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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 가게를 지나야 출구

선물 가게 주인은 누구?

by 허진혁

<선물 가게를 지나야 출구>는 돈이 된다면 반문화예술까지도 게걸스럽게 집어삼키는 상업주의와, 이런 상업주의와 결탁한 현대 예술계, 그리고 현대 예술이 만들어놓은 선물 가게에서 기념품을 사며 사진을 열심히 찍어대는 관객의 모습을 티에리라는 ‘카메라를 든 얼간이’가 마돈나와 협업할 정도로 유명한 ‘Mr.BrainWash(정말 촌스러운 이름이다)’라는 ‘아티스트’로 둔갑하는 과정을 통해 드러내고 있다.


티에리라는 하나의 작업물도 없는 철저한 무명의 작가를 이 시대에 등장한 천재 예술가로 둔갑시켜준 이들은 바로 예술계 권위자들(상업주의에 경도되었거나, 또는 정말 예술적 가치가 있다고 믿는) – 유명 잡지, 예술가, 비평가, 큐레이터, 미술 시장 관계자 등 – 이다. 이름하여 ‘Mr.BrainWash 탄생 신화’를 만들어낸 것이다. 티에리는 마치 무심코 비트코인을 샀다가 하루 아침에 부자가 되는 것처럼, 운 좋게도 상업주의가 거리 예술을 먹어치우는 상황 속에 있었기 때문에 커다란 성공이란 선물을 얻을 수 있었다.


예술계의 권위를 믿는 관객은 티에리를 신진 천재 화가라고 철썩같이 믿는다. 그리곤 티에리의 작품에서 무엇인가 대단한 것이 있다고 생각하며 나름대로의 감상을 만들어내며 자신의 예술적 허영심을 충족시킨다. 그 작품에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면 자신의 예술적 감각, 지식이 부족하다고 여겨지기 때문에 관객은 최소한 무언가가 느껴진다는 감상을 억지로라도 짜낼 것이다.


다르게 접근해 보자.

뱅크시는 영화 말미에 티에리의 깜짝 성공을 보며 자신의 의견을 내비친다. “그래피티 아티스트들을 몇 년 동안의 고심과 노력 끝에 자신의 스타일을 정립한다. 티에리는 그런 모든 과정들을 넘어 버린 것 같다. 앤디 워홀은 의미 있는 상징을 대량 복제를 해 무의미하게 만들면서 자신에게 상징성을 부여했다. 하지만 티에리는 정말로 아무 의미가 없게 만들어버렸다.” 나는 이 발언에 동의하는 바이지만, 이런 가정을 해 보면 어떨까? 두 개의 그림이 나란히 전시되어 있다. 한쪽에는 정말 몇십 년 동안 자신의 예술 세계를 구축하고 발전시켜 온 작가의 그림이 걸려있고, 다른 한쪽에는 제2의 티에리가 그린 그림이 걸려 있다. 작가에 대한 설명은 찾아볼 수 없다. 작품을 보러 온 관객들이 나란히 걸린 두 그림을 본다. 놀랍게도 많은 수의 관객들이 제2의 티에리의 그림에 열광하고 심지어 그 중의 몇몇은 그 작품을 통해 피카소의 그림에서도 보지 못한 특별한 영감을 받았다고 자신 있게 주장한다. 이런 경우라면 무엇이 더 우수하고 수준 높은 예술 작품인가? 예술을 이해하지 못하는 대중의 무지를 탓해야 하는가? 문득 뱅크시의 자조 섞인 인터뷰가 떠오른다. “어쩌면 티에리는 천재일 수도 있다. 아니면 예술이 농담 따먹기일수도 있다.”


지금의 포스트 모더니즘 시대에선 도대체 무엇까지 예술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실험이 계속 진행중이다. 다원적 사고를 중시하는 요즘에는 “무엇이 예술이고 무엇이 예술이 아니다”라는 확고한 합의가 이루어지기 어렵다. 누군가가 “자신 휘하에 보조 작가 20명을 거느리고 시키기만 한다면 그게 무슨 작가냐”라고 평한다면 상대는 “이것도 예술이 될 수 있다. 당신은 편협한 사고를 가진, 다원적 가치를 중시하지 않는, 권위적인, 너는 스노비다!”라고 되받아칠 수도 있다.


아름다움의 본질에 대해 연구하는 철학의 한 분파인 미학은 예술의 발달과 그 역사를 같이 했지만 아직까지, 아니 영원히 아름다움의 본질이 무엇인지 명쾌하고 절대적인 해답을 내놓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미학이란 학문은 계속 발전하며 무엇이 아름다운 것이고 예술적인 것인지 설명하려는 노력을 계속할 것이다. 이는 규명하고 범주화하고 우열을 매기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당시대의 예술을 규명하는 지배적 이론과 사상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절대 절대적이지 않으며 시대적 흐름에 따라 변모해 나간다.


절대적 답은 없기에, 또는 있지만 찾을 수 없기에 우리는 과거 예술의 역사를 되돌아본 후, 확신하는 자신만의 답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믿는 예술을 해야 한다.


또 한가지 가정. 누군가가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LA 미술 잡지를 읽다가 특집 기사로 티에리의 전시가 실린 것을 보게 된다. 기사를 보니 티에리라는 신진 작가가 세간의 주목을 받는 핫 루키로 떠올랐단다. 흥미가 생긴다. 이윽고 몸을 일으켜 몸 단장을 하고 전시장으로 향한다. 막상 가보니 <스카페이스> 속 알 파치노가 장간감 총을 가지고 쏘고 있고, 여러 유명 인물들이 유명 팝아트 작품 속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작품들을 볼 수 있다. 흥미롭고 여러 영감이 떠오르는 생각이 들면서 “이것이 팝아트인가보다! 티에리는 아주 재치있고 다채로운 작품을 만드는 뛰어난 작가구나!”라고 느낀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본 후에 전시를 보러 간다면 정반대의 감상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 지점에서 <선물 가게를 지나야 출구>라는 영화의 형식 자체가 가지는, 영화 속 의미와 공명하는 재미있는 포인트를 짚어볼 수 있다. 위에서 주장했듯이 영화 내용 상에서 티에리를 괴짜 천재 예술가로 만들어준 데에는 예술계의 권위가 혁혁한 공을 세웠다. 시선을 돌려 영화의 형식적 짜임새를 살펴보면 감독이 주관적, 의도적 편집을 통해 티에리를 ‘왕이 된 거지’라는 인물 유형의 하나로 표현해내는 것을 알 수 있다.


감독인 뱅크시는 티에리를 ‘인생에서 중요한 순간을 지켜보지 못하고 배제되었던 경험에 기인한 결핍’에 의해 ‘기록하는 것에 강박적으로 매달리는 인물’로 묘사한다. 등장인물의 고유한 특성을 만들어낸 것이고 그를 이해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이후 그가 기록하기를 집착하는 대상이 가족의 일상, 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 (불특정 다수)에서 거리 예술가들, 그리고 뱅크시(특정 인물)로 변하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뱅크시를 동경하는 티에리는 뱅크시의 조언에 따라 직접 아티스트가 되기로 한다. 아티스트로의 그의 도약은 알다시피 대성공을 이룬다. 아무도, 심지어 본인조차도 예측하지 못할 만큼이나. 거지가 한순간에 왕자가 돼버린 것이다.

이러한 서사의 흐름은 관객이 티에리에 대해 ‘카메라를 든 정신병자’, ‘어설프게 아티스트 놀이하는 얼간이’, ‘거짓과 허풍을 늘어놓는 바보 천치’, ‘실력이 아닌 운으로 성공한 자’, ‘예술을 모욕하는 사기꾼’ 등으로 생각하게 만든다. 이와 같은 관객의 인식, 감상은 감독의 의도적, 주관적 편집에 의해 형성된다. 티에리가 실제 그러한지 아닌지는 이차적인 문제이다. 중요한 것은 감독이 인물을 그리는 방식이며 그 방식이 다큐멘터리 형식을 띄고 있다는 것이다.


다큐멘터리는 완전한 객관성을 획득할 수 없다는 것이 주류의 의견이다. ‘벽에 붙은 파리’로 표현되는 ‘다이렉트 시네마’ 운동에 의해 탄생한 영화들도 완전한 객관성을 가지는 것에 실패했다. 촬영 대상, 인터뷰 대상, 인터뷰이에 대한 질문, 편집 등 다큐멘터리 영화를 구성하는 요소들이 주관성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당연히 이 다큐멘터리 영화는 뱅크시의 영화이기 때문에 관객은 티에리를 인식할 때, 뱅크시의 주관, 의도에 영향받지 않을 수 없다. 뱅크시가 자신을 어떤 위치에 두었는가를 서사적으로 살펴본다면, 그는 신비롭고 대단한, 그를 만나고픈 주인공 티에리의 긴 여정 끝에 만나게 되는 대상으로 그려진다. 극의 흐름은 자연스럽게 관객이 뱅크시의 작업과 작품들이 대단한 위상과 권위를 가진 것이라고 생각하게 한다(그것이 진짜 사실인지 아닌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플롯이 주는 효과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이다). 뱅크시가 권위자로 상정된 이상 영화상에서, 또 몰입해서 보고 있는 관객에게는 그의 말 한마디조차도 커다란 의미와 권력을 가진다.


뱅크시는 다큐멘터리라는 극 영화 형식과 그 서사 방식을 통해 가랑비에 옷 젖듯 서서히 관객이 자신이 의도하는 대로 느끼게끔 대상을 묘사하고 자기 자신에게는 권위를 부여함으로서 영화적 요소 – 관객의 감정이입, 등장인물의 성격, 이미지 조직양식 - 를 지배하는 절대적인 창조자의 지위를 획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기에 메타적 관점에서 본 영화의 서사 방식과 영화의 이야기에서 드러나는 의미 - 현실 세계에서 예술계의 권위자들이 대중을 상대로 하는 권력 행사 – 는 서로 닮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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