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을 돌아보게 한 허리통증

내가 나를 괴롭힌 10년의 시간

by 림보

*부정적인 심리상태에 대한 묘사가 있으니 주의하세요*


교복을 입은 내게 반장이 다가왔다. 선생님이 나를 불렀다고 했다. 자습 시간에 혼자 교무실로 가는 길은 멋쩍었다.

긴장하며 선생님 자리를 찾았다.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 거지?


“아 그래 왔나? 앉아봐라. 요즘 무슨 일은 없나?


요새 00이 얼굴 보면 표정이 너무 안 좋아서 한번 물어보려고 불렀다.“


당황스럽다. 무슨 일…?


“네…. 없어요”


“없어? 근데 왜 그래 힘들어 보이지?


사실 무슨 일이야 있긴 하다.


“음…. 너무 피곤해요.”


하지만 피곤함이란, 대한민국 고3에겐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그건 마치 아기들이 너무 많이 울어요. 같은 하나 마나 한 이야기다.


선생님의 반응은


’야 그건 다 피곤하지. 안 피곤한 애들이 어딨노‘ 였다.


진짜 너무너무 피곤한데. 답답하다.


“그리고 이제 10시 40분으로 자습 시간 줄인다니까 괜찮을 거야.”


30분이 줄었다.


집에 돌아오면 빠르면 12시 반, 보통은 한 시에 잠들었다. 그리고 6시 40분 기상. 8시 10분까지 등교하려면 그랬다. 아침 자습 시간을 위해서다.


솔직히 그 시간 대부분 잤지만, 나는 잠에 들진 못했다. 몸만 뜨겁게 달아오르고 엎드려 있는 채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렇다고 무언가에 집중할 수 있는 몸도 아니었다.


그런 밤에 집에 와서 보면 어느 순간 초코파이 한 상자가 다 뜯겨있고, ‘정’이 적힌 껍질만 수북하게 남아있었다.





대체 피곤한데 왜 먹는 거지?



요즘에야 찾아보니, 수면은 자제력을 떨어뜨린다고 말한다. 판단과 조절력을 담당하는 전전두피질이 아닌 갈망과 보상 체계를 담당하는 영역 더 활성화된다. 그 유명한 도파민의 보상회로가 ‘달달한 초코파이’라는 자극 행위를 재강화하는 것이다. 더 심각한 건, 수면 부족은 면역력을 떨어뜨리고, 사람 생명에 가장 중요한 심혈관 건강을 악화시킨다.



역시나 당시 내 몸은 염증 폭탄이었다. 오른쪽 눈 위에 난 다래끼는 한 달째 속눈썹이 없어져라 뽑아대도 사라지질 않았다. 왼쪽 볼에 여드름 고름은 아플 정도로 커다랗게 부어있었고, 포토샵으로 문댄 수능 증명사진에서조차 내 얼굴은 벌겠다. 어떤 날은 눈에 막이 한 꺼풀 씐 것처럼 뿌옇게 보였다.


그리고 등굣길에 내 눈앞에 차가 지나가는 지금, 한 발 더 내밀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물론 도로에는 시속 40km로 달려오는 소나타 한대가 있을 뿐이었다.


선생님의 반응처럼, 다들 피곤한데 왜 나만 그랬냐고 묻는다면 선천적으로 스트레스 환경에 취약한 사람이라고밖에 할 말이 없다. 나야말로 왜 나만 그러냐고 묻고 싶었다. 다만 허리 아픈 것도, 네이버 관절 질환 카페에 나 같은 사람 천지였던 걸 보면 나만 이렇진 않을 거다. 그리고 정말 나뿐이라 해도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거다. 그렇게 태어난걸.





타임머신 기계 숫자를 이제 22살로 옮겨보자. 벌써 대학교 2학년이다. 과제는 내일 수업까지고 지금은 12시, 도저히 한 글자도 써낼 생각이 나지 않았다. 모르겠다. 일단 주전부리를 먹으면서 아무거나 타이핑 해본다. 어쩐지 저작행위를 할수록 불안과 초조는 더 증폭되는 기분이다. 그 덕분에 어떤 날은 끝냈고 어떤 날은 끝내지 못했다. 그 이후 찾아오는 탈진으로 집 앞 편의점에서 모찌롤 1개, 조각 케이크 1개, 과자 1봉을 사 들고 마구잡이 폭식을 시작한다.


대학생의 나는 자정까지 자취방 앞 유명 곱창집의 시끌벅적한 소음에 날카로워져 있었다. 개강총회가 잦아들 5월쯤에도 수면 패턴은 나아지질 않았다. 여름이라도 오면 에어컨을 틀었다가 껐다, 창문을 닫았다 열었다 잠 들기 전 한,두시간은 정신이 없었다. 생리 때면 토를 했고 어떤 하루는 폭식하고 다음 날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 운동을 하러 갔다 눈앞에 새까매지는 저혈당 증세를 보였다.


그리고 잠들기 전에 내 뺨을 때리고 벌주는 상상을 했다.


항상 바둥거려야 하는 괴로움을 해결해 보려 하지 않은 건 아녔다. 다행히 한 수업에서 나의 결점을 마주해보라는 강의를 들었다. 열심히 책을 찾아봤다. 나는 항상 이상향을 꿈꿨다. 그러니 도달할 수 없었다. 우울한 감정이 찾아오면 도피했다. 책에선 감정을 회피하지 않고 바라봐주기, 이름 붙여주기, 그런 감정을 느껴도 괜찮다고 해주기. 연습도 해봤고, 한동안 자유로운 기분도 들었다. 하지만 이미 길이 들어버린 습관은 곧 다시 돌아왔다. 다시 휴대폰을 보고, 늦게 자고, 폭식했다. 그리고 안 좋은 생각을 많이 했다.





여기서 더 안 좋아질 수가 있을까? 사람의 생명에 치명적인 건 움직임 그리고 사회적 관계였다.


혼자서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때 내려온 본가는 더 깊은 피폐함 속으로 나를 가뒀다. 지방엔 사람이 정말 없었고, 부모님과는 싸웠다. 내가 만나는 사람이라곤 휴대폰 속 아이돌 혹은 개그맨, 덕질은 밤을 우습게 넘겼고, 다음날은 피곤함을 견디질 못했다.


감정은 휴대폰과 불량 음식에 녹아 사라지는 듯했다. 그러나 아침이면 고개를 쳐들었고 다시 간편하게 불닭볶음면에 물을 붓고 유튜브를 다시 켤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소화를 못 시키고 피로에 찌들어 도서관 휴무일조차 깜빡하는 하루가 일상적이었다.


초조함, 불안함, 절망감이 내 옆과 앞을 가린 듯, 발끝만 보고 산책하던 날이 있었다. 그러면, 철컥. 머리에 총구를 겨누는 상상에 갇히기도 했다.




타임머신 환상은 끝이 났다. 다시 밥 먹던 테이블 앞 현실로 돌아왓다. 그 이후엔 다들 아는 결말, 허리가 아파서 2년을 못 걸었다. 세 번의 시기를 겹쳐놓고 보니 그 모양이 참 비슷했다.


부정적인 사고방식, 폭식, 불면, 밤새워 휴대폰 보기. 어느 것 하나 먼저랄 것도 없이 둘둘 엉켜서 떨어지지 못했다. 쥐들이 서로 꼬리끼리 묶여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기이한 장면이 생각난다.



이 정도면 지속적인 괴롭힘으로 고발당해야 한다.


반복적으로 내가 내 몸에게 해왔던 일들을 말해줄 누군가 필요했다. 몸이 10년 만에 경위서를 작성했다.


통증표에 적은 수치가 3을 가리킬 때쯤이 되자, 몸의 목소리가 그제야 들리기 시작했다. 다시 혼자되기 시작하자 오랜 습관이 극단적으로 터져 나왔고, 예전에 가끔 느껴왔던 몸의 통증이 생각났다.


다들 하나씩 있지 않은가. 나만 아는 오랜 통증. 오른쪽 발목 앞쪽 접히는 부분이 좀 오래 걸으면 아파진다던가, 폭식한 다음 날 화장실에 오래 앉아 있으면 다리가 저린다던가, 가끔 갈비뼈를 누가 찌른 것처럼 깜짝 놀라는 통증이 생긴다던가. 사소하고 금세 잊히는 그런 통증들 말이다.


손발에 생긴 알 수 없는 습진, 폭식하면 멍해지고 부정적인 생각이 곧바로 올라오는 것까지 모두가 몸의 경고장이었다. 확성기로 고래고래 소리지를 땐 들리지 않던 목소리가 드디어 들렸다.


허리 통증을 넘어서 나 자체를 돌아보라는. 그리고 이 모든게 2년간의 병을 끌고 왔다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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