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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범한 직장인 May 01. 2020

생각의 스펙트럼

일상으로의 초대

일상으로의 초대는 그때그때 생각을 적어보는 글입니다. 특별한 체계도 없고 형식도 없고 발행 주기도 없습니다. 분량도 제멋대로이고 다소 완성도가 떨어질 수 있지만, 정돈되지 않았더라도 날것의 저를 표현해 보고 싶은 마음에 시작해봅니다.


예전에 글에서 제자백가 중 양주의 "내 몸의 털 하나를 뽑아서 온 세상이 이롭다 하더라도 뽑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인용하며 극단적 이기주의의 사례를 들었었습니다.


https://brunch.co.kr/@gjchaos0709/49




그런데 사실 양주의 이 말에는 오해가 있습니다. 단지 너무 극단적 이기주의를 와 닿게 한 말이라 뚝 잘라서 가져왔지만, 사실 이 말이 발생한 전체 내용을 살펴보면 극단적 이기주의라는 것은 큰 오해이며 가짜 뉴스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루는 양주가 외출을 했다가 집으로 돌아왔는데, 집 앞에 논객 한 명이 양주를 기다리고 있다가 그에게 물었다. "만약 선생께서 저에게 털 한가닥을 뽑아줘 제가 천하를 이롭게 할 수 있다면, 선생께선 저에게 털 한가닥을 뽑아 주시겠습니까?" 이에 양주는 "어떻게 털 한가닥으로 천하를 이롭게 할 수 있겠는가?"라고 거절했다. 그러자 논객은 끈질기게 "만약에 털 하나로 천하를 이롭게 할 수 있다고 가정한다면, 그럼 털 하나를 뽑아 줄 수 있겠습니까?"라고 다시 물었다. 그러자 양주는 대답을 하지 않고 그냥 집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잠시 후에 양주의 제자가 양주의 집으로 들어가려다가 그 논객을 만났다. 논객은 방금 전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주면서 당신의 스승은 나와의 설전에 할 말이 없어서 도망쳤다며 비웃었다. 그러자 제자는 논객에게 이렇게 말했다. "스승께서는 단지 말장난을 하고 싶지 않았을 뿐입니다. 괜찮다면 내가 스승님을 대신해서 질문을 해보겠습니다. 만약에 당신의 털 하나를 뽑아 주면 내가 금 백 냥을 주겠다고 하면 뽑아 주시겠습니까?" 논객은 그렇다고 대답했다. 제자는 계속해서 물었다. "그럼 당신의 팔 하나를 주면 내가 금 천냥을 주겠다고 하면 팔을 내주시겠습니까?" 그러자 논객은 아무 말도 못 하고 고개를 숙이고 돌아갔다.

고사는 위와 같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 중 큰 부분이 바로 이런 생각의 스팩트럼 문제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기업 총수가 1원 한 푼이라도 횡령을 할 경우라도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1원은 너무하고 그 규모에 맞게 천만 원 정도까지는 봐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또는 큰 일을 하는 사람은 회사에 득이 되는 방향이라면 얼마든지 횡령을 해도 된다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보통 사람이 볼 때는 얼마든지 횡령을 해도 된다는 사람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얼마든지 횡령을 해도 된다는 사람이 천만 원 까지는 괜찮다는 사람에게 그 기준은 누가 정하냐고 물으면 답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또한 1원 한 푼도 안된다는 사람에게 현실적인 문제, 실수로라도 1원 한 푼 횡령을 문제 삼는다면 모두가 감옥에 가게 된다거나, 관례의 문제를 생각해보면, 단순한 현실성 없는 이상주의자로 생각될 수도 있습니다. 횡령을 1원이라도 인정해주는 순간, 그보다 많은 금액은 안된다는 기준을 누가 정했냐고 말하면 답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때문에 법에서 어느 정도 기준을 정해줍니다. 하지만 법은 완전한 기준을 정해줄 수 없습니다. 모든 구체적인 사안마다 기준을 정할 수 없고, 기준을 정하면 그 기준에 맞추어 꼼수가 나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각자의 기준에 따라 어느 정도의 기준을 잡고 살아가게 됩니다. 때문에 어떤 사람이 법에 따라 처벌을 받더라도, 기준이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어떤 범죄 행위를 저지른 사람이 무죄로 풀려났더라도, 기준이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당연히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이 기준이 다른 사람과는 논박이 어려울 것입니다.




각자의 기준이 다른 것은 어찌 보면 문제가 아닐 수 있습니다. 각자 다른 기준 속에서 다수가 합의를 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보통의 사람들은 이 기준도 그때그때 달라진다는 점입니다. 횡령에 대해서도 어떤 사람에 대해서는 많은 돈을 횡령해도 이해해주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매우 인색한 경우가 많습니다. 소위 내로남불이라고 표현하죠. 본인이 좋아하는 인물에 대해서는 좀 더 느슨한 기준을 가져가는 것은 인간인 이상 어쩔 수 없습니다. 때문에 자신이 좋아하는 것은 좋아하는 방향으로 계속 강화가 되며, 싫어하는 것 또한 계속 싫어하는 방향으로 강화가 됩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논리적 기준이 아닌, 자신의 마음이 가는 쪽을 선택해놓고 강화 논리만을 받아들이는 경향이 드러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는 나이가 들수록 더 심해지다 고정이 됩니다. 어린 시절에는 많은 고민을 하고, 자신이 잘못한 것이 있으면 반성을 하게 되는데, 어느 나이 이상부터 자신의 생각에 대해 반성할 일이 없어집니다. 투자를 잘못해 손해를 보고 후회를 하는 경우는 있더라도, 본인의 가치관을 반성하고 바꾸는 일은 극히 드뭅니다. 수많은 스팩트럼에서 한 가지 색이 고정이 돼버렸을 뿐만 아니라, 상황에 따라 아무 근거 없이 색이 바뀌는 모순적인 사람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살면서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주변에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분명 나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람으로 생각할 것입니다. 우선은 나 자신부터 이해를 하려 노력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고정된 색깔이, 최소한 일관되게 유지되는지를 항상 생각한다면, 모순적인 사람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주위를 보면 사람들은 남에 대한 평가는 많이 하는데, 자신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아 보입니다.




어린 시절 다양한 스팩트럼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 자신의 색깔을 가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지 모르겠습니다. 그것이 어찌 보면 나이가 들어가는 것, 철이 드는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다른 색깔을 전혀 보려 하지 않고 자신의 색깔만을 고수하며 가는 외길 인생은 왠지 너무 외로워 보입니다. 자신의 색깔이 뚜렷해져도 계속 다른 색을 기웃거리고, 흡수하기도 하는 삶이 무언가 더 다이내믹하고 재미있어 보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가는 이유 중에 설레는 일이 없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혹시 쳇바퀴 도는 듯한 삶이 권태로운 분이 있다면 조금 다른 색깔에 고개를 기웃거려 보는 것을 권해 드립니다. 제 글도 분명 보시는 분들의 색깔과는 많이 다를 것입니다. 다른 색깔을 거부하지 않으시고 읽어보고 생각해보시는 분들의 삶에 조금이나마 활력이 되는 글이었으면 좋겠다는 기원을 합니다.



표지 그림 출처 : https://www.reddit.com/r/MapPorn/comments/7g9gry/selfidentified_political_ideology_of_the_ru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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