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에 작은 녀석을 데리러 갑니다. 꼬맹이들이 하나 둘 건물 밖으로 나옵니다. 아마도 통원 버스를 타려고 나오는 듯했습니다. 개구쟁이로 보이는 두 녀석이 나오며 저를 쳐다봅니다. 둘이서 속닥거리더니 이내 한 녀석이 제게 다가옵니다. 그러곤 한마디 합니다. “승수 할아버지세요?... 두 둥~~~ 뭔가 뒤통수를 건설현장 오함마로 두들겨 맞은 느낌이 듭니다. 외형적 출혈은 없었지만 내적 출혈은 감당할 수 없이 사망입니다.
언제나 그렇듯 일반 와이셔츠, 매번 버리라는 아내의 난리도 뿌리치던 초록색 망사 조끼, 그리고 검은색 등산 바지, 무엇보다 포인트는 무좀을 일순간에 날려주던 나의 사랑스러운 구두같이 생긴 샌들, 전신 거울을 봅니다. 참으로 편안한 복장입니다. 잠시 어린 시절이 주마등같이 스치고 지나갑니다. 어머니는 구멍 난 양말을 거꾸로 뒤집어 꿰매 주셨고, 형님이 입던 옷가지, 어머니가 사다 주신 옷가지 신발 등등을 저는 아무런 투정 없이 입거나 신거나 했습니다. 제가 일정 제품을 착용하지 않았던 이유는 딱 한 가지 불편함입니다. 도저히 불편함은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죠. 지난 40여 년을 살아오며 [나이를 표현할 때 절대 40대 중반 또는 50년 가까이라는 표현은 사용하지 않음] 어머니나 아내에게 옷이나 신발에 대한 불평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던 제가 전신 거울을 보고 있습니다.
무엇이 문제일까?
완벽한 외모의 한 사내가 거울 속에서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습니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험 잡을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이 사내는 이내 고개를 떨굽니다. “그래 신발이야!” 얼마 전 친구와 술을 마시다 무좀 이야기가 나왔을 때 “야, 너 이거 한번 신어봐. 무좀 한방에 날아간다.” 친구는 고개를 숙이고 제 신발을 물끄러미 보다가 한마디 던집니다. “마, 내 노인네냐. 그리고 넌 나이가 몇인데 그런 신발을 신고 다녀? 쪽 팔리게…” 그렇습니다. 좀 늦게 낳은 아들 녀석이지만 완벽한 외모의 소유자 아빠가 늙은 것이 아니고 신발이 늙은 것이었습니다. 저는 절대 늙은 것이 아닙니다.
저녁때 아들 녀석에게 묻습니다. “승수는 누구 닮았어?” 이내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말합니다. “아~~ 빠아~~~” 다시 묻습니다. “아빠 멋있어?” 그러자 또 큰소리로 말합니다. “아빠는 세상에서 최고로 멋있고… 잘생기고… 무조건 최고!” 옆에 있던 딸아이가 한마디 합니다. “이그, 너 아빠 닮았으니까 아빠가 못생기면 너도 못생겼으니까 그러는 거지?” 한참을 웃습니다.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줍니다. 아내의 잔소리도 리듬처럼 들릴 테니까요.
대학 다니는 아들 녀석과 퇴근 후에 소주 한잔씩 한다는 친구 녀석이 있습니다. 참 부러웠습니다. 전 아들 녀석이 고등학생이 되면 같이 한잔씩 할 생각입니다. 맛집을 찾아다니며 소주, 막걸리, 동동주 등등 아들이 따라주는 술잔을 비우고 또 아들과 건배를 하며 여행 아닌 여행을 할 생각입니다. 외모가 좀 늙고 부족하더라도 마음만은 젊은 아빠 못지않은 모습을 보이고 싶습니다. 정치 이야기, 경제 이야기, 문화 이야기 또는 여자 이야기도 함께 나누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친구로 남고 싶습니다.
승수 사랑한다.^^
*본 글은 늦게 결혼해서 아이를 만나거나 늦둥이를 보아서 주변의 눈총을 받는다 생각하는 세상의 늙은 아빠들께 바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