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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칭 포 슈가맨>에서 서사적·극적 편집의 대치 효과

by 허진혁

서칭 포 슈가맨은 극적이다. 애초에 이 다큐멘터리가 소재로 다루는 내용이 왠만한 감동 실화를 뛰어넘을 만큼 극적이기 때문에 자연히 이 다큐 영화 또한 극적일 수밖에 없다. 이에 더해 감독은 ‘편집’을 적극 활용하여 서사성과 극적 긴장감을 한층 더, 단계적으로 끌어올렸다.


첫 장면부터 약 45분까지 주인공인 로드리게즈는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맨 첫 장면에서는 남아공에서 로드리게즈는 전설적인 인물인데 반해 그의 정체에 대해서는 오리무중이라는 발언이 드러나며 로드리게즈라는 인물에게 신비감을 부여한다.


이후 1968년 미시간 주 디트로이트의 배경에서, 로드리게즈와의 첫만남을 기억하는 음반 제작자의 인터뷰로 이어진다. 그들은 로드리게즈를 음침한 도시의 더러운 바 안에서 등을 돌리고 신비한 목소리와 기타로 노래하는 음유시인으로 비유한다. 심지어 그의 작사 실력을 밥 딜런에 비교하기까지 한다.


감독은 이 장면에서 관객들이 헛웃음을 지으며 과장된 미화라고 평가할 것을 우려했는지 모른다. 그래서인지 바로 로드리게즈가 바를 나와 걸어가는 애니메이션과 그의 노래를 담은 마치 한편의 뮤직비디오 같은 영상을 삽입했다. 이 노래를 들으면서 관객들은 개인의 내면에 대한 통찰력이 돋보이는 노래의 뛰어난 가사를 들으며 로드리게즈의 훌륭한 작곡, 작사 실력을 어느정도 납득할 수 있다. 이후에도 감독은 영화의 진행 중간중간 마다 남아공과 디트로이트의 도시 풍경을 배경으로, 아니면 로드리게즈가 길을 걷는 장면과 함께 그의 노래를 들려준다.


1968년의 디트로이트에서 현재 시간의 디트로이트로 넘어오면서 영화는 이어서 ‘몰락해 황폐해진 도시 안에 있는 방랑자, 도시의 시인’의 이미지로의 로드리게즈를 만들어낸다. 그의 동료와 음반 제작자의 인터뷰 등을 통해. 음반 제작자는 그의 노래는 완벽했지만 음악적 성공이 철저하게 실패한 것에 관해서는 정말로 의문이라고 발언한다. 두 번째 앨범 음악 제작자 또한 “많은 앨범을 프로듀싱 해왔지만 그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라는 말을 하며 그의 음악적 재능을 상당히 높게 평가한다. 그러면서 그의 노래 가사로 하나의 스토리까지 만들어낸다. 그 스토리란 “크리스마스 2주 전에 일자리를 잃었다”라는 가사가 예고라도 하듯 두 번째 음반이 실패하자 로드리게즈가 기획사에서 내쳐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감독은 인터뷰 대상자가 로드리게즈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인물들이므로, 이들 발언의 정당성을확보하고 관객들을 납득시키기 위해 한 가지 장치를 고안한다. 인터뷰 대상자들의 발화(로드리게즈를 찬양하는)뒤에 로드리게즈의 노래를 담는 것이다. 두괄식 문장에서 주장이 있고 근거가 따라오듯이 인터뷰가 주장으로, 그의 노래가 근거로 작용한다.


디트로이트에서의 로드리게즈 그리기가 마무리되며 이제 영화는 남아공으로 넘어온다. 로드리게즈가 왜, 어떻게 남아공에서 유명해지게 되었는지를 파헤친다. 영화에서 로드리게즈의 정체를 찾던 당사자들은 “70년대에 중산층 가정에는 3개의 앨범은 꼭 있었는데, 그 중 하나는 로드리게즈의 앨범”이라고 이야기하며 로드리게즈는 그 시대 남아공에서 슈퍼스타 그 이상의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발언한다. 그들의 발언에 따르면(아마도 진실이겠지만)당시 남아공에서는 아파르헤이트헤이트 정책이 시행되고 있었고, 단절되고 억압받는 사회적 분위기에서 로드리게즈의 음악은 남아공 사람들에게 자유와 해방의 메시지를 전하며 반체제 운동의 촉발제가 되었고 심지어는 많은 아프리카 뮤지션들에게 영감을 주며 아프리카 대중음악의 판도마저 뒤바꾸게 만들었다.


로드리게즈의 음악이 남아공 사회와 긴밀하게 소통될 수 있었던 까닭을 짚어보자면, 과거에는 찬란했지만 변화의 흐름을 이기지 못하고 낡아버리고 버려진 디트로이트라는 도시라는 배경에서 거주하는 로드리게즈는, 죽은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내면 속에 있는 우울, 좌절, 소망 등에 주목하며 노래를 만들어냈고, 이 노래는 아파르트헤이트라는 극단적인 인종 분리 정책 하의 불안정한 남아공 사회의 분위기와 공명했기에 로드리게즈의 노래는 남아공에서 열렬한 사랑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남아공에서의 슈퍼스타로서 로드리게즈를 조명한 후, 이제는 ‘슈가맨’을 ‘찾기’ 서사가 진행된다. 로드리게즈의 열광적인 팬인 두 인물이 계기를 통해 로드리게즈라는 인물의 정체가 무엇인지 궁금해하며 그의 정체를 파헤치고자 한다. 이전까지 로드리게즈에 관한 이야기는 공연 도중 권총 자살을 했다는 일종의 도시전설으로만 전해졌었다.


‘찾기’ 서사는 오랜 시간을 들여 차근차근 단계를 쌓아올려 극적인 감동을 주려는 노력을 크게 들이지 않는다. 감독이 의도한 영화의 주된 테마가 ‘찾기’가 아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다만 ‘찾기’ 서사에서, 음반 제작자의 인터뷰를 통해, 상업성 중심의 음악 산업에서 선량한 피해자라는 이미지를 은근히 로드리게즈에게 덮어씌우는 시도가 엿보이기도 한다.


‘찾기’가 완료된 뒤 로드리게즈가 등장한다. 그는 그냥 등장한다. 어떠한 신비감이나 화려함을 동반한 등장은 자제하며, 그가 이전부터 계속 살던 집의 창문을 직접 올리며 화면에 등장한다.

그의 등장 이후, 이전의 편집에서 쌓아올린 서사적·극적 기능은 일반적인 효과와 다른 방향으로 작용한다. 오히려 이전의 이러한 기능적 편집이 있었기에, 로드리게즈의 출현 이후의 서사가 더욱 감동적으로 다가올 수 있었다.


이전까지 로드리게즈를 기억하고, 찾는 사람들은 로드리게즈에게 각자의 욕망과 소망 등을 투영해왔다. 어쩌면 음반 제작자는 자신의 실패를 미화, 정당화하고자 로드리게즈를 사람들이 알아주지는 않지만 엄청난 음악적 재능이 있는 사람으로 포장했을 수도 있다. 로드리게즈와 관련이 없는 제3자가 객관적으로 왜 로드리게즈의 앨범이 상업적 성공을 이룰 수 없었는지의 인터뷰가 부재한다는 것이 의문의 근거로 제기될 수 있다. 로드리게즈를 찾는 이들은 당연히 로드리게즈를 찬양하는 인물들이고 이들이 로드리게즈를 찾는 주된 이유는 필시 미스터리한 슈퍼스타(어쩌면 죽었을지도, 힘든 길거리 생활을 하고 있을지도, 거만하고 이기적인 인물일지도 모르는)를 찾고 그와 관련된 자신의 욕망(슈퍼스타의 이면)을 충족하고자 함이다.


결국 추종자들은 욕망을 충족하고자 하는 노력 끝에 로드리게즈를 찾는다. 찾은 후 드러난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남아공에서 아주 유명하지만 정체를 모르는 가수를 찾았더니 알고보니 미국에서 초라한 생활을 하고 있었구나”였다.


그러나 ‘로드리게즈’라는 한 사람이 판도를 바꾼다. 그의 ‘매력’이 이 영화를 질적으로 높이며, 등장 이전의 기능적 편집으로 이루어진 서사와 대치되며 더욱더 높은 수준의 극적인 감동을 선사한다. 이전에 쌓아왔던, 예상되었던 결말을 비껴나가기 때문이다. 감독은 이 특별한 효과를 예상했을까? 어쩌면 한 등장인물의 매력으로 기존의 기능적 편집을 이겨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충돌로 인한 발생되는 특별함은 아주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로드리게즈는 애초에부터 예술가였다. 앨범이 100개도 팔리지 않는 음악적 실패가 있어도, 자신의 앨범이 저 먼 나라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구가했다고 하더라도, 이에 영향을 받아 좌절하거나 기회삼아 새로운 인생을 꿈꾸지 않는다. 자신의 신념대로 행동하며 예술적 감수성을 포기하지 않는다. 어느 날 갑자기 지구 반대편에서 내가 엘비스 프레슬리와 같은 존재라는 이야기를 듣고 극진한 대접을 하며 초청을 하면, 과연 현재의 삶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 용기를 쉽게 낼 수 있을까? 이 영화의 진정한 감동은 어떠한 외부의 (긍정적일 수도 있고, 부정적일 수도 있는)자극에 영향을 받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이어 나가는 한 개인의 초상이 보여주는 이야기에서 온다. 신념과 믿음을 잃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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