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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연 Apr 17. 2019

성인지 감수성, 그리고 보도 윤리에 관하여


 최근 ‘성인지 감수성‘이라는 단어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존재하지 않는 단어를 만들어내 성별 간의 갈등을 조장하는 것이 아니냐 하겠지만 사실 그렇지는 않다. 지난해 12월, 미투 운동으로 점차 변화하고 있는 법원 판결에 관한 보도에서 이 단어는 등장한다. 


 서울고등법원이 기존 성폭행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1심을 뒤집고,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다. 

그리고 이때 2심 재판부의 판결이 꽤 화제가 됐다.


성폭력 사건 판단은 사건이 발생한 맥락을 고려하는 '성인지 감수성'이 필요하다. 
피해자 진술을 가볍게 배척해서는 안 된다. 

 본 보도가 나간 이후 여론은 들끓었다. ‘감수성’이라는 연성의 관념이 감히 판결에 개입해도 되냐는 반응과, 성별을 떠나 인권 측면에서 생각해볼 법 직한 단어이며 충분히 올바른 판결이었다고 하는 반응으로 나뉘었던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성인지 감수성'이란 아직 확실히 정립된 의미는 없으나, 2차 피해에 대한 불안감이나 가해자와의 관계 유지 등으로 고민하는 성폭력 피해자의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별 간의 차이로 인한 차별과 여기서 오는 불균형의 인지, 성 평등 의식과 성 인지력 모두를 포괄하는 넓은 개념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요즘도 매일같이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드는 성 추문 사건 탓에 머리가 지끈거릴 지경이다. 클럽 ‘문화’라는 명목하 이루어진 약물 유통과 이를 이용한 성폭력, 그리고 연달아 논란이 된 불법 촬영 문제까지. 하지만 여기에다 검경의 유착 정황까지 포착되어 말 그대로 국민들은 ‘혼돈’에 빠진 상태다. 이를 보도하는 언론의 ‘올바른 태도’란 어떤 것일까. 과연 MBC에선 앞서 말했던 성인지 감수성을 고려한 보도가 이어지고 있을까.


 3월 18일 방송된 MBC '뉴스데스크'에서는 고(故) 장자연 씨의 동료이자 사건의 목격자인 윤지오 씨가 출연해 왕종명 앵커와의 인터뷰 시간을 가졌다. 당시 왕종명 앵커는 윤지오 씨에게 조선일보 사주 일가 3명의 실명 등을 밝히길 권했고, 이에 윤지오 씨는 10년 동안의 진술로 겪어야만 했던 미행과, 이로 인한 이사 및 해외 도피 경험을 거론하며 답변의 어려움을 피력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종명 앵커는 생방송의 힘을 빌려 실명을 거론하길 권했다. 지상파 방송에 증인으로 나선다는, 큰 용기를 냈던 윤지오 씨에게 무례를 범한 것이다. 결국 윤지오 씨는 발설이 가져올 파문을 알기에 말할 수 없다며 대답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당시 인터뷰가 끝난 후, '뉴스데스크' 시청자 게시판에는 분노의 목소리가 들끓었다. 왕종명 앵커의 태도는 일종의 피해자인 윤지오 씨의 현실과 입장을 고려치 않은 몰아붙이기식 강요였기 때문이다. 계속되는 논란에 MBC는 이와 관련한 입장문을 발표했으며, 다음 날인 19일 뉴스데스크에서는 왕종명 앵커가 공개 사과를 이어나갔다. 마침 18일은 뉴스데스크가 30분 앞당겨지고, 분량 또한 기존에서 30분이 늘어난 85분 방송 시도의 첫날이었다. 개편에 대한 관심이 향하던 시점에서 시청자들은 당혹감과 실망스러움을 감출 수밖에 없었다. 


[2019.03.18. 방송 (좌), 2019.03.19. 방송 (우) ]



 이번 실수는 피해자의 입장은 전혀 고려치 않고, 그저 ‘특종’ 보도만 좇았던 성급함에서 비롯된 것으로, 앞서 강조했던 성인지 감수성이 수반되지 않았기에 발생한 문제라고 보아도 될 것이다. 계속해서 시청자들은 성문제에 예민해지고, 또 민감해지고 있다. 성범죄를 다룰 때마다 있어왔던 피해자 부각식 보도, 눈길을 끌기 위해 자행했던 자극적인 폭행의 경위 서술 등, 이젠 2차 피해자를 양산하는 기존의 보도 관행에서 벗어나야 할 때다. 말 한마디와 단어의 선택 모두에 신중을 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뉴스데스크’에게도 희망은 있다고 본다. 그들이 이전까지 보여주었던 보도에선 성인지 감수성을 충분히 고려하는 모습이 꾸준하게 포착되어 왔기 때문이다.   



 예컨대 최근 3월 14일에 방송된 ‘뉴스데스크’의 보도에선 버닝썬 게이트를 두고 이를 여성에 대한 성폭력 문화와 이를 공고히 하기 위해 남성들끼리 연대하는 ‘남성 카르텔’로 규정하는데, 이는 지상파에서 처음으로 남성 카르텔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으로, 당시 온라인상에서도 꽤 화제가 되었다. 실제로 트위터에서는 지상파 뉴스에서 처음으로 이 용어가 사용된 것 같다며, 사건의 본질을 잘 꿰뚫는 보도라는 칭찬의 내용이 6000 리트윗을 넘으며 퍼진 바 있었다. 


[ 2019.03.14. 방송 ]



 작년 8월에는, ‘워마드’의 편파 수사 의혹에 관해 이런 성인지 감수성이 수반된 논조의 보도를 이어나갔다. 


[ 2018.08.09. 방송 ]


 작년 8월 9일 방영되었던 ‘뉴스데스크’에선 <일베 놔두고 '워마드'만 편파수사?!>란 <새로고침> 코너를 통해 경찰의 발표를 우회적으로 비판한다. 웹하드 운영자들의 음란물 유포 죄 판결 사례를 소개하고, 당시 도마에 올랐던 워마드의 사례와 비교하면서 현상을 분석하며 말한다. "편파수사가 정말 오해라면 그 오해를 어떻게 풀 수 있을지 수사기관 스스로 잘 알고 있을 겁니다. " 덧붙인 마지막 말에는 분명 뼈가 있는 것이었다. 


 물론 ‘일베’와 ‘워마드’ 모두가 게시했던 글은 명백한 범죄에 해당한다. 특히 워마드는 업로드하는 게시글의 규제 공지조차 마련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더불어 워마드의 혐의인 ‘음란물 유포 방치 죄’ 또한 이전부터 처벌이 꾸준히 이뤄져왔던 명백한 범죄로, 여성이라 이런 없는 혐의를 만들어 내냐는 주장 또한 틀린 말이다. 하지만 이전까지의 남성 가해자들 처벌 수위를 살펴보면, 모든 가해자 중 단 16%만이 처벌을 받았으며, 그마저도 벌금형에 그쳤다. MBC는 이런 맥락에 숨겨진 편파성을 포착해 꼬집는다. 이 날의 보도는 ‘워마드’가 여성 중심의 커뮤니티이기에 보다 더 주목하는 경찰의 수사 방식에 의문을 제기하고, 또 그 실효성에 대해 되묻는 식으로 마무리되는데, 무게 중심을 편파적으로 잡는 경찰의 수사 방식에 대한 뼈 있는 마무리였다고 본다. 


 이뿐만 아니라 올해 초에 있었던 조재범 전 코치와 관련된 성폭력 범죄 보도에서도 MBC는 경향신문에 뒤이어 성폭력 범죄 보도에서 피해자의 실명을 언급하지 않기로 밝힌 바 있다. 단순히 눈속임식이 아닌, 오래전부터 이런 성인지 감수성을 수반한 보도 윤리를 갖추어가고 있었다는 거다. 


 분명히 이번 왕종명 앵커의 무리한 추궁식 질문은 잘못된 것이다. 비판받아 마땅한 무책임함이라고 본다. 하지만 이를 비난하고 또 외면하기보다는 그들에게 한 번만 더 기회를 주는 것은 어떨까. 뉴스데스크는 결코 대중들의 눈속임을 하듯 시대 흐름을 어설프게 좇는 것이 아닌, 묵묵하게 이런 성인지 감수성을 담아낸 보도로 방송 언론의 사명을 진정으로 다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의의 구현, 그리고 성 평등한 사회. 이는 비단 경찰과 검찰의 수사를 통해서만 해낼 수 있는 게 아닐 것이다. 이를 조금 더 객관적인 시선에서 담아내고, 또 성인지 감수성을 수반한 언론의 보도 역할이 무조건적으로 필요하다. 조회 수와 시청률만을 노리고 악의적으로 헤드라인을 편집한다던가, 폭행의 경우 자세하게 그 과정을 묘사하며 자극적인 면을 부각시키는 기존의 보도 관행들에겐 앞으로도 시청자들의 엄중한 심판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문제들 속에서 언론은 여성들의 목소리를 더 많이 담아내고, 또 대신해서 알려야 한다. 정의로운 공론장을 조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더불어 공권력의 사회 구조적 폭력에 대한 여성들의 대항, 그리고 이가 이끌어낸 변화들을 가시화하며 그들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 


 일각에선 이번 사태들을 두고 양측의 모든 말을 보도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형식적’ 중립의 자세를 요구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단순한 여성과 남성 간의 성별 대립구도가 아닌, 약물을 이용한 강간 모의성 글을 게시해도 아무런 제재를 하지 않는 사회, 불법 촬영의 자랑스러운 전시가 오히려 남성들만의 연대를 공고히 하는 계기가 되는 사회에 대한 비판적 접근으로 다가가야 한다. 이처럼 여성의 일상을 폭력적으로 대상화하는 일들은 이전부터 꾸준히 있어왔기 때문이다. 단순히 여성과 남성 간의 싸움이 아니다. 이 모든 것은 결국 인권의 문제이자 피해자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다. 더 이상의 무책임한 보도보다, 저널리즘의 진정한 사명과 책임을 방기하지 않는 보도를 해야 한다. 


 물론 말처럼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MBC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성찰과 반성을 해야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예컨대 영국 BBC의 ‘편집가이드라인’ 제8장에는 시청자에게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는 범죄 행위에 관한 취재 및 보도의 경우 반드시 ‘편집 정책 및 기준 책임자’승인을 얻어야한다고 한다. 이처럼 사전에 반드시 피해자의 허락이 선행되어야하는 것은 물론, 편집 담당자 등 책임자의 공식 승인을 받는 절차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본다. 사실 현 언론사 대상의 성범죄 보도 관련 준칙은 이미 잘 마련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다만 준칙이 마련되었음에도 일어나는 문제에는 아마 이런 규정의 준수 여부에 관한 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규칙의 준수 확인은 물론, 이에 내부적인 교육과 평가가 이루어지는지 등 자체적이고 주기적인 점검이 필요하다. 이런 규율의 재정비와 더불어 내부 언론인들 자체의 자정적 노력도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미디어는 현실을 재구성하는 힘을 가진다고 한다. 이 말은 다르게 해석하면 공고한 사회적 편견의 재생산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우려이기도 하다. 눈앞의 특종만 좇으며 사회의 편견에 공모할 텐가, 아니면 ‘기본과 원칙에 충실한다.’는 뉴스데스크의 사명을 다할 텐가. 시청자의 눈은 결코 꺼지지 않을 것이다. 변화는 당장 시작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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