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모강 십리ㅅ벌에 해는 저물어
교토편 마지막 글. 말도 안되는 것이지만, 출판 한 번 되보겠다고 시작한건데 애초에 유홍준 교수 발자취를 따라 습작을 썼으니 시작부터 글렀다. 바쁘다는 핑계로 밀리고 밀려 그 사이 다 잊어버리고 묵은 감정으로 쥐어짜듯 쓰고 있지만. 그래도 미천한 글재주로 하잘 것 없는 것도 긁어 모으니 나름 하나의 결실이 되었다. 한 명이라도 누군가 내 글을 보고 도움을 받았으리라 우기면서, 그걸로 기뻐한다.
3월 1일. 삼일절에 의미있게 남긴다.
유종의 미. 도시샤 대학(정확히는 도-시샤, 同志社大学, どうししゃだいがく).
윤동주의 팬이라면 위치는 몰라도 한 번은 들어봤을 곳. 나 역시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시절부터 유난히 한컴 타자연습에 '별 헤는 밤'이 좋았다. 뒤늦게 '서시'도 그의 작품이라는 것을 알고 빠져들었던 때가 있었다. 최근에 무한도전에서 윤동주를 비중있게 다루어 음원도 나온 것으로 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 4, 교토의 명소" 가장 마지막. 그들에겐 내력이 있고 우리에겐 사연이 있다는 부제에 '사연'에 해당되는 곳이 아닐까 싶다. 단지 윤동주가 다녔다는 이유로 한국인에게 의미있는 장소가 되었으니.
졸업한 모교의 건물도 여전히 모르는데 남의 대학을 가서 무엇하나 하여, 원래 계획에 없었으나 윤동주를 너무나 좋아하시는 고등학교 은사님께 사진이라도 헌정하고 싶었다. 책이 아닌 호텔에서 만난 일본인 누님 덕분에 도시샤 대학에 윤동주 시비(詩碑)가 있다는 것을 먼저 알게 되었는데, 나란히 정지용의 시비도 있다고 하여 뒤늦게서야 아무것도 없더라도 꼭 가야겠다는 마음이 일었다. 결국 팔은 안으로 굽는다.
윤동주와 정지용 시인은 너무나 유명하여 모든 설명은 생략한다. 정보가 없이 가서 많은 것을 놓쳤다. 어쩌면 이 글이 가장 사람들에게 많이 읽혀질 듯한데 그 때문이라도 가장 공을 들여 쓰려고 한다.
오사카 우메다역에서 가면 한 번 갈아타야 한다. 번거롭지만 JR을 타지 않으면 이게 제일 빠르다. 한큐 교토선(阪急京都線)을 타고 카라스마(烏丸)역에 내려서 시죠(四条)역까지 걸어간 다음, 카라스마선(烏丸線)으로 갈아타서 이마데가와(今出川) 역에 내리면 바로 대학교와 연결되어 있으니 찾기 쉽다.
도시샤 대학의 캠퍼스는 여러 곳으로 나뉘어져있는데, 이마데가와 캠퍼스가 윤동주와 정지용의 시비가 있는 곳이다.
https://www.doshisha.ac.jp/kr/
유학생이 많은 편인지 한국어 홈페이지도 개설되어 있다. 그러나 디테일에서 일어 원문과 차이가 많다.
웬만한 곳에는 한글이 표기되어 있는데, 간혹 없는 경우도 있다. 일본어 절반 이상은 한자표기가 되어있어 한자를 조금만 읽을 줄 알아도 의미는 파악하기 쉬운데, 요즘 한자 실력이 성인들도 심각할 정도의 수준이라 우려스럽다. 영어가 있기는 하지만, 그 나라에 갈 때는 최소한 글자는 읽을 줄 아는 정도는 됐을 때 가는 것을 권한다.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2개의 캠퍼스가 더 있다. 신마치(新町), 무로마치(室町). 보통 도시샤 하면, 이마데가와 캠퍼스를 뜻한다. 북쪽에 상국사와 인접해 있고, 또 남쪽엔 일본의 궁궐인 어소(고쇼, 御所)가 있다. 시간을 잘 맞추면 이곳에서도 반나절 이상 관광이 가능하다. 만약 상국사와 어소까지 같이 보기로 했다면, 어소는 입장이 가능한 시간이 정해져있으니 먼저 확인 후, 상국사까지 보고 나서 도시샤 대학을 가는 것을 권한다. 윤동주 시비를 보는 것이 목적이라면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으니까.
윤동주가 다니던 때와 많은 것이 달라졌겠지만, 감정을 이입하여 내가 학생인 것처럼 학교를 둘러보았다. 나를 가장 처음 반겨준 것은 엄청난 크기의 크리스마스 트리였다. 밤에 왔다면 조명이 켜진 장관을 볼 수 있었을텐데. 나무 크기가 엄청났다. 크리스마스가 한 달도 넘게 남은 때임에도 한국이나 일본이나 겨울만 되면 사실상 한 계절 전체가 성탄절이 되는 듯하다. 크리스트교 신자가 극소수인데도 이러는 걸 보면 참 신기하고 재밌는 나라다.
그러나 어쨌든 도시샤 대학의 설립자 '니지마 조(新島 襄)'는 미국 유학파의 기독교 신자이고, 학교 역시 기독교 미션 스쿨에 윤동주 역시 크리스찬이니 트리가 있는 것은 당연한지도.
학교는 마치 유럽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건물이 아름다웠다. 도쿄 릿쿄대학 영문과에서 멀리 이곳 교토의 도시샤 문학부로 온 윤동주. 원하는 시를 더 깊이 이해하고 공부할 수 있어서 행복했을까? 암울한 현실에서 평화로운 교정에서 조금이라도 위안을 얻었을까.
정지용은 도시샤 대학에 1923년 영문과에 재학했고, 윤동주는 1942년에 왔다. 정지용이 15살 위다. 둘은 생전에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윤동주의 중학 시절에 책꽂이에 정지용의 시집이 있었다고 하고, 윤동주의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초간본에 정지용이 서문을 썼다. 좋아하는 시인이 자신의 시집에 글을 써주었으니 하늘에서 분명 윤동주는 행복했을 것이다.
학교가 그리 크지 않아 천천히 둘러보았다. 시비는 천천히 찾고 교정을 천천히 돌아보았다. 그러다가 잘못 가서 옆의 도시샤여자대학까지 가버렸는데, 바로 경비가 나를 제지했다. 잘못 들어온 것을 사과하고, 윤동주 시비를 묻자 'ゆんどんじゅ?(윤동주라고 히라가나로 쳤는데 尹東柱라고 자동으로 고쳐지네...)' 라고 바로 웃으며 지도를 꺼내준다. 꽤 많은 한국인들이 찾아온다는 것.
따뜻한 햇살 아래서 다시 대학생 감수성으로 교정을 거닐다보니 저절로 시상이 떠오르기도 했다. 지도를 보고 헤매지 않고 바로 시비를 찾아갔다.
대학교 홈페이지에서도 바로 소개를 해주고 있다. 일본에 의해 죽임을 당했는데 다시 일본에 소개가 되는 아이러니. 과거는 과거로 두고, 이처럼 긍정적인 아름다운 모습만 남길 수는 없을까.
윤동주, 정지용 두 시인의 시비는 지도가 있으면 쉽게 찾을 수 있지만, 의식하지 않고 가면 쉽게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위치해 있다. 그 앞에서 열심히 낙엽을 쓸고 청소를 하는 일본인이 있어 목례했다. 소수를 전체로 판단해서는 안된다.
좌우로 나란하게 시비가 놓여있다. 우측이 정지용, 좌측이 윤동주.
정지용 시비에는 <압천> 이라는 시가 있다. 교토의 카모가와(鴨川)를 그대로 한자로 읽은 것이다.
압천(鴨川) 십리(十里)ㅅ벌에
해는 저믈어…… 저믈어……
날이 날마다 님 보내기
목이 자졌다…… 여울 물소리……
찬 모래알 쥐여 짜는 찬 사람의 마음,
쥐여 짜라. 바시여라. 시언치도 않어라.
역구풀 욱어진 보금자리
뜸북이 홀어멈 울음 울고,
제비 한쌍 떠ㅅ다,
비마지 춤을 추어.
수박 냄새 품어오는 저녁 물바람.
오랑쥬 껍질 씹는 젊은 나그네의 시름.
압천(鴨川) 십리(十里)ㅅ벌에
해가 저믈어…… 저믈어……
개인적으로 압천은 잘 모르고, 이동원&박인수가 불러 유명해진 <향수>란 시를 더 좋아한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이 휘돌아나가고... 정지용은 강을, 윤동주는 별을 사랑한 것 같다.
양쪽 시비에는 국화 꽃이 가득 놓여있고 음료수 병들도 놓여있다. 한국인 정서라면 술일텐데, 확실치는 않지만 일본인들도 꽤 찾아오는 듯하다.
정지용 시비는 2005년 10월 30일에 건립했다.
이곳만큼은 다른 곳과 달리 아직 관광자원화 되지 않아서 다행이다. 두 시인도 원하지 않을 것이다.
아, 정작 연세대에 있다는 시비는 가볼 생각도 않았으니 이미 관광자원화 된 것인가?
윤동주 친필을 그대로 가져오 새겼다는 것에서 간접적으로 나마 그를 느낀다. 여기엔 '서시'가 씌여있다. 차라리 '쉽게 씌여진 시'를 새겨넣었다면 어떠했을까. 대학 측에서 반대했을까. 죽는 날까지... 로 시작하는 서시가, 정말 죽는 날 마지막까지 있었던 이곳에 있어 슬픈.
그냥 한글만 있었으면 어떠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는데 서시 번역본도 나란하게 있다.
1995년 2월 16일에 윤동주 50주기를 기념하여 건립한 것이다.
序詩
死ぬ日まで空を仰ぎ
一点の恥辱なきことを、
葉あいにそよぐ風にも
わたしは心痛んだ。
星をうたう心で
生きとし生けるものをいとおしまねば
そしてわたしに?えられた道を
歩みゆかねば。
今宵も星が風に吹き晒らされる。
이 번역은 '이부키 고 (伊吹郷)'라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여기서 하늘을 그냥 공간적 개념인 '소라,そら(空)'라고 하는 것보다 天이라고 해야 맞는데. '모든 죽어가는 것을'라는 부분도 '生きとし生けるものをいとおしまねば(살아있는 모든 것)' 으로 바꿔버렸는데 원래 문학이 번역을 하면 왜곡되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건 너무나 다른 시가 아닌가. 윤동주의 시는 일본 교과서에도 실린다는데 정부 차원에서 이 부분은 고쳐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앞에서 묵념을 하고 나왔다.
바로 나서기 아쉬워 한 번 더 둘러보다가 어소로 향했다. 전철과 버스가 잘 되어있어 교토 어느 곳이든 다 가기 편하게 되어있다. 윤동주 시비는 거쳐가는 코스로 두면 좋다.
어소는 관람 시간이 정해져있다. 다른 문화재 방문 때 이런 경우가 없어서 전혀 예상을 안하고 갔다가. 보거 가려면 무려 3시간을 기다려야 해서 그냥 포기했다. 과거 천황이 살던 궁전이기에 신성시 되는 것인지, 과거 무슨 범죄가 사례가 있어 대비하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경복궁과 대접이 너무나 달랐다.
딱히 한국인으로서는 가볼 가치가 있는 곳도 아니고 보고 싶지도 않아서 은행나무만 구경하고 왔다.
사무소에 여권이나 신분 증명서를 가지고 등록을 한 다음 보게 되어있는데, 정작 현지 관광객도 얼마 없어서 추천하고 싶지 않다.
http://www.kunaicho.go.jp/e-event/kyototsunen-sankan-sks.html
한국어는 없고 영문 홈페이지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