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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븜진 Nov 26. 2023

일기를 100일 동안 매일 쓰면 생기는 일

무슨 대단한 일이 생기진 않았다

목차

매일 쓰게 된 계기: 초등생 때 썼던 일기를 보다가

영국에서 매일 쓴 이유

일기 소재 찾는 방법

매일 써보니




영국에 온 지 100일이 됐다. 영국에 와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일기를 썼다. 

일기가 100개나 차곡히 쌓이다니... 뿌듯하다.


한 땀 and 한 땀
트윙클 트윙클 화려한 프롤로그 보소


그동안 일기를 쓰며 어떤 걸 느꼈는지 정리해 본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탐색할 때 좋은 단서가 있어요.
어렸을 때의 나는 뭘 좋아했는지 돌아보세요.





매일 쓰게 된 계기: 초등생 때 썼던 일기를 보다가


초등생 때는 당연히 써야 했다. 지금 생각하면 선생님이 내 일상을 검사, 검열한다는 생각만으로도 끔찍한데... 반항심이 많지 않았던 나는 어른이 써야 한다고 하니 그냥 썼다. 

초등학교 때 썼던 일기를 죽 늘여보니 이만큼이나 됐다


초등학교 2~6학년 사이에 썼던 일기는 고스란히 고향에 모셔두었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탐색할 때 좋은 단서가 있어요. 어렸을 때의 나는 뭘 좋아했는지 돌아보세요." 

진로를 찾아 헤매던 내가 심리상담을 받거나 자기계발 책에서 종종 받아보는 제안이었다. 


그래서 고향에 내려갈 때면 일기를 후루룩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다. 


어렸을 때 쓴 일기에서 자주 등장하는 것이 있었다.


일기에는 

[관계] 내가 누구와 어울렸는지

[사실] 무엇을 했는지, 무엇을 먹었는지가 꼭 쓰여있었다. 
(feat. 마지막 문장은 항상 뭔가를 자꾸 반성해...ㅋ)


나는 전형적인 people person인데 어렸을 때도 사람과 관계지향인 것이 그대로 전해졌다. 


더해서 엄마가 날 참 아껴주고 사랑해 주었구나를 새삼 깨닫게 되기도 했다. 엄마가 없었으면 절대 채워지지 못했을 추억들이 가득했으니까. 그렇게 나도 기억하지 못하는 내 유년 시절을 상상해 보며 뭉클해지고 또 고마움을 느꼈다.






영국에서 매일 쓴 이유


이제 누가 시키지 않아서 인가. 성인이 되어서는 정말 나에 대한 기록을 잘 안 남겼다. 심지어 '매일 쓰겠다'는 다짐은 한두 달에 한 번 찾을까 말까 한 일기의 글머리에 고정 레퍼토리가 됐다. 업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서는 더 안 쓰게 되더다. 하루 종일 문장과 씨름하고 온 날이 많으니 내 개인 기록에 대해서는 욕심이 가지 않았다.



나는 2019년에 일 년 정도 영국에 살았다. 그때의 나는 참 어렸다. 내가 기대했던 바와 다르다는 이유로 최대 5년까지 살 수 있었던 기회를 포기했다. 좋았던 경험도 있었지만, 그때의 나는 심술이 많아서 이것도 싫고 저것도 싫었다. 2019년을 한참 지나고 나서야 내가 꽤 불안했고, 주변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에 서툴렀다는 걸 돌아보게 됐다.



2023년에 다시 영국에 왔다. 예전의 실패, 서투른 판단을 거듭하지 않으려고 일기를 쓰기로 했다. 영국살이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있을 테니 유튜브를 해보지 않겠냐는 권유도 있었다. 그치만 나는 말보다 글이 편하다. 



네이버 블로그를 일기장으로 선택한 이유는 나의 기록 스타일에 적합해서다. 나는 평소 내 주변에 특이한 걸 관찰하면 꼭 사진을 찍어둔다. 게다가 뭘 먹었는지를 습관처럼 찍어두니 멀티미디어*를 담기에 제격인 블로그를 골랐다.


*멀티미디어는 컴퓨터 정보가 전통 매체인 텍스트와 그래픽을 더불어 텍스트, 오디오, 스틸 이미지, 애니메이션, 비디오, 상호 작용을 통해 표현될 수 있다는 뜻을 가진다. (출처: 위키피디아)



그래도 왜 공개된 채널에 일기를..?이라고 한다면, 



생각보다 타인은 내게 관심이 없다.ㅋㅋㅋ 


일기장에 쓰나 네이버 블로그에 쓰나 조회수 차이는 대동소이하기 때문에 블로그에 쓴다. 한국에 있는 지인, 가족들에게 내가 어떻게 사는지 언제든 살펴볼 수 있게 열어둔 것도 네이버 블로그를 매체로 선택한 이유 중 하나다. 



기록이 쌓이면 검색이 된다.





일기 소재 찾는 방법


팁이다. 

매일 일기를 쓰고 싶은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할 때 도움이 되면 좋겠다.                                            

1. 날씨가 어땠나?

영국은 비가 안 오는 날이 드물다. 종일 맑은 날이 언제 있었는지가 특별해서, 개인 날엔 무조건 밖에 나간다.

날씨야말로 내외부 활동에 큰 영향을 주니 날씨가 어땠고 그래서 뭘 했는지 적어보자.



2. 뭘 먹었더라?

영국 음식은 맛없기로 유명하지만 그건 편견. 외국인이 우리나라 회, 매운 찌개만 접하며 야만적이네, 자극적이네..라고 하면 논하면 서운할 것이다. 관광객 음식 말고 찐 일상식 뭐 먹었는지 기록한다.

바쁘면 끼니를 거르기도 하고 연료처럼 때우기도 한다. 온전히 먹은 날(차렸든 사먹었든)은 어떤 걸 먹었고 왜 그 메뉴를 선택했는지 써보자.



3. 뭘 발견했지?

영국의 문화를 발견하고 쓴다. 반려견 친화, 가족 중심, 낯선 이에게 친절, 젠틀한 운전 매너, 특유의 브로 문화가 있다.

꼭 여행을 가지 않더라도 오늘 탄 지하철, 버스 내부의 광고판이 뭐였는지, 유튜브 광고로 뭐가 노출이 됐는지 보고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까지.. 사소해서 그냥 지나쳤던 것도 캡처해 볼 수 있다.



4. 뭘 봤더라? 뭘 들었더라?

나는 넷플릭스 영드, 영화, 영국 티비쇼, 한국 유튜브 예능을 자주 본다는 시청 유형을 파악했다. 도파민 중독이라 유튜브, 소셜미디어를 아예 끊지 못할 거면 보면서 뭘 느꼈는지 감상을 적으며 보다 적극적으로 시청할 수 있으니까.

일상에서 접한 콘텐츠를 소재로 보면서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써보자. 아주 고상하거나 대단한 인사이트가 있을 필요도 없다. 그냥 jolla 재밌었네, ㅋㅋㅋㅋ을 몇 번 썼는지 몰라.. 이래도 괜찮다.



5. 뭘 했더라?

산책, 클래시코 목욕, 도서관, 수영장, 헬스장 간 걸 쓴다. 나중에 클래시코 언제 목욕시켰는지 정확한 날짜가 기억 안 날 때 블로그에 들어가서 검색해 보니 유용하다. 기록이 쌓이면 데이터 베이스가 되고, 데이터베이스가 생기면 검색이 된다.

하루 중 했던 일 중에 가장 뿌듯한 것, 다시 안 하고 싶은 것을 기록해 두자. 계속하고 싶은 것은 행동을 강화하고, 안 하고 싶은 것은 일기에 쓰면서 스스로 행동 금지를 선언해 보자.



6. 뭘 느꼈지? 뭘 생각했지?

한국과 영국은 이런 게 비슷하고 저런 건 다르네, 나는 날씨에 영향을 많이 받네.. 이런 걸 느낀다. 가족들과 대화하며 티키타카가 너무 즐겁네..를 써둔다. 내가 뭘 좋아하고 어떨 때 행복해하는지 보관해두는 보석함이 생기는 것 같다.

MBTI 유형 T든 F든 거기에 갇히지 않고 내 머릿속에 스쳤던 것 누군가와 대화하고 나서 마음에 잔상으로 남았던 걸 기록해 보자.




매일 써보니


일기를 매일 쓸 뿐이지 내가 갓생을 사는 건 아니다.


여전히...

유튜브, 인스타를 보다가 한 시간을 훌쩍 넘기고, 

수영장은 가기 전까지 참 귀찮다.

오늘 하루 뭘 했다고 벌써 하루가 이렇게 갔지?하는 생각으로 잠자리에 들 때가 많다. 


그래도 일기를 쓰면서 자칫 흐릿흐릿, 흐지부지 지나갈 뻔한 하루에 선명함이 생겼다. 일기를 쓰고 돌아보며 나의 관심사를 알게 되고, 또 다른 콘텐츠를 만드는 소재가 되고, 가물가물한 내 기억을 붙잡아 주는 포털 검색이 된다.  


이렇게 슥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뿌듯한 데다 혹시나 누군가에게 도움 될 정보를 남긴다면 그만큼 보람찬 게 있을까.



유튜브 '유브이 방'을 보면 음악 작업실이란 고정된 장소에서 매주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생긴다. 매일 출퇴근하고 사는 곳이 바뀌지 않더라도 모든 하루가 철저하게 똑같지 않다. 내 하루에 얼마나 관심 있게 지켜봤는지에 따라 그 미세하게 다른 구석이 감각될 뿐.



100일 동안 쓴 일기 넘겨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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