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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범한 직장인 May 08. 2020

당신과 당신 주변의 사람들은 착한가요?

일상으로의 초대

일상으로의 초대는 그때그때 생각을 적어보는 글입니다. 특별한 체계도 없고 형식도 없고 발행 주기도 없습니다. 분량도 제멋대로이고 다소 완성도가 떨어질 수 있지만, 정돈되지 않았더라도 날것의 저를 표현해 보고 싶은 마음에 시작해봅니다.

어린 시절 TV에 방영했던 애니메이션 중 마법소녀 리나를 매우 재미있게 봤습니다. 마법사, 검사 등 다양한 캐릭터가 등장하여 적당한 코믹, 멋있어 보이는 주문과 짜임새 있는 세계관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가장 특이했던 부분은 주인공 리나가 쓰는 마법은 흔히 악으로 설정되어 있는 마족의 힘을 빌려서 쓴다는 점입니다. 악의 세력을 물리치기 위해 마족의 힘을 쓰는 아이러니한 상황 때문에, 최강의 적 샤브라니 구드에게 그의 힘을 빌리는 주문인 드래곤 슬레이브를 쓰다가 불발이 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마법소녀 리나에서 나오는 선악이 애매한 설정은 계속적으로 나오게 됩니다. 제가 가장 좋아했던 캐릭터인 제로스 역시 마족의 고위 신관이었고, 선의 역할을 하는 신족이 마족보다 더 악랄한 계획을 세우는 장면도 많이 나옵니다. 단순한 소년 만화에 불과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어린 시절에 선악의 개념을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든 철학적인 만화였습니다.




사실 우리가 당연히 쉽게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하는 선과 악의 구분은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구약에 자주 등장하는 자식을 바치는 행위는 현대 기준으로는 이해하기 어렵고, 적군을 잘 썰어버리는 전쟁 영웅을 선하다고 볼 수 있는지도 의문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이런 어려운 사례가 아닌 우리가 겪을 수 있는 사례에 대해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 나오는 구절인 악의 평범성은 꽤나 유명해서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 것입니다. 현재 대부분의 사람들이 절대악으로 분리하는 나치 히틀러 아래에서 최고의 효율로 최대의 사람을 죽인 아이히만을 인터뷰하고 분석한 내용입니다. 희대의 살인마로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를 인터뷰하고 분석한 결과 정말로 평범하고 유능한 공무원이었을 뿐이었다고 합니다. 실제로 직접 유대인을 죽이지도 않았고, 죽이는 것을 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상부의 명령에 따라서 부지런하게 일을 했을 뿐이며, 유대인에 대한 특별한 악의를 가지고 있지도 않았습니다. 가정에서도 충실한 남편이자 아버지였다고 합니다.




회사를 다니다 보면 지시에 따라 일을 하게 됩니다. 무언가 좀 미심쩍거나 애매한 일을 시킬 때면 회사에서 시키니 해야 한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우리는 나에게 월급을 제공하는 회사에서 시키는 일이라는 말에 크게 의문을 가지지 않고 충실히 업무를 수행합니다. 그 업무에 의해 다른 회사가 피해를 입을 수 있고, 혹은 다른 사람 마음에 작은 상처를 남길지도 모르지만, 계약에 의해 월급을 받고 수행하는 일이라는 생각에 크게 반발을 하지 않습니다.


물론 아이히만과 같이 결과적으로 수많은 사람을 죽인 결과를 만든 것과, 내가 타인에게 준 작은 상처가 비교대상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제 앞의 글인 생각의 스펙트럼을 생각해보면 꼭 그런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https://brunch.co.kr/@gjchaos0709/59

어떤 이에게는 내가 업무를 하느라 준 작은 상처도 악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어떤 이에게는 아히히만 같은 사례도 상부의 명령에 복종하였으므로 악하지 않다고 판단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어느 선까지를 선과 악으로 분리해야 할지는 누구도 정하기 힘든 문제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하는 행동 하나하나는 대부분 타인에게 크고 작은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살기 위해서는 누군가에게 폐를 끼칠 수밖에 없는 존재인 것 같습니다. 회사는 총을 들지 않은 전쟁터와 비슷해서 결국 경쟁사가 되었던, 협력 업체가 되었던 서로 간에 영향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회사라는 이름에 책임을 지우고 너무나도 당연하게 우리에게 극대화된 이익이 가능한 방식으로 결정을 내리고 수행을 하게 됩니다. 회사의 부속품으로서 어찌 보면 당연합니다.


책의 저자는 아이히만의 죄를 사유의 불능성이라고 지칭했다고 합니다. 우리의 생활에서 있는 사소한 모든 것을 사유할 수도 없고, 조직의 구성원으로서 설사 사유했다고 해도 반항하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름의 사유를 하고 넘어서는 안될 선을 가지고 있는 것은 중요할 것 같습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본인이 받을 불이익을 알면서도 자신의 선을 지키려 반항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런 사람들을 모나고 특이한 사람이라 단정 짓고 혀를 차기도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런 사람들을 마음속으로 지지하고 생각해보는 편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없다면 어쩌면 아이히만을 양성하는 사회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아이히만은 만약 나치 독일이 승리했다면 영웅이 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실제로도 아이히만은 평범했지만 출세욕은 강한 편이었다고 합니다. 사회에서도 영웅을 꿈꾸며 아이히만과는 다르지만 비슷한 행위를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당신이 가지고 있는 선은 어느 정도인가요? 당신이 가지고 있는 선을 넘는 일이 강요되었을 때 당신은 어떤 행동을 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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