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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유담 Jan 30. 2017

<교토편> 11. 낙동의 은각사

은각사는 은으로 만들지 않았다

니시혼간지를 중심으로 놓고 동서남북으로 구분하면 된다. (구글 지도)

 낙서, 낙동이라는 말은 현지에서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현지에서는 거의 쓰지 않는다. 교토를 중국의 수도 낙양(洛陽)에 비유하여, 한 글자 '낙'만 차용하여 중심을 '낙중(洛中)'이라 하고 동, 서, 남, 북을 구분했다. 옛날 경복궁처럼 교토 주변으로 담장이 있었는데 그것을 기준으로 했다는 말도 있다. 낙동 지역은 특별히 '히가시야마(東山)'라고 따로 부른다. 여기 강이 흐르면 '낙동강'인가.

 금각사는 유명한데, 은각사는 확실히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았다. 처음 이름을 들었을 때는 '금'이 있으니 검소하게(?) '은'으로 만든 누각이 있겠구나 했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일본어로 은각사는 '긴카쿠지(銀閣寺, ぎんかくじ)'다. 금각사는 '킨카쿠지(金閣寺, きんかくじ)'로 발음이 약간 비슷하다. 그럴리는 없겠지만 길을 묻다가 어설프게 잘못 발음해서 엉뚱한 곳에 가는 일이 없도록 하자.

은각사는 근처에 전철역이 없으니 버스를 이용해야 한다 (구글 지도)

  전철역이 매우 멀다. 걷는 것을 좋아하지만 은각사에 갈 때는 왕복으로 버스를 탔다. 버스가 두려운 사람은, 케이한선(京阪線) 데마에야나기(出前柳, でまえやなぎ) 역에 내려서 2번 출구로 나온 후 계속 앞으로 끝까지 걸어가면 나온다. 버스는  5, 17, 102, 204번을 타서 '긴카쿠지미치(銀閣寺道)'에서 내리면 된다.

 은각사를 가기 전 유명한 '철학의 길(테츠가쿠노미치, 哲学の道, てつがくのみち)'를 먼저 만나게 된다. 그냥 같이 소개 하셨어도 될텐데 나 역시 뒤로 미룬다. 일본에서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philosophy'라는 말을 '테츠가쿠哲学'라는 한자어로 만들어 냈다. 그것을 그대로 우리가 수용하여 '인간이나 세계에 대한 지혜·원리를 탐구하는 학문'이란 말이 '철학'이 되었다. 이런 식으로 만들어진 말이 너무나 많다. 일본어 발음이 아니라도 한자어 자체도 일본에서 만들어진 말이 많기 때문에 완전히 일본어를 배제한다면, 우리는 한 마디도 제대로 못할지도 모르겠다. 슬픈 현실이다. 이 내용은 고종석 선생의 1,2편으로 된 책 <문장>에 더 잘 나와있다.

 철학의 길은 은각사와 곧장 연결되지 않고 오른편으로 꺾인다. 이정표에 거의 대부분 한글도 같이 써있으니 찾는데 문제가 없다. 대부분 같은 목적지기 때문에 길 잃을 염려는 없다. 사람들을 따라 가면 이내 상점가가 늘어선 골목이 나온다. 씨끌벅적하다. 중국 관광객이 많이 보인다. 

 상표와 로고를 패러디하여 일본화 또는 불교화 해서 웃음을 주는 아이템들이 넘친다. 딱히 일본에서도 입고 다니기는 민망스러워 전혀 사고 싶은 마음은 안들었지만 꼭 전통적인 것이 아니더라도 이렇게 개성있게 만들어낸다면. 낡고 보수적으로 느껴지는 불교 쪽에도 좀 더 다가가기 쉬워지지 않을까.

총문 앞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책에서만 보던 것이 현실이 될 때의 쾌감. 동백나무 생울타리 

 유 교수가 미사여구로 이 참도를 칭찬하셨지만, 여러 곳을 다닌 경험으로 이렇게 높은 담이 있으면 '유료 입장'이라는 변함없는 진리. 보물을 쉽게 보이면 가치도 떨어질 뿐더러 재미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문화재에 너무 관대한 것일까. 어쩌면 흔할 수록 더 중요한 것인데. 입장할 때 돈을 내는 것이 불쾌하게 여겨지는 습관. 

 수익은 투자로 이어지고 더 나은 콘텐츠가 나온다. 초반에 빈곤한 볼거리로는 당연히 돈이 아깝다고 느껴질 수 밖에 없으니 정부나 지자체 차원에서 선투자 후에 자발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문화재를 돈의 논리로 접근하는 것이 비극이지만, 아무도 찾지 않는 문화재를 문화재라고 할 수 있을까.

  동백나무 울타리에 꽃이 피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이 때도 겨울이었는데 더 늦은 겨울에 갔어야 했다. 다시 볼 수 있을까. 은각사가 아니더라도 동백꽃이 만발한 울타리만 보기 위해 가더라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 곳이다.

 참도를 지나 경내로 가면, 금각사를 처음 봤을 때 '앗!' 하고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나오는 정도의 임팩트는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오오' 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천룡사나 용안사를 가면 이미 쇄석을 정리해놓은 정원에 익숙해져서 감동이 덜할 지도 모르겠다. 

 해가 질 때쯤 가서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가라앉는, 낙엽이 떨어지는 가을을 눈으로 보고 있는 느낌. 같은 장소라도 계절을 넘어 그날의 시간에 따라 또 보이는 것이 달라지니 매 순간이 아쉽고, 또 그렇기에 지금이 중요한 것이 아니겠는가.

 비나 바람이 불면 흐트러질 은사탄을 매일 정돈하고, 나무를 가지치기 하고 다듬는 정원사. 가장 많은 비용은 이들 인건비로 쓰여지는 것인가. 우리나라 절에도 종무소가 있어 이런저런 관리를 다 하고 있겠지만 여러 곳을 다니면서 종무소 같은 곳은 보지 못한 것 같다. 안보이는 곳에 따로 배치를 한 것인지, 아니면 다 매표소 안에서 다 처리하는 것인지. 일본 절에 대해 제대로 알아보지 않아서 한국 불교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는 알지 못하나, 일단 경험한 바로는 관광지로 유명한 절은 철저히 관람 위주고 절에서 신자에게 밥을 주거나 스님과 편하게 만날 수 있는 구조는 아닌 듯하다. 

만드는 방법이 가장 궁금한 '코우게츠다이(向月台, こうげつだい)'

 은각사 경내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수많은 나무들보다 단연 향월대와 은사탄이다. 그냥 다른 절처럼 돌에 고랑을 내어 정렬한 정도가 아니라 일정 높이까지 쌓은 뒤에 다시 정렬한 방식이다. 향월대는 책의 사진보다 각이 더 좁아서 그 때 그 때 새로 만드는 것이라 판단된다. 깔대기 모양을 엎어서 쌓는 것인지 밀어올린 다음 바깥은 다시 정리하는 것인지 너무 궁금해서 요즘 구글보다 더 정확한 유투브를 찾아 보니 2~4명의 석공들이 일일이 수작업으로 쌓아서 건물 시멘트 작업하듯이 다듬는 것이었다. 얼마의 간격으로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책에 한 달 정도 간격으로 모래를 정리한다고 했으니 향월대도 같은 때 하지 않을까 싶다. 그 정성에 또 놀란다. 절의 입장에서는 비나 태풍이 안오기만을 바라겠지. 단순히 모래 하나로 상징을 만들어 내는 기술이란. 

 동선이 정해져있어 순로를 따라 한쪽 방향으로 가야하니 보이는 것은 같다. 처음과 끝은 '은각'이라고 하는 관음전이다. 여기서도 금각사와 평등원처럼 봉황이 꼭대기에 올라가 있다. 은각사의 봉황은 구리로 만들었다. 이 봉황이 무로마치 막부의 상징인지, 아님 다른 의미가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기록에 따르면 18세기 후반까지 봉황이 아니라 보석이 올려져있었다고 한다. '관음전' 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내부에 관음 보살상이 있다고 하는데 볼 수 없다. 기본적으로 국내의 절에는 북이나, 범종, 오가는 스님들, 목어 등으로 쉽게 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일본 절은 모르고 오면 이곳이 절인지 쉽게 알기가 어렵다.

 처음부터 이곳을 '은각'이라고 한 것이 아니고, 은각이라고 부른 것은 에도 시대 이후에서 부터다. 책에도 있지만 금각사도 원래 이름이 '로쿠온지'이듯, 은각사도 별명이고 원래 이름은 '동산 자조사(지쇼우지, 慈照寺, じしょうじ)'다. 그러나 은각사 역시 본래의 이름인 '지쇼우지'라고 물으면 사람들이 잘 모른다. 

 1658년 <낙양명소집>에 처음으로 '은각'이라고 언급되었다고 한다. 2007년 1월 5일에 조사 결과 은색 칠은 한 적이 없다고는 하나, 여러 설이 있는데. 원래 은색 칠을 했다가 벗겨냈다는 말, 태양빛에 의해서 옻칠이 은빛으로 빛나보였다는 설, 은박을 하려다가 아시카가 요시마사가 타계하는 바람에 못했다는 설 등 이야기는 많다. 이곳은 특별히 화재 등 사고는 없었으나, 내진 보강과 기둥 등에 손상을 고치기 위해서 2008년부터 2년간 1억 4천만 엔을 드려 복귀했다고 한다. 

 이제 지진에서 안전하지 않은 우리나라, 특히 경주의 문화재는 괜찮은 것일까. 더이상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 없기를 바란다. 

금경지는 울창한 수목 때문에 상대적으로 작아보이지만 조화롭게 어울린다. 방장 현판에 글자를 못 읽었는데 '동산수상행'. 여덟 팔자가 아니라 다닐 행이었다니. 건물이 여러 채 있는데, 다녀왔음에도 관음전을 제외하고 어디가 정확히 동구당이고 어디가 동인재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갔을 때는 내부를 볼 수 없었는데.


이것이 이케 다이가의 그림인가? 

 은각사는 특별히 할 말이 없다. 무념무상으로 계속 걸었다. 금경지를 건너면 '원령공주'의 세계로 넘어갈 듯한 분위기의 숲으로 바뀐다. 가파르지 않고 완만한데도 꽤 높다. 은각사 전체는 물론 멀리 교토 시내도 보인다. 복잡한 생각을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경치를 눈에 담는다.

 금각사의 화려함과 대비되어 심심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사실 이 자체로도 지극히 화려한 것인데 수수하게 느껴지니 인간의 마음이 이렇다. 상대적이다. 아침 일찍 은각사를 먼저 왔다가 정오가 되기 전에 금각사를 가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뭔가 올림픽에서 금메달과 은메달의 차이라고 하면 너무 멍청함을 드러내는 말일까.

 금각사, 용안사를 갔다면 은각사는 건너 뛰고 다른 곳을 가도 무방하다고 말하고 싶다. 그러나 시간이 없어서 딱 한군데만 갈 수 있는데 어디를 가야할지 모르겠다면 종합선물세트 같은 은각사로 가면 된다고 하고 싶다.

 입장료 500엔. 

은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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