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개월 만에 본 28개월 차 아기는 어느새 수다쟁이가 되어 있었다. 아직은 불명확한 발음을 할 때가 많은데, 자신의 발음을 못 알아들은 것 같으면 계속 반복하며 답답해하곤 한다. 특히 날 닮아 겁이 아주 많은 이 녀석은 무섭다는 말을 자주 하는 것을 보면 유전이 무섭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무서워하면 "사내놈이~", "꼬추 떼뿌라" 같은 반응이 나왔고, 나는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안무서운 척을 했다. 주사도 씩씩하게 안 울고 잘 맞고, 놀이동산에서도 떨리는 마음을 애써 진정시키며 누구보다 용감한 척을 했다. 요즘 교육은 많이 달라져서 동화책에서도 무서워할 줄 아는 용기를 가르친다. "남자니까~"라는 성차별적인 내용은 자취를 완전히 감춘 것 같다.
윽박지르고, 소위 가스라이팅을 하는 측면이 없어졌다는 면에서 더 나은 교육으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교육에 정답이 있을까? 장점이 있으면 단점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사람들은 모르지만 나는 사실 회사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도, 새로운 일에 직면하는 것도,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도 모두 무섭다. 단지 어릴 적부터 오랜 세월 무서움을 숨겨오다 보니 어느새 이제 다른 사람이 보면 사교적이고 겁이 없는 사람으로도 보일 정도가 되었다. 무서운 것을 계속 경험하지 못하게 하는 것 역시 문제가 있을 것 같다. 교육에는 정답이 없어서 어렵다. 한참 유행하는 단어인 가스라이팅도 부정적인 이미지가 많지만, 일정 부분 가스라이팅을 당하지 않는 사람은 세상을 살아가기 힘들 것이다.
겁 많은 녀석이지만 때가 되면 계속 도전을 하고 싶어 한다. 무턱대고 불가능한데 덤벼들어 사고를 치는 아기와 다르게 이제 될만한 것을 도전한다. 안심이다. 물론 가끔 안될만한 걸 될만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지만 말이다. 하나, 둘 무서운 것을 해소하면서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말할 수 없이 즐거운 일이다.
이제 세상에 많이 적응해 무서움을 능숙하게 숨길 수 있는 어른이 된 나지만, 여전히 적응하지 못한 무서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타인의 생명을 뺏으려고 하는 전쟁이 그것이다. 정말 무서운 일이다. 나보다 겁이 없는 어른들은 그렇게 겁이 나지는 않는 모양이다. 전쟁 한복판에서도 득실을 따지고 눈치를 본다. 나 역시도 안 무서운 척 상황을 보고 있지만 사실 너무나도 무섭다. 인간의 가장 강한 본능인 생존 욕구를 빼앗기 위한 전쟁은 어떤 명분을 들어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전쟁 영웅을 추앙하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아이가 생기니 이런 생각은 더욱 짙어진다.
사실 이번 전쟁으로 휴가를 나왔다가 카타르로 복귀를 못한 나로서는 득을 본 셈이다. 예상보다 길게 아기와 있을 수 있게 되었고, 힘든 상황에 처해있는 현장 근무에서 빠져나오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분위기에서 주식과 환율을 예측하며, 포격의 사상자보다 기름값에 어떤 영향이 미칠지에 관심이 몰린다. 머리 위로 미사일이 날아다니지만 회사의 입장에서 철수가 이익일지 작업을 계속하는 것이 이익일지 따질 수밖에 없다. 전쟁보다 더 무서운 것이 사회일지도 모르겠다. 사회는 멀쩡한 사람을 바보로 만들고, 착한 사람을 나쁜 사람으로 만들고, 살아있는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간다.
아이러니하게 무서운 전쟁 상황의 혜택 속에서 무엇보다도 무해한 아기의 28개월과 29개월을 함께 할 수 있었다. 많은 걸 느끼고 즐겼지만 막상 글을 쓰는 건 많이 늦었다. 잠시도 시간을 주지 않는 아기와의 소통에 대한 이야기를 이제 다시 시작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