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국보 1호 '목조반가사유상'
1년 간의 일본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온지도 넉 달이 지났다. 새로운 목표를 위해 투잡을 한다는 핑계로 금쪽같은 시간들을 잠으로 흘려보냈다. 그 때 만났던 향기 나는 사람들, 사진으로만 보던 아름다운 풍광과 문화재들을 다시 나의 사진으로 담아놨었는데. 디지털 시대에 사진이 부패하지는 않겠지만, 내 머릿속의 기억들은 게으름으로 인하여 하나씩 지워지고 있었다. 서른이 지나기 전에 책 한 권을 써보자는 다짐을 했건만, 이뤄놓은 것도 없는데 낙서나 다름없는 글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자책만 했다. 그러다 겨우 써 본 글들이 이내 마음에 들지 않아 썼다 지웠다 반복, 완벽하지 않은 놈이 완벽함을 추구하면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 시작이 반. 어느 날 무능한 나에게 'Brunch'라는 구원군이 다가왔다. <무엇을 할지 고민하던 누구나 부담 없이 쓸 수 있는 기행문으로 포문을 열 수 있게 해주었다. 지난 일본에서 보았던 좋은 것들을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아닐까.
그냥 쓰면 내 이야기만 하면 재미없으니까, 가기 전에 내 여행에 큰 동기부여가 되었던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일본편>을 '창비' 출판사와 지은이의 아무 대화와 동의 없이 "오마주"하여 써보기로 한다. 새발의 피에 불과한 나의 글을 계기로 누군가 유홍준 교수의 글을 더 읽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가장 크다. 거기에 턱없이 부족하지만, 내가 더 보탬이 될 수 있는 부분들. 예를 들면, 예술적 안목이 턱없이 부족한 평범하고 일반적 청년의 눈높이, 단체 버스가 아닌 부족한 경제적 형편으로 저렴하게 문화재를 찾아가는 방법, 달까지 선명하게 촬영 가능한 카메라로 찍은 사진들, 답사 시간에 쫓기지 않고 1년을 살면서 여유롭게 구석구석 볼 수 있는 여유 등.
미숙한 글솜씨에 경력이라고는 4년제 학사 졸업증뿐이지만, 나름 문화콘텐츠 전공, 사학 부전공자로서 누군가 단 한 명에게는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기에 콘텐츠의 홍수 속에 물 한 방울을 더 한다.
여행기의 순서는 나의 시간 흐름이 아닌,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일본편>의 목차 순서로 쓴다. 유홍준 교수의 책을 읽고 여행을 가는 사람을 위한 부록 정도로 여겨져도 감사할 따름이다. 그래서 가급적 책에 이미 언급된 내용은 내 스스로 보고, 듣고, 느낀 것이 아닌 이상 최대한 자제할 것이고 대신 책에 없는 정보들을 첨부하려고 한다. 일본편은 총 4권으로, 규슈부터 나라를 거쳐 교토로 오는 순서이나 규슈는 가지 않았고, 나라는 분량이 적어 나중에 오사카와 함께 엮어서 쓸 계획이다.
시험 문제를 맞혔든 틀렸든, 분명 다 역사 교과서에서 한 번은 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반가사유상'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이미지를 떠올리고 같은 자세를 장난처럼 취해본 경험도 분명 있을 것이다. 국보 1호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이 있었다. 우리나라는 너무나 부끄럽고 슬프게도, 국보 1호가 전소되어 이제 진짜 숭례문이 아닌 남대문이 돼버렸지만. 한반도를 통해 건너갔다는 것이 유력한데, 그것이 일본의 국보 1호라는 것이 어릴 때부터 늘 신기했던 터다.
금전적 문제로 여행자금을 모으느라 늦은 것도 있었지만, 광륭사는 일부러 마지막에 보고 싶어서 아껴두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제일 마지막에 본 교토의 유적지가 책에서는 가장 첫머리에 나온다.
광륭사를 가장 편하고 빨리 가는 방법은 교토역에서 5분 정도 걸어 역 앞 버스정류장에서 73번 버스를 타고 우즈마사코류지 앞(太秦広隆寺前) 정류장에서 내리는 것이다. (나는 오사카에 거주했었고, 시외로 나갈 때는 반드시 간사이스루토패스(http://www.surutto.com)를 구입했다. 3일권 가격이 5200엔인데, 내 동선은 마음만 먹으면 하루에 본전을 뽑을 수 있을 정도로 폭넓은 이동 범위를 자랑해서 무조건 이득이었다. 특히 교토에서는 버스도 무료로 이용할 있어서, 정말 원 없이 다녔다. 스루토패스가 있으면 일단 교토 여행은 비용에 구애받지 않고도 여유롭게 다닐 수 있다) 전철은 여러 번 갈아타야 하고 헷갈릴 염려가 있어 일본어에 능숙하지 않은 사람은 엉뚱한 곳에 내릴지도 모른다.
사실 거의 한글화가 되어있고, 한글이 없으면 영어 안내가 돼있어서 크게 어려움은 없다. 그러나 더 깊이 있는 여행을 하고 싶어서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으로 일본어 히라가나 또는 한자를 검색하게 될 일이 생기면 검색이 어려울 때가 종종 있다. 바로 일본어의 장음 때문인데, 예를 들어 '교토'만 하더라도, 한자로는 '京都', 영어로는 'Kyoto'이다. 보통 히라가나를 로마지(romaji) 입력법으로 쓰면, 당연히 기존의 영어 표기대로 'k, y, o, t, o'를 쓰게 되는데 그래서는 절대 우리가 찾는 '교토'를 찾을 수 없다.
히라가나로 'きょうと'이기 때문이다. 입력을 위한 정확한 한글화는 '쿄우토' 또는 '쿄-토', 영어로는 'kyouto'가 맞는데, 발음이 우선하니까 그렇게 하지를 못한다. 일본인들도 입력을 틀리는 경우를 종종 봤다. 이번에 가는 광륭사도 발음상으로는 '코류지'라고 하지만 히라가나로는 'こうりゅうじ', '코우류우지' 또는 '코-류-지'라고 해야 원래 찾던 '광륭사広隆寺'가 나온다.
일본은 우리나라에선 철수한 야후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포털이다. 야후의 지도 및 노선 검색 서비스도 괜찮지만 일본어가 약한 사람은 죠루단(http://www.jorudan.co.jp)이라는 사이트에서 영어도 지원해주니 추천한다. 여기서는 보통 표기하는 영어로 그대로 지명을 검색할 수 있어 헷갈릴 염려가 적다.
버스 정류장에 내리든, 역에서 내리든 두 곳에 잘 도착하기만 하면 광륭사는 쉽게 찾을 수 있다.
생각했던 것보다 규모가 너무 작아서 놀랐다. 사람도 너무 없었다. 이전에 관광지마다 일본인은 물론 한국, 중국인들이 가득하던 곳과 달랐다. 하긴, 교과서에서 불상만 언급했지 한 번도 불상이 모셔진 절에 대해 보여주거나 한 적은 없었으니 만들어진 기대다. 관광객이 많은 곳은 자연스럽게 상가가 형성되는데 주변에 아무것도 없으니, 일본 내에서도 자주 찾는 곳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숭례문이야 서울 중심부면서, 주변에 시청과 광화문, 청계천, 남대문시장이 가까이 있으니 항시 유동인구가 있어 늘 관광객이 존재하지만 광륭사는 뭔가 소외된 느낌이다. 유홍준 교수의 말에 따르면 국보 1호로 지정될 당시에 어떤 상징성이 없다고 했다. 그래도 '1'이라는 숫자가 우리나라에서는 크다고 할 수 있는데, 일본은 그렇지 않은 듯. 만약 국보 1호가 우리나라 반가사유상과 닮은 것이 아닌 다른 무엇이었더라면 알았을까. 다른 나라에 국보 번호제도가 있는지 모르겠으나, 가까운 중국만 해도 국보 1호가 무엇인지 모른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
경복궁에 있을 때와 용산에 있을 때 국립중앙박물관을 다 갔는데, 난 박물관이 2개인 줄로 알았지, 이전한 줄도 몰랐다. 그러면서 입국 후 경복궁에 갔을 때 계속 민속박물관이 예전과 너무 달라졌다며 타박만 했다. 나름 역사를 좋아해서 부전공까지 했다는 나 같은 놈도 이러한데, 외국인이 반대로 우리나라 국보 83호 금동미륵반가상이 어디에 있는지 물었을 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리고 우리나라엔 금동미륵반가상이 하나가 아니라 2개다. 78호 역시 반가사유상인데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 이번에 일본 주구사 목조사유상과 함께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된다니 시간이 나면 가보려 한다.
다른 관광지나 문화재를 둘러보고 광륭사를 왔을 때 가장 눈에 띄는 차이점은 입장료다. 추후 관리와 더 나은 콘텐츠 개발을 위해 당연히 입장료는 내야 한다는 주의지만, 다른 곳보다 많이 비싸다. 보통 300엔에서 조금 더 비싸면 500엔 정도 하는데, 광륭사는 성인 입장료가 700엔이었다. 규모도 작고 불상 외에는 크게 둘러볼 곳이 없는데, 단순히 너무 사람이 찾지 않으니까 올린 것인지 내가 모르는 다른 것이 있어서인지 모르겠으나, 일본에서 거의 신급으로 떠받드는 쇼토쿠 태자와 관련 있다 하더라도 바로 광륭사를 찾기 전 들렀던 법륭사와 비용 차이가 많이 났다. 나 같은 한국인은 필수로 오는 장소니까 일부러 가격을 높게 책정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또 다른 차이는 입구에서부터 절대 사진을 찍지 말라는 안내문들. 다른 절은 촬영에 관대하고, 아니 어느 곳에서도 사진 촬영 제재를 받은 적이 없는데 표를 구입하는 곳에서부터 신영보전 들어가는 내부까지 사진 촬영을 금지하는 문구가 계속 눈에 띄었다. 도대체 왜? 여기가 다른 문화재들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인가. 국보 1호의 상징성이 없다고 했는데 왜? 아무리 생각해도 목조미륵반가상이 한반도로부터 전래되었기 때문에, 외부로 알려졌을 때 자존심에 상처를 입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혼자만의 생각.
신영보전은 별다른 조명 장치를 해놓지 않고, 들어가자마자 어두워지며 수십 개의 불상들이 ㄷ자 형태로 벽을 따라 전시되어 있다. 불상이라기보다는 전쟁을 하는 갑옷 입은 장수들처럼 보이는 것들이 죽 나열되어있고, 쇼토쿠 태자와 진하승 부부 조각상도 있다. 이것은 사진과 함께 책에 더 자세히 소개되어 있으니. 사진을 못 찍게 되면 그 순간을 어떻게든 더 기억하려고 유심히, 천천히, 오래 보게 되는 것 같다. 원래 다 그러했는데 언제부터인가 너도 나도 스마트폰을 꺼내 들고 사진 찍기 바쁘다. 그래 봐야 같은 경험을 하는 이상 남는 것은 다 똑같고, 어디에 있는 사진들인데. 부디 그런 것을 내 원래 생각이 틀렸고, 광륭사에서는 하지 말라는 배려였으면 한다.
"와!"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천천히 다른 불상들을 지나치고, 그리고 마침내 드디어 30년 만에 교과서에서만 보던 일본 국보 1호, 목조반가사유상을 만났다. 반가움에 나온 탄성이 아니라, 정말 아름다워서 나온 탄성이었다. 신영보전 한 가운데 따로 제단을 만들어 그곳에만 은은한 조명으로 눈에 띄게 만들어 놓은 불상. 생각보다 더 컸다. 만약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그냥 봤다면 이것이 나무가 맞는지 의심했을 것이다. 우리나라 국립중앙박물관과 달리 뒤를 막아놓아 볼 수 있는 범위가 한정적이라 아쉬웠다.
표현력 부족으로 불상을 봤을 때의 감동을 다른 이에게 설명할 길이 없어, 몰래 카메라를 들고 말았다.
내부 경비원 두 명 정도, 관광객은 나까지 다섯 명 정도라 눈치 못 채도록 빨리 찍으려고 했는데, 경비원이 아닌 일본인 여성 관광객분이 나를 제지했다. 일본어를 모르는 척하면서 한 장 밖에 못 찍었는데, 그마저도 흔들려버렸지만 실제의 전시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쓸데없는 욕심. 책을 읽으면서 유홍준 교수 같은 분이 왜 새치기하면서 부끄러움을 안겨주는지 이해를 못했는데, 내가 그래 버렸다. 그 부끄러움과 안 되는 것을 알면서 행동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불상이었다고 핑계 대고 싶다. 그림도 못 그리고, 예술에 대해 무지함에도 느낄 수 있는 매력.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몰라 한참 서있다가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는 아쉬움에 다시 들어가서 한 번을 더 들여다봤다. 욕심을 더 냈더라면 제대로 사진을 찍었을지도 모르지만, 한국인 얼굴에 먹칠을 할 수는 없어 한숨만 푹 쉬고 나왔다.
한반도에서 건너간 것이 맞다는 확신. 굳이 성분 분석이나 증거를 대지 않아도 느껴지는 기운이라고 해야 할까. 이미 일본 국보 1호로 지정된 마당에 무의미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왠지 모를 뿌듯함. 타국에서 느끼는 나는 역시 한국인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다시 깨닫는 순간.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지만, 신영보전을 제외하면 광륭사는 딱히 볼 것이 없다. 대부분 절의 관람시간이 오후 4시~5시까지 이므로 여행 코스를 정할 때 아침 일찍 절을 먼저 보고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이 더 볼 수 있다. 광륭사 바로 뒤에 한국에도 유명한 도에이사의 영화 테마파크가 있어 함께 보면 좋다. 이 주변에 먹을 곳이 마땅히 없다는 것이 흠이다. 그러나 나는 불상 하나로 모든 것을 만회할 수 있었다.
처음에 표와 함께 나눠주는 팸플릿에서도 길게 설명만 있지 사진이 없다. 물론 인터넷에 너무나 쉽게 사진을 구할 수는 있지만 별도로 촬영을 한 것이지, 광륭사 내부에 모셔진 그대로의 사진이 아니다. 관광객에게 어찌 보면 상당히 불친절한 곳인데, 반대로 생각해보면 가장 확실한 콘텐츠를 꽁꽁 숨김으로써 또 사람이 찾게 하는 효과가 있다. 교토에서도 소외된 곳에, 도에이 영화마을도 규모에 비해 턱없이 관광객이 적어서 실패한 사례인 듯하여. 두 곳이 서로 시너지가 나지 않기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이렇게 하는 것은 아닌지. 누가 설명해주는 사람이 없어 혼자만의 착각으로 남긴다.
영화마을로 또 한 편의 글이 나올 수 있어 다음으로 미룬다.
이 글을 쓰기 위해서 일부러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았다. 의도치 않게, 찾아간 날이 문화가 있는 날이었는데 초등학교 견학과 맞물렸다. 지도교사가 없는 것인지 통제되지 않은 아이들이 뛰어다니고, 떠들고 난장판이었다. 박물관 직원도 어찌할 바를 몰랐다. 예전에 유홍준 교수가 방송에서, 그래서 문화재는 유료입장을 해야 한다고 했는데 백 번 동의한다.
시간이 부족해서 83호 금동미륵반가상만 보고 왔는데, 이전엔 없었던 유리벽이 생겼다. 누군가 또 손을 댄 것인가. 소수의 몰지각한 인간들로 인해 항상 다수의 피해자가 생긴다. 우리나라 박물관에도 사진 촬영을 금지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방문객이 더 늘어날까? SNS가 보편화된 사회에 '인증'하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사진으로 다시 그때를 추억할 수 있다면 좋지만, 본인 과시용이 될 때가 문제이므로. 그런 이들은 애초에 문화재를 찾지 않으니 염려가 없는가.
10년은 넘지 않았지만, 꽤 오랜만에 다시 금동미륵반가사유상을 봤는데 이상하게도 광륭사 목조반가상을 봤을 때 감흥이 되살아나지 않았다. 세 번째 봐서인지 언제든 마음먹으면 쉽게 볼 수 있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유리벽이 없었으면 하는 아쉬움만.
목조반가사유상 쪽이 좀 더 온화하고 인간적으로 다가온다. 놀랍게도 다시 읽은 책에도 유홍준 교수도 '불상이면서 인간의 모습이 느껴져'라고 표현하셨는데, 막눈이라도 훌륭한 작품에 대한 느낌은 비슷한 가보다.
어떤 사람은 나면서부터 알고, 어떤 사람은 배워서 알며, 어떤 사람은 노력해서 안다.
그러나 이루면 매한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