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 김광석(1989)
너에게
김광석
나의 하늘을 본 적이 있을까
조각구름과 빛나는 별들이
끝없이 펼쳐 있는
구석진 그 하늘 어디선가
내 노래는 널 부르고 있음을
넌 알고 있는지
나의 정원을 본 적이 있을까
국화와 장미 예쁜 사루비아가
끝없이 피어 있는
언제든 그 문은 열려 있고
그 향기는 널 부르고 있음을
넌 알고 있는지
나의 어릴 적 내 꿈만큼이나
아름다운 가을 하늘이랑
네가 그것들과 손잡고
고요한 달빛으로 내게 오면
내 여린 마음으로 피워낸 나의 사랑을
너에게 꺾어줄게
나의 어릴 적 내 꿈만큼이나
아름다운 가을 하늘이랑
내가 그것들과 손잡고
고요한 달빛으로 내게 오면
내 여린 마음으로 피워낸 나의 사랑을
너에게 꺾어줄게
https://www.youtube.com/watch?v=UM8q9nLKwzg
음유시인 故 김광석의 노래 중 가장 좋아하는 노래를 꼽으라고 한다면 필자는 단연 그의 1집 앨범에 수록된 노래인 '너에게'를 꼽고 싶다. 잔잔히 시작해 우리 모두를 김광석의 세계로 어느새 이끌어 나가는 멜로디. 그의 사랑, 그의 세상, 그리고 그의 노래와 철학이 가득 담긴 채 슬픔 속의 희망을 노래하는 가사.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그의 특유의 맑으면서도 슬픔이 담긴, 그럼에도 다시금 일어설 수 있다는 희망이 공존하는 목소리. 김광석 씨가 오래전 우리에게 남긴 '너에게'속에는 이 3가지의 보물이 숨어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 노래는 다수의 히트곡을 보유한 김광석 씨의 앨범 수록곡 중에서도 그다지 유명하지 않은 축에 속하는 노래이다. 오히려 많은 대중들이 동명의 서태지와 아이들의 히트곡 '너에게'를 먼저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노래가 수록된 김광석 씨의 1집 앨범 자체가 흥행에 실패한 것과 같은 이유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당시의 가요계의 높은 장벽 앞의 김광석은 그저 한 사람의 인디 가수였고, 그의 앨범에 참여한 작곡가들 역시 대다수가 대중성이 낮은 신인에 가까운 이들이었다. 이들이 그 시대의 높은 장벽을 넘기에는 시간과 힘이 부족했다.
그렇게 대중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노래가 되어버린 김광석의 '너에게'는 대단히 함축적이면서도 직설적이며, 슬픔이 가득하면서도 동시에 희망에 가득 차있다. 필자는 세 가지의 해석으로 나누어 가사를 곱씹어보았다. 그리고 이것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제목부터 강렬하게 우리에게 다가오는 존재가 있다. 바로 '너'이다. 이인칭 대명사로서 '너'는 분명히 노래 가사를 듣는 존재가 있음을 알려주며, 동시에 노래 가사가 향하는 청자가 있음을 알게 해 준다. 즉 가사가 써진 분명한 목적이 존재하며, 그 목적이란 드러나지 않은 '너'에게 하지 못했던 말을 남기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기준으로 가사를 해석해본다면 화자는 청자를 누구보다도 사랑하고 있는 사람이다. 또한 그 사랑은 너무도 오래되었으며, 너무도 섬세하다. 자신의 마음속, 또는 자신의 이상향 등 화자와 밀접하고 내밀한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이는 '나의 하늘'과 '나의 정원'은 화자의 청자에 대한 사랑의 깊이를 명확하게 드러내 준다. 그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결국 그 모든 풍경이 존재함은 '널 부르고 있음'에 이유가 있는 것이다. 즉 다시 말해 화자의 이상향 속에서의 그 아름다운 풍경의 필수 요건은 바로'너'와 함께 하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그는 '나의 어릴 적 꿈만큼이나 아름다운 가을 하늘'과 '손 잡고 고요한 달빛으로' 내게 오라고 말하고 있다. 나의 순수했기에 아름다웠던 어릴 적의 꿈과, 그것과도 비슷한 아름다운 가을 하늘은 화자가 잃어버린 순수한 마음일지도, 아니면 청자를 향한 유일하고 순수한 사랑을 의미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마음으로, 분주하게 타오르는 열정보다는 고요하고 차분한 달빛과 함께 오라고 한다. 그래야만 '여린 마음으로 피워낸 나의 사랑'에 걸맞은 '너'가 될 수 있기에.
여린 마음으로 키워낸 섬세한 사랑에는 타오르는 정열과도 같은 사랑에는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 법이다. 오히려 조금은 순수하고 맑고 기분 좋은 가을 하늘이나, 잔잔하고 고요한 달빛과 어울린다. 그리고 그것은 모두 화자의 깊고 고요한 청자에 대한 사랑을 한껏 드러낸다.
두 번째 해석은 당시의 시대상과 약간의 연관성을 가진다. 당시는 1987년 민주화운동 이후 대통령 직선제가 처음 실시되었으나, 신군부와 밀접한 연관성을 지녔으며, 쿠데타의 주범이었던 노태우 후보가 당선되는 등 여전히 사회적 혼란이 진정되지 않았던 시간들이었다. 이 시간 속에서 여전히 문화는 민주주의를 직접 표현하고 노래하기 꺼려했으며, 늘 이상향과 또 다른 세계 등으로 묘사되기 일쑤였다. 대표적으로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황지우', '행복의 나라로-한대수' 등이 있는데, 이들은 모두 민주주의를 되찾은 대한민국의 모습을 각각의 표현에 따라 다른 세상이나 나라 등으로 에둘러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을 바탕으로 또 다른 해석을 시도해 보았다.
먼저 시작부터 제시되는 '나의 하늘'과 '나의 정원'은 역시나 민주화가 완전히 이루어진 자유로운 나라를 의미한다. 그렇기에 유난히 아름답고 따뜻하게 그려진다. 그렇다면 화자가 그 두 세상 속에서 애타게 부르고 있는 '너'는 누구일까. 그렇다. 바로 '민주주의' 그 자체이거나 또는 '민주주의가 승리한 미래' 정도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다음 내용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아름다운 가을 하늘', 즉 오랫동안 순수하게 꿈꿔온 현실과 함께 찾아온다면 비록 드러내 용기 내어 민주주의를 위한 노력을 하지는 못했지만 '여린 마음으로 피워낸' 민주주의에 대한 응원을 비로소 기쁘게 드러내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마지막 해석은 단어 자체가 가져다주는 느낌에 기반하여 해석해보았다. 노래 전체에서 가장 눈에 들어오는 시어는 크게 네 가지가 존재한다. 먼저 '나의 하늘' 그리고 '나의 정원', 다음으로 '가을 하늘', 마지막으로는 '고요한 달빛'이 눈에 특히 들어온다. 그리고 끼워 맞춰 해석해보자는 각각의 시어는 각각의 계절과 교묘하게 비슷한 속성을 지니고 있다.
'나의 하늘'에 있다고 묘사되는 '조각구름'과 '빛나는 별들'은 비록 저녁이지만 맑고 청명한 하늘을 떠오르게 한다. 그러나 동시에 티끌 한점 없이 맑은 경우가 많은 온전히 깨끗한 가을 하늘과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조각구름이 떠다니면서도 빛나는 별들이 어렴풋이 보이는 하늘은 어느 봄날의 밤하늘처럼 보인다. 다음으로 '나의 정원'에는 '국화'와 '장미', 그리고 '사루비아(표준명은 샐비어지만 가사에 맞춰 사루비아로 표기)'가 피어있다. 비록 국화는 가을에 피는 꽃이지만 장미와 사루비아의 개화시기는 가을보다는 여름에 가깝다. 즉 이 세 꽃이 모두 피어있기 위해서는 일찍 핀 국화와 늦게 남아있는 장미가 함께 존재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가능토록 하는 계절은 여름이다. '가을 하늘'이라는 단어는 더욱 확실히 계절적 감각을 드러내 준다. 그리고 찾아온 '고요한 달빛'은 한 해를 마무리하며 차갑게 얼어붙은 눈 내린 마을에 차분히 내려앉은 겨울밤의 월광을 떠오르게 한다.
그렇다면 각각의 계절에 대비되는 단어들 속에서 함께 계속해서 등장하는 '너'는 도대체 누구일까. 필자는 약간의 상상력을 발휘해서 그것을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이라고 설정해보았다. 계절이 흘러감에 따라 서서히 다가오는 우리의 끝. 그리고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담담히 오히려 소리 내어 부르며 맞이하는 화자의 모습. 필자가 그렇듯 끝 앞에서도 담담할 수 있었던 것은 허락된 시간 동안에 '내 여린 마음으로 피워낸 나의 사랑'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즉 그의 시간 속에서 얻어낸 값진 보상이자 결과물이 바로 '사랑'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다가오는 끝을 반갑게 맞이할 수 있는 것이다. 계절의 흐름을 종종 문학적으로 사람의 생애와 대비시켜왔다는 것을 떠올려 본다면 영 일리 없는 해석은 아닐 것 같다.
김광석은 단순히 가수라고 부르기에는 심오하며, 거대한 인물이다. 그렇기에 많은 사람들이 그를 가리켜 음유시인이라고 부른다. 그의 노래 가사 속에는 그의 삶과 철학, 그의 사랑과 사람, 그리고 그 자신이 들어있다. 그렇기에 그 속에서 또 다른 우리를 찾아내고는 우리는 김광석의 노래에 젖어드는지도 모르겠다. 김광석은 역시 김광석이다. 너에게 전하고 싶었던 말, 과연 그 속에는 어떤 사랑의 시간이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