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친구

아기의 사회생활

by 평범한 직장인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주변에 남자로 가득 차 있었다. 대입 수능 시험 응시 인원 최다를 기록한 세대이자, 남아 선호 사상이 반영된 전형적인 남초 사회에서 자랐기에 한 반에 늘 남자가 더 많았다. 키 순으로 자리를 주로 배정했기 때문에 젤 컸던 나는 거의 항상 남자 짝과 앉게 되었다. 어린 나이에도 은근 여자 친구 옆에 앉고 싶다는 생각을 애써 숨기며 아무렇지 않아 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아들의 어린이집은 여자 아기들이 더 많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여자 아기들과 많이 놀게 되는 것 같고, 나로서는 그 모습을 남들보다 1.5배쯤 더 흐뭇하게 바라본다. 아들이 여자 아기와 노는 사진만 보면 기분이 좋다.


아들이 자주 같이 있는 여자아기가 있다. 유독 자주 이름을 언급하는 걸 보니 서로 통하는 모양이다. 누구랑 놀았냐고 물어보면 다른 여자아기 이름도 가끔 나온다. 가능하면 어릴 때 많은 여자 아기들과 놀기를 바라는 나로서는 심지어 대견하다는 생각조차 한다. 그런 게 아닌 거 알면서도 왠지 아들이 여자 아기들에게 둘러싸여 있으면 인기가 많은 거 같아 뿌듯한 마음이 들면서 즐거운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딸 부모의 심경을 들어보니 전혀 다른 것 같다. 딸이 다른 남자 아기와 즐겁게 노는 것만 봐도 아빠의 눈에는 불꽃이 튄다 한다. 참 어릴 때부터 어쩔 수 없이 성별에 따라 다른 부모의 마음가짐이다.




아기는 언제부턴가 주변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주변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관계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관계는 삶에 의미를 부여한다. 관계가 많아지고 깊어질수록 좌절도 생기고 상처도 생길 것이다. 안타깝지만, 인간은 어차피 관계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아니나 다를까 와이프가 학부모 상담을 하고 왔는데 아기가 자꾸 말 잘하는 친구들 무리에 끼려고 하는 거 같다 한다. 또래보다 늦게 태어난 데다 아무래도 여자아이들이 말이 더 빠르다 보니 본인도 답답한가 보다. 같이 멋지게 얘기하며 놀고 싶은데 안 돼서 힘든 모양인지 어린이집을 안 들어가고 싶어 하기도 한다고. 아기의 마음을 알 것도 같아서 좀 안타깝다.


하지만 이는 얼마 가지 않을 문제였다. 내 휴가 이후로 아기의 말은 급격히 늘어서 아직 발음은 조금 부정확하지만 온갖 말을 쏟아내고 있고, 지금은 어린이집에 엄마가 일찍 데리로 오는 게 불만일 정도로 즐겁게 지내는 모양이다. 시련을 겪고 성장을 하고, 이런 것들은 관계를 통해 이루어진다. 나도 사회생활한 지가 15년이 넘다 보니 관계가 참 중요하다는 것을 많이 느낀다. 한 때 잘했는지 여부로 영원히 결정이 나는 대학보다도 어떤 관계를 맺냐가 훨씬 삶에 중요한 것 같다. 이제 아기가 말도 점점 잘하게 될 테니 친구들과의 관계를 점점 더 엿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아기에게 어떤 길이 펼쳐져 있을지 참 흥미진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