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치라는 이상향이 아닌 새로운 시작
처음 브런치를 쓰겠다고 마음먹은 건 허리가 그렇게 오랫동안 아팠던 게 단순히 허리 때문만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불현듯 찾아와서였다. 나의 도돌이표 같은 삶의 순간들이 영화 필름 돌아가듯 지나갔다. 머리를 띵하고 쳤다.
왜 아팠던 거야? 어떻게 나은 거야?
이 두 가지 질문을 나의 그간 투병 생활을 고백하고 나면 꼭 들었는데, 참 답하기가 어려웠던 게 이 때문이었다.
병은 한가지 원인으로 생겨나지 않고
하나의 운동으로, 어떤 음식으로, 특정 치료로만 낫는 게 아니었다. 아프기 시작했을 때는, 그런 이야기들에 많이 흔들렸다. 어디서는 이게 맞다고, 또 저게 맞다고. 하나뿐인 악당과 불후의 명약을 찾기 위해 헤맸다.
물론 내가 급격하게 효과를 느낀 건 있었지만, 다른 사람에게도 항상 통할 거라는 확신은 없다. 내겐 나만의 습관과 역사가 있었듯이 다른 사람에겐 그들만의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나만 해도, PT를 받는 게 효과가 없다고 느꼈는데, 후반부에는 정말 결정적이었다. (물론 선생님도 달랐고, 방식도 달랐다) 치료도 통하는 시기가 있었나보다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내 몸에게 저질렀던 행각을 자각하고 고쳤더니, 짜잔! 병이 나았어요. 이런 극적인 시나리오도 아니었다. 235km 떨어진 곳에서 받아온 한약도 먹고, 운동도 빡세게 하고 두달 만에 체중 8kg, 근육량 2kg 늘리고 할 거 다 해보고, 좀 살만해져서 생각이란 걸 하게 됐던 것뿐이었다.
어떤 병이든 앓고 나면 사람이 조금 변한다고들 한다. 통증이 서서히 안 느껴지고 하루 끝엔 거의 좀비처럼 존재하던 날들이 하나둘 사라졌다. 깊은 수렁에서 빠져나왔더니, 한두달은 날아다니는 느낌에 취해있었다. 내가 무슨 경지에 오른 기분도 들었다.
’난 이제 나의 바보 같은 면도 감싸안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감사하게 되었어.‘
같은 아름답고 뻔한 이야기 말이다. 실제로 한동안은 충만함에 쾌속선이 물길을 가르듯 달려갔다.
다만, 강박. 그놈의 강박.
잘 살아야 한다 는 강박이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놔주질 않았다.
사사건건 그랬다. 이 글을 쓰기 시작할 때만 해도 첫 글은 한 달이나 고치고 또 고쳤다. 이번엔 글쓰기 모임에 들었지만, 마감이 또 불안함을 자극해서 뭐든 입에 우적우적 넣으며 키보드를 놀렸다. 못해낸다는 두려움이 알바, 면접, 모임, 관계 등 일상으로 돌아오면서 다시 밀려오기 시작했다. 내가 2년 전 한없이 쫓기던 그 감정이었다.
그러니까 멋지게 나를 바꿔냈고, 그리고 주인공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와 같은 완결이 삶에 있는 건 아녔다.
몇 번의 깨달음과 행복감이 찾아오고 또 몇 번의 폭식, 무기력과 불안정한 생각을 반복했다. 그사이 사이 나만의 이야기로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겠다는 야심 찬 결심은 빼먹으면 안 될 토핑이었다.
모든 것은 도중이고, 진정한 시작이나 진정한 끝은 없다. <현대 사상 입문>이라는 책에 등장한 들뢰즈가 한 말이 요즘엔 나를 일으켰다.
잘못해도 다시 거기서 시작하면 되지 싶었다. 완벽주의가 아닌 수정주의.
여전히 나는 종종 한 점을 향해 달려가고 싶어진다. 더 잘 살아야지, 더 괜찮은 사람이 돼야지. 그래도 상관없다. 이랬다가 저랬다가 아는 듯했다가 또 주저앉아있을 거고. 유한함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걸 해보려 할 거다.
어쩌면 나는 실패할 일이 없는 ‘병’이라는 아늑한 곳에 부러 머물러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젠 또 다른 시작으로 나가본다. 이미 형형색색으로 뒤덮여, 실패란 덧칠이 오염이 아닌 세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