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유담 Oct 01. 2016

<교토편> 6. 청수사

평양감사도 제 싫으면 그만

2015년 11월 15일


 교토를 몰라도 청수사(키요미즈테라, 清水寺, きよみずてら)는 아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가보지 않았어도 본당 전체를 사진 찍을 수 있는 각도가 한 곳 밖에 없다고 확신하게 되는, 계절의 변화만 있을 뿐 같은 모양의 사진. 그래서인지 이상하게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교토를 가면서 앞을 수차례 지나갔으나 청수사 부근에 있는 토토로 관련 기념품을 파는 가게가 목적이었다. 계속 미루고 있다가 야간 개장을 한다는 것을 알고 난 뒤에야 뒤늦게 호기심이 생겼다. 머물던 오사카를 벗어나기로 확정한 때여서, 가급적 이 때는 누구와 같이 가서 기억을 남기고자 꼬셨는데 한국어를 열심히 공부하시던 칸자키(神埼) 상과 함께 했다.

청수사까지 가는 거리를 포함한 한 블럭이 완벽한 관광상품이다 (구글지도)

  청수사에서 가장 가까운 전철역은 카와라마치다. 케이한선 키요미즈고죠우(清水五条, きよみずごじょう)역이다. 그 다음 가까운 역이 한큐선 카와라마치(河原町, かわらまち)역이다. 앞서 소개한 기온과 청수사를 하나로 묶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도 철저히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의 순서로 간다.

 나는 걷는 것을 좋아해서 일부러 편도로만 버스를 타고 걸어다녔는데 거리가 꽤 있다. 버스 타는 것이 두려운 사람은 위 전철역 중 내려서 이정표를 보고 따라가면 쉽게 찾을 수 있다. 거의 모든 곳에 한국어 설명이 있기 때문에 솔직히 일본어를 한마디도 못해도 여행에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다. 

 가장 편하게 가는 법은 교토역에서 교토시버스 206으로 시작하는 버스나, 앞자리가 100으로 시작하는 버스 중에 청수사라고 적힌 것을 보고 타는 것이다. 꼭 교토역이 아니더라도 왠만한 역 앞에 버스가 다닌다. 케이한(京阪, けいはん)버스 83,85,87,88번도 간다. (일부러 일본어 원음으로 표기하는데 실제 발음은 앞자리가 된소리라도 약하게 발음하기 때문에 '키요미즈테라'보다는 '기요미즈데라'에 가깝게 들리지만, 이렇게 되면 나중에 히라가나로 검색을 해야하거나 할 때 실제와 전혀 다른 글자가 되서 알아볼 수가 없다. 표기법은 책이 정답이겠지만, 계속 나는 이렇게 표기한다)

 청수사 바로 앞에 내려주는 것이 아니라 청수도(키요미즈미치, 清水道, きよみずみち)나 고죠우자카(五条坂, ごじょうざか)에서 내리면 된다. 버스에서도 한글, 영어 안내판이 다 뜨고 방송도 나오고 가장 쉬운 건 사람이 가장 많이 내리는 곳이면 거의 청수사라고 보면 된다.

오사카의 유니버셜스튜디오보다 더 많은 인파. 우리나라에서 문화재 앞에서 줄을 이렇게 서는 날이 올까?

 일부러 평일 개장 초반에 사람이 그나마 없을 것 같은 날을 골랐다. 청수사 앞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한 칸자키 상을 찾을 겨를도 없을만큼 어마어마한 인파가 길을 막았다. 약 1km 되는 거리가 사람으로 가득 찼는데 아주 질서정연하게 한쪽은 내려오고 한쪽은 기다리는 완벽한 상태가 유지됐다. 경찰과 자체 질서 유지 담당하는 사람이 통제를 했으나 그들도 고립되서 못 움직일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양 옆의 가게들을 천천히 구경하면서 들어가는데 족히 2시간 가량을 기다렸던 것 같다. 이례적으로 한 일본인이 줄 서는데 불만을 품고 소위 깽판을 놓았는데 곧 사람이 와서 진정되었고 수천, 아니 족히 만 단위는 넘어보이는 사람들 중에 한 명이어서 또 놀라운 줄서기 문화. 

 그러나 사람들에 질려버려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뚝 떨어져버렸다. 


밤의 청수사 입구

 사람이 너무 많아서 별도 천막으로 매표소를 만들어 운영했다. 그 앞에서도 또 엄청난 대기행렬. 천막 앞에서 겨우 칸자키 상을 만났다. 한국어능력시험을 앞두고 있어, 학문의 신을 모신 텐만궁에 참배하고 오는 길이었다. 호텔 밖에서 만나는 건 처음이라 자주 봐도 반가웠다.

 칸자키상은 불단에 가서 시주를 하고 또 합격을 위한 기도를 했다. 같이 하자고 권했는데 역시나 이번에도 거절. 시험을 위해 일본 명소에서 일본인과 한국어로 대화하는 또 특이한 경험.

 정말 날을 잘못 잡았다. 사람도 사람이지만 라이트업이라 해놓고 어두워서 길이 잘 보이지 않았다. 일단 사람들이 가는 방향으로 가는데 엄청난 소음에 제대로 보이지도 않아 짜증만 밀려왔다. 낮에 와보지 못한 것이 크게 후회가 되었다. 설상가상 내부는 또 공사중. 책에서 언급한 건 하나도 못 보고 뒷사람에 밀려 계속 앞으로 가야했다. 본 것이 정말 사진에 있는 것이 전부라 아무 설명도 할 수 없다. 

 중국어와 아이 울음 소리. 카메라 셔터 소리. 

 전망이 아름답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 홈페이지를 찾아보니 이 글을 쓰는 오늘 10월 1일 야간 개장 시작일이다. 청수사는 낮에 가라고 강력하게 외친다!

 유홍준 교수가 책을 통틀어 가장 혹평을 한 교토타워가 가장 아름다웠던 것으로 기억될 정도로 보이지도 않고 아름답지가 않다. 천천히 볼 틈도 없이 인파 때문에 빨리 벗어나는 게 상책이라는 생각만 하게 된다.

나도 똑같은 각도에서 아름답지도 않은 사진을 남길 수 밖에 없었다
교토타워만 보이는 교토의 야경
시종일관 이 상태였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인왕문, 서문, 삼층탑, 오쿠노인만 간산히 보고 바로 사람 없는 길로 내려와버렸다. 그곳에 폭포가 있었는지 뒤에 다른 길이 있어서 조주인과 석불군도 있었다는 건은 돌아와서야 알았다. 어차피 갔어도 어두워서 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실망만 남은 야간 개방. 

 그러나 이 덕분에 나중에 교토에서 청수사를 다시 갈 핑계가 생긴 것이 아니겠는가. 그 때는 반드시 낮에 가서 어느 유적지 보다 더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이날 저녁에 칸자키 상과 맥주 한 잔 하면서 니신소바를 먹었다.


내 눈에 이쁘면 이쁜 것이지. 아라시야마 원숭이 테마파크 전망대에서 바라본 전경.

 헤이안쿄 동사편에 별도로 기록된 교토타워. 내가 유 교수 책에서 유일하게 설득당한 것이 이 교토타워였다. 가라는 곳은 순전히 내 의지로 간 것이지만, 교토 타워에 너무 악평을 하셔서 가선 안되는 곳이라고 여겼다. 교토역에 가면 무조건 보게 되는 건물이고 바로 앞에 있어 편하게 갈 수 있었는데 올라가지 않았다. 에펠탑이 싫어서 에펠탑 안에서 밥을 먹었다는 모파상처럼 유 교수도 안을 한 번 가보시는 건 어떠셨을까.

 아라시야마에서도 교토 타워가 보인다. 조금이라도 높은 곳을 가면 교토타워는 바로 볼 수 있다. 내 눈에는 이뻤다. 그러나 미술 전문가가 혹평을 했으니 저건 아름답지 않은 것이고, 내가 틀린 생각을 하는 거라고 계속 주입을 하면서 꺼려했지만, 만들어진 생각일 뿐이었다.

 얼마나 어리석은가. 내 아름다움에 대한 주관을 남의 판단으로 결정하다니. 확실한 교토의 랜드마크가 되었다고 본다. 전망대에서 또 아름다운 문화재들을 내려다 볼 수 있지도 않은가. 

 유홍준 교수님이 언짢아하지 않으셨으면 한다. 전통적인 공간은 전통적인 것들로만 채워야 한다는 사고방식이 뒤쳐진 것일지도 모른다. 일본은 그것을 과감하게 깨뜨렸기 때문에 관광강국으로 우뚝 설 수 있었다.

 

 다음 교토를 방문할 기회가 되면 꼭 낮의 청수사를 본 뒤 해질녘 즈음 교토타워에 올라 야경을 보고 올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