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번째 영화
일시 : 2019년 1월 9일 수요일 8시
장소 : 신도림 씨네Q
한국 애니메이션의 가능성을 넘어 이제 가능, 아니 우월함을 보여주었다. 평점은 10점 같은 8점.
브런치북이 12월로 끝났을거라 생각했는데, 2019년 새해에도 볼 수 있어 좋았다. 영화 <언더독>은 이전에 홍보 포스터로 자주 접했어서 친숙했다. 이미 개봉을 했다고 생각했고, 부끄럽게도 '드림웍스나 픽사의 영화겠지' 하고 생각해버렸다. 당연한 것이 아닌데, 아직도 애니는 미국 아님 일본만 개봉한다는 멍청한 사대주의.
반가운 이름, 오성윤 감독님! 영화 <26년>에서 도입부 영상의 애니메이션을 맡아주셨던 영화사 <오돌또기> 대표님. 중간 회식 때 같이 사진 찍고 인사만 나눈 정도지만 팔은 안으로 굽는 법이라 반가웠다. 그 때도 이춘백 감독님이 같이 하셨는데 몰라뵈서 죄송할 따름. <마당을 나온 암탉>을 아직도 못봤으니 민망한 게 한두가지가 아니다. 왜 다른 영화는 감독이 누군지 먼저 보면서 왜 <언더독>은 그러지 않았을까...
신도림 시사회는 언제나 기쁘다. 가까워서 상영 전까지 다른 것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있다. 일본 쿠마모토현 캐릭터 쿠마몬을 주제로 하는 '구마몬의 비밀(외래어표기법은 개정할 필요가 있다)' 책을 쿠폰을 살뜰히 모아 3천원에 구입. 국내 애니메이션은 왜 캐릭터화가 안되는 것인가, 하는 의문.
제목을 왜 영어명으로 지었을까. 알파벳도 겨우 아는 실력으로, underdog에 '유기견'이라는 뜻이 있어 중의적 표현인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다. 어울리는 제목이 맞을까.
<베일리 어게인>으로 이미 개와 관련된 영화를 본 상황에서 할 말이 겹치는 부분은 생략. 주인에게 사랑받고 보은하는 주제가 대부분이었다면 아픈 부분을 끄집어 낸 영화. <허스토리> 이후로 감정이 메마른 소시오패스인 나를 또 울컥하게 한 영화였으니 보통 사람은 분명 눈물을 흘릴 강렬한 충격이 있다. 지금도 다시 떠올리면 너무 슬프다. 사람보다 동물이 죽는 것이 더 슬프게 다가오는 것은 내 유년기 때문인 듯.
위대한 모성, 그리고 부부애...
작화는 3D 같으면서도, 동화책을 보는 듯한 따뜻한 느낌. 움직임도 자연스럽고 이질감이 없다. 외국에서 가장 한국적인 영화가 무어냐고 물었을 때, 정통사극이 아니더라도 자랑스럽게 내세울 수 있는 물건이 하나 나왔다. 무조건 봐야할 영화로 추천한다.
그러나 아끼기 때문에 더 비판을 더한다. 안타까운 점 세 가지.
첫째로 한꺼번에 너무 많은 이야기를 담으려고 했다. 유기견 방치와 공장형 교배의 문제만으로도 충분히 이야기를 끌고 갈 수 있었는데 여기에 외국인노동자, 재개발, 환경파괴, 남북 평화, 보신 문화까지 과하게 우겨넣은 기분이다. 때문에 주인공 '뭉치'의 행동과 전반적인 전개가 와닿지 않는다.
이로 인해 두번째 문제가 발생하는데 애매해진 관객층. 성인을 타겟으로 하면 약간 유치한 감이 있고, 어린이 마음에 들기에는 전반적으로 무겁고 우울하다. 뜬금없는 러브라인은 개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인가. 아이들은 공감할 수 있을까.
한국영화 전체가 부정적인 주제를 다루는 게 많아지는 듯하다.
마지막으로 성우진. 나만의 편견이면 좋겠지만, 이상하게 목소리 연기가 너무 안어울린다. 누구인지 알고 있기 때문에 모습이 전혀 다른, 심지어 그림임에도 불구하고 원래의 인물이 먼저 떠올라버린다. 박철민 배우의 얼굴이 가면을 쓴 것처럼 내내 보였고, 강석 씨 목소리가 나올 때는 몇 년만에 라디오 싱글벙글쇼를 듣는 기분. 정극 연기와 성우 연기는 분명 다른데, 애니메이션은 전문 성우진이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본다. 점점 입지가 줄어드는 성우들에게 좀 더 많은 기회를 주었으면... 아역도 성인이 했으면 한다.
주인공은 "버려진 개"들이지만, 사실상 모든 에피소드에 사람이 연결되어있다.
사람에 의해 버려지고, 사람이 버린 집에 살면서 사람이 버린 음식을 먹고, 다시 사람한테 잡힌다. 어떤 개는 먹히고, 어떤 개는 갇히고, 어떤 개는 죽고, 어떤 개는 자유를 얻는다.
어눌한 우리말을 하는 외국인 노동자가 남은 음식을 개들에게 나눠주고, 그 때문에 한국 사장에게 쫓겨난다. 사람에게 버려졌지만 다시 사람에게 구해져 치료 받고 사랑받는다.
사람이 심은 지뢰를 사람이 밟고, 사람이 만들어내는 분단선을 사람이 만든 수류탄으로 넘을 수 있게 된다. 복잡하군.
누가 봐도 이상순, 이효리인 부부가 등장한다. 유기견을 구하는 상징처럼 되었지만 어찌되었든 좋은 이미지로 다른 사람에게 긍정적 영향을 준다면 환영받을 일이다. 고라니를 사냥했는데, 고라니가 옆에 와서 노래 듣는 설정은 너무 잔인...
북한 지명이 적힌 이정표 아래 이동경로를 갈라놓은 고속도로, 거기서 발생하는 죽음. 아니길 바랬는데 처음에 이상향으로 설정한 곳이 역시나 비무장지대. 진보적 성향이 강한 영화가 되었다. 또 극우에서 평점 테러를 할까 두렵다. 있는 그대로를 봐줬으면. 참 좋은 영화인데.
새해가 아니라 5월에 개봉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지금 개를 키우고 있는 사람이나 앞으로 키울 사람이나 키웠던 사람이나 무조건 가족 손잡고 보러 갔으면 하는 영화.
공중파 TV에서 황금시간대에 틀어줬으면 하는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