서 하다가 허리를 다쳤다. 코로나 상황과 맞물려 그나마 조금씩 하던 운동을 쉬게 되었다. 또래에 비해 아직 심하게 나오지는 않았지만 뱃살은 늘어만 가고 근육은 쪼그라들고 있다.


오래된 속옷을 버리고 새 속옷을 이것저것 구입했다. 편하게 늘어지는 속옷 말고 몸에 착 달라붙는 것들로 인터넷 쇼핑을 했다. 입어보니 어떤 것은 몸에 좀 불편하기는 한데 대체로 다 잘 맞는다. 마음에 드는 속옷을 입으니 왠지 모르게 조금 젊어진 것 같다. 아무도 보지 않지만 약간의 자신감도 생기고 몸이 더 좋아진 것 같다는 착각도 하게 된다. 앞으로도 이 브랜드만 입기로 해본다. 서투르지만 온라인 쇼핑몰에서 외출복도 구입할 수 있게 되었다. 옷은 매장에서 입어보고 사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었지만, 코로나 덕분에 온라인 매장으로 눈길을 돌렸다. 몇 번의 실패 끝에 이제는 제법 근사한 옷을 고를 수 있는 안목이 생겼다.


요리 실력은 조금씩 늘어 가는 것 같다. 인터넷을 찾아서 따라 하면 웬만한 것들은 대충 흉내를 낼 수 있다. 어떤 요리를 해 먹어야 할지 아이디어가 생기지 않아 늘 고민이다. 그럴 때면 냉장고에 코를 박고 이것저것 뒤적인다. 요리를 하며 발견한 사실이 하나 있다. 굳이 조미료를 넣지 않아도 싱싱한 재료만 있다면 소금, 간장, 설탕 등의 기본양념만으로도 충분히 맛있는 요리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단조로운 맛이 될 수는 있겠으나 기본 간 만 잘하면 근사한 한 끼 식사가 된다. 피시소스를 조금 넣으면 국이나 볶음 요리의 풍미가 훨씬 좋아진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젊은 시절에는 알지 못했던 것들이다. 아니 알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이 맞겠다.


스무 살 즈음의 나는 내가 서른 살이 되면 대단한 사람이 되어 있을 거라 생각했다. 어쩌면 회사를 다니거나 자신만의 일을 하는 서른 살들이 대단해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서른 살이 되었을 때 나는 그냥 미숙한 직장인이었다. 회사생활에 적응해 가며 주어진 일을 정해진 시간에 마치려고 애쓰는 그런 흔한 직장인 말이다. 그래도 마흔 살이 되면 무언가 되어 있겠지 라는 생각으로 삼십 대를 보냈다. 마흔 살에도 나는 여전히 직장인이었고 여전히 대단한 사람이 아니었다.


쉰을 바라보는 나이가 된 지금도 나는 회사를 다니고 있고 여전히 대단하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여태까지 한 번도 "나는 왜 이 정도밖에 안되지?"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은 없다. '이 정도밖에 안 되는 나'를 인정하기 때문이다. 젊은 나이에 스타트업을 차려 떼 돈을 번 사업가나 회사에서 엄청나게 잘 나가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도 쟤네들은 좋겠네 하고 그냥 넘긴다. 부러움, 시기심, 질투심 따위가 생겨 나지 않는다. 나는 나의 삶, 그들은 그들의 삶을 살고 있을 뿐 무엇이 더 좋고 나쁠 수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보잘것없는 중년의 정신승리라고 해 두자.


대단한 무엇이 되지는 못했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내가 할 수 있는 일 중에서 좀 더 잘할 수 있고 더 하고 싶은 일을 해가며 살고 있다. 그래서 한 곳에 머무르지 않으려 노력한다. 한 업무에 익숙해질 때가 되면 새로운 일을 찾아 나서곤 한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날로부터 이틀 뒤에 새로운 부서로 인사이동이 예정되어 있다. 이직을 한 지 2년 반 만에 사내에서 다른 업무로 이동을 하는 것이다.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살며, 더 재미있는 일을 찾아가는 여정을 커리어라고 나는 정의한다. 무엇이 되고 싶은지 보다는 무엇을 하고 싶은지가 더 중요함은 말할 것도 없다.


가는 세월을 막을 수 없으니 주름이 지더라도 좀 더 멋있게 지도록 자주 웃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허리 디스크 판정을 받았지만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운동을 다시 시작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늘 해 먹는 것 말고 좀 더 근사한 요리도 도전해 보려고 한다. 피부 노화를 막아준다는 로션도 좀 찾아봐야겠다. 그 옛날 진시황처럼 불로초를 찾아 나서고 싶지만 그런 것이 있을 리가 없다. 어쩔 도리 없이 늙어야 한다면 적어도 나답게 늙고 싶다. 세월의 흐름을 받아들이고, 삶의 여정 자체를 즐기면서 말이다.




*cover image by pixel2013 |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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