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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태화 May 12. 2021

1. 숨 가쁜 사회, 우리의 갈림길

5) 숨고, 도망치고, 그리고 미워하고

 필자는 최근 들어 정치, 경제, 사회 등 분야를 막론하고 인터넷 기사를 검색해 보는 것이 두려워졌습니다. 정확히는 기사보다는 기사의 말미에 첨부되어있는 수많은 댓글이 두려워졌다는 표현이 맞겠습니다.


 대한민국은 IT의 강국이자, 민주주의와 표현의 자유를 각별히 중요시 여기는 국가답게, 온갖 사회 현상과 현안에 대해 나름의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댓글과 각종 온라인 청원 시스템이 잘 갖추어진 국가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댓글과 청원 등을 통해 억울함이 해소되고, 진실에 더욱 가까이 다가가는 등 사회가 점차 환해지고 밝아지는 것을 숱하게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토록 중요하며 확실한 장점을 가졌음에도, 최근 들어 필자는 댓글 제도와 의견 표현 제도의 유지 필요성에 대해 확신을 갖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것은 경쟁과 선의의 논쟁이 아닌 전쟁과 혐오, 온갖 악질적인 반쯤 범죄가 온라인 플랫폼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표현의 자유는 최대한으로 존중되어야 하는 것은 맞습니다. 표현 자체를 통제하는 사회는 민주 사회라고 부를 수 없으며, 그것은 국가의 구조에 있어서 치명적인 결함입니다. 그러나 책임지지 않는 표현의 자유를 우리는 자유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타인의 자유의 범위마저 침해하고, 때로는 사람의 천부적 권리마저도 짓밟아버리는 풍토는 자유라고 지칭할 수 있을까요?


 최근 유명 연예인들이 악성 댓글에 시달리다가 극단적 선택으로 우리 곁을 떠나간 아픈 일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떠난 후 그들이 이제껏 짊어지고 있던 무게들을 보고 있노라면 경악을 금치 못하게 되곤 합니다. 부모님과 형제자매 등 가족에 대한 모욕은 기본이며, 해당 인물에 대한 성적, 인격적 모독 역시 서슴지 않고 자행됩니다. 그 내용을 보고 있노라면 과연 그들이 해당인을 눈앞에 두고 직접 마주할 때도 그러한 말들을 건넬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 정도입니다. 누군가에겐 평생 남을 아픈 상처가 어떤 이들에게는 즐거움과 희열이 됩니다. 이것이 숨 가쁜 사회의 이면(異面)이자, 우리에게 남겨진 흉터와 고통입니다.


  지난해 세상에 드러나 모두를 충격에 빠지게 했던 끔찍한 범죄인 ‘n번방 사태’ 역시 이와 같은 맥락이라고 봅니다. 대면으로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잔혹하고 비인간적인 범죄행위가 비대면과 온라인이라는 가면을 쓰고 버젓이 우리 사회의 가까운 지층에서 자행되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온라인과 비대면을 활용한 비인격적 범죄행위에 대해 예민하고 섬세하게 대응해왔다면 이러한 비극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인터넷상에 조성된 이른바 ‘커뮤니티’ 역시 우리 사회의 또 하나의 골칫거리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커뮤니티’, 말 그대로 하나의 공동체이자, 소통의 창구입니다. 그러나 점차적으로 반사회적이며, 폐쇄적인 집단으로 전락해 감으로써 우리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가 되어가는 몇몇 인터넷 커뮤니티들의 문제점이 점점 커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정상적이고 건강한 커뮤니티의 구심점에는 사랑과 소통, 대화가 있다면, 점차 문제 요소로 인식되어가는 커뮤니티의 구심점엔 혐오와 모욕, 멸시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들로부터 흘러나온 어두움이 우리 사회에 또 다른 혐오와 멸시, 모욕을 불러오고 있는 실정입니다. 


 인터넷이 이토록 사회의 어두운 뒷골목으로 전락해가는 현실에는 인터넷의 익명성이 한몫 단단히 하고 있습니다. 인터넷은 실명을 활용한다고 해도 익명의 공간입니다. 내가 현재 대화하고 있는 이가 실제 그 사람 본인이 맞는지조차 확실하게 확인하기 어려운 베일의 공간입니다. 또한  이들의 말과 행동은 실제 현실에서보다 그 책임과 규제에서 자유롭다고 여겨집니다. 대화의 상대는 자신이 한정적으로 제공한 ‘나’의 극히 일부만을 알게 됩니다. 또한 제공되는 ‘나’ 조차도 실제의 나와는 매우 멀리 떨어져 있는 가짜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기에 많은 이들은 인터넷 속의 자신과 현실 속의 자아를 분리해 인식하게 됩니다. 따라서 이들에게 인터넷은 현실 속의 나로부터 자유로운 또 다른 자아가 현실의 규제를 벗어나서 누빌 수 있는 자유의 공간입니다. 아울러 인터넷 속의 ‘나’가 저지른 행동에 대한 책임이 현실 속의 ‘나’에게는 없다고 착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인터넷은 어떤 이들에겐 일상의 도피처입니다. 어떤 이들에겐 은신처이며, 어떤 이들에겐 감정의 배설구이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의 무게가 버거운 만큼 서서히 넓어지고 있는 그림자가 바로 인터넷 세상입니다. 황지우 시인의 시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의 구절처럼 ‘우리의 대열을 이루며, 한 세상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하는 마음으로 어쩌면 우리는 이 세상 밖에 우리의 세상을 만들어 두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세상 속에서 배출되지 못한 아픔과 답답함, 슬픔과 억눌림을 표출할 장소가 필요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물론 인터넷의 발달이 나쁜 점만 가진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장점이 더욱 많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인터넷의 발전으로 정보를 취급하기 용이해졌습니다. 처리 속도는 더욱 빨라졌고, 지구 반대편까지도 서로 연결해 소통할 수 있는 창구가 마련되었습니다. 또한 인터넷 기술이 그 자체로 악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필자는 기본적으로 현대 과학 문명과 기술에는 선과 악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과학기술과 문명은 그저 하나의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편리함과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개발된 도구. 그것이 바로 우리를 둘러싼 현대 문명입니다. 다만 그것을 악한 의도를 가지고 활용하려는 인간이 있을 뿐입니다. 그렇기에 인터넷의 발달에는 분명한 그림자가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우리 사회가 ‘나를 소모하는 사회’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면, 그리고 숨 가쁜 그러나 공허한 사회로부터 해방되지 못해서 또다시 오늘을 팔아 내일을 사야만 하는 사회로 나아간다면, 우리에게는 또 다른 그림자들이 계속해서 생겨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들의 일탈을 한 단계 진보시켜, 결국은 우리 세상을 잡아먹히는 어둡고 깊은 그림자를 키워내게 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어쩌면 마지막 기회를 부여받았을지도 모르는 일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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