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이란 무엇인가, 이번 학기에 수강하고 있는 전공과목 <커뮤니케이션의 이해>에서 수없이 많이 만난 질문이다. 언뜻 보기엔 간단해 보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굉장히 본질 자체에 닿아 있는 어려운 질문이기도 하다. 우선 모든 수강생이 으레 던지는 통상적인 대답으로는 ‘공감’과 ‘경청’이 있었다. 분명 그럴듯하다. 공감과 경청에 기반한 쌍방의 소통, 그리고 이가 가져다주는 긍정적 이미지는 꽤 공고하다는 증명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는 소통의 충분조건이지 필요충분조건이 될 수는 없다. 만일 그것이 맞다고 주장하려면, 경청이나 공감이 없다면 그 어떤 행위도 소통이 될 수 없다는 극단적 명제를 무조건 긍정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내릴 수 있는 답은, 누구 하나의 맹목적인 희생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닌 실로 체감할 수 있는 소통은 어렵다는 것이다.
라디오는 아날로그 미디어 시대의 핵심이자 소통의 굳건한 중심이었다. 청취자들은 엽서를 통해 DJ에게 사연을 보내고 DJ는 이를 주파수에 실어 소개했으며, 이는 시대가 변하면서 문자메시지와 전화 통화, 그리고 인터넷 라디오의 댓글 등으로 채널을 다변화시키며 청취자의 참여 폭을 넓혀오고 있었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등장하는 올드 미디어에 관한 우울한 전망에 반박이라도 하듯 라디오는 이후 ‘보이는 라디오’라는 새 포맷을 등장시킨다. 더는 DJ의 목소리를 누워서 가만히 듣는 것이 아니라 청취자가 직접 시청하고, 적극적인 의견 개진과 참여가 가능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라디오 프로그램들이 선보이는 다양한 소통의 방식은 매번 새롭다. 그런데 기존에 통용되었던 ‘소통’의 이미지를 다른 결로 해석해내는 프로그램이 등장했다. 바로 MBC ‘아이돌라디오’다. 이름에서부터 ‘덕후’의 향기가 느껴지는 ‘아이돌 라디오’는 아이돌에 관한 뜨거운 애정에 기반한 손한서 PD가 제작한 것으로, 저번 달 정규편성 200회를 맞이하며 인기리에 방송되고 있는 라디오 프로그램이다.
‘아이돌 라디오’를 가만히 듣고 있으면 뭔가 애매하다. 라디오 프로그램이라지만 일주일 중 무려 5일을 영상으로 송출하고, 그 영상 속 다양한 아이돌들은 끊임없이 자신들의 끼를 분출하며, 자유로운 토크를 진행한다. 동시에 그들은 어딘가를 향해 손 하트를 날리고, 다가가 포즈도 취하며 무한한 팬 서비스를 던진다. 분명 기존의 라디오 포맷과는 조금 다른, 더 나아가 라디오와 예능이라는 두 장르 간의 경계를 넘나드는 혁신적인 패러다임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과연 ‘아이돌 라디오’가 내세우는 소통의 핵심적 가치는 정확히 어떤 모습인가.
‘아이돌 라디오’는 타깃 청취자들에 대한 이해가 우수하다. 이는 제작을 맡은 손한서 PD의 아이돌에 대한 애정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손한서 PD는 ‘핑클’의 옥주현이 진행하던 ‘별이 빛나는 밤에’의 조연출을 시작으로 ‘신동, 김신영의 심심타파’를 거치는 등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아이돌 DJ의 라디오 프로그램 제작을 맡아오고 있다. 10년이란 시간은 비단 손 PD의 프로그램 제작 경력만으로 설명될 수 없는 시간일 것이다. 그만큼 오래 함께 한 아이돌들과 KPOP의 한류 태동 시기, 모든 것이 어우러지며 형성된 아이돌과 음악에 대한 탄탄한 애정의 길이이기 때문이다.
한 인터뷰에서 손한서 PD는 10년 넘게 아이돌들의 삶을 바로 옆에서 지켜본 결과 체육선수에 버금가는 연습량을 소화하는 그들의 방송을 허투루 만들 수 없다는 고백을 하기도 했다. 그런 측면에서 그는 다른 주요 매체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했던 아이돌들을 소개하고 싶고, 기회를 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바로 ‘아이돌 라디오’다. 또 다른 방탄소년단의 탄생을 바라며 ‘아이돌 라디오’가 인큐베이팅 역할을 하길 바란다는 그의 말에서 느껴지는 애정은 프로그램의 뚜렷한 정체화는 물론, 그 타깃 청취자들을 한 번에 가늠해볼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 그런 제작진의 애정을 기반으로 한 아이돌 전문 라디오 프로그램. 그렇기에 구체화되는 타깃 청취자들은 바로 아이돌과 K-POP 등의 한류 ‘팬’들이다. ‘아이돌 라디오’는 이처럼 타깃 청취자를 구체화함에 따라 소통의 방식 또한 마음껏 다변화시키고, 그 중심엔 팬들의 ‘덕질’을 둠으로써 기존의 고착화된 이미지의 소통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한다.
기존 라디오 프로그램의 경우, 출연진과 DJ가 함께 한 사진, 그리고 현장 클립 영상들은 자주 업로드됐었다. 하지만 ‘아이돌 라디오’는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가 아예 덕질을 콘셉트로, DJ와 출연진들의 팬들을 겨냥한 콘텐츠를 공식 트위터 채널에 업로드한다. 여기에 첨가되는 약간의 주접 코멘트는 덕후들을 웃음 짓게 만드는 웃음 포인트이기도 하다. ‘아이돌라디오’는 이처럼 공식적이고, 또 단조로울 것만 같은 소통의 정적인 이미지를 탈피하려는 덕후들과의 소통을 전면에 내세운다.
‘아이돌 라디오’는 콘텐츠를 일방적으로 업로드 하는데 그치지 않고, 팬들의 입장에서처럼 DJ를 덕질하는 새로운 콘셉트로 팬들에게 다가간다. 특히 주목할 점은 올리는 트윗 또한 제작진의 관점에서 올라오는 기존의 방송 클립, 혹은 스틸샷과 같은 정보성 콘텐츠가 아니라 팬들의 참여를 유도하고, 또 그들의 멘션을 인용하고 리트윗하는 등 일반 아이돌 팬들이 하는 덕질의 형태를 일부 답습해 운영한다는 점이다. (마치 공식 계정이 아니라고 느껴질 만큼 재미있는 드립이 난무한다) 트위터는 아이돌 팬들이 가장 유용하게 활용하는 채널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그런 매체적 특성을 잘 살린 소통은 청취자들로 대변되는 팬들을 잘 이해했기에 할 수 있었던 맞춤화 전략이자, 그들의 니즈와 프로그램의 목적을 동시에 충족하는 아주 좋은 시도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소통에도 장벽은 존재한다. 그것이 낱말의 다의성일 수도 있고, 또 성서에 나오는 저주 중 하나인 각국마다 다르게 사용하는 언어일 수도 있다. ‘아이돌 라디오’는 타깃 청취자들을 국내로 한정 짓지 않기에 방송을 네이버 V live와 중국의 대표 소셜미디어 웨이보, 그리고 한국의 MBC radio까지 총 세 가지 플랫폼에서 생중계 및 송출한다. 이 시도만 보아도 한국뿐 아니라 중국, 더 넘어서 세계 각국의 팬들을 잠재적 청취자로 포획하려는 의도가 느껴진다. 하지만 아무래도 그들이 한국어를 쓰는 아이돌들의 토크 내용을 알아들을 리 만무하다. 그래서 ‘아이돌 라디오’는 소통에 장벽이 되는 후자의 언어적 한계 해소를 위해 번역기능을 제공한다. 심지어 이는 방송 중 영어와 중국어, 베트남어 등의 자막을 볼 수 있는 실시간 번역이 가능한 것으로, 라디오의 주파수와 언어적 한계를 뛰어넘어 모든 K팝 팬들을 사수하겠다는 제작진의 큰 포부라고도 볼 수 있다.
그 노력은 번역 기능의 제공에 그치지 않는다. 그러한 해외 팬들의 언어 장벽을 고려해 프로그램의 전반적 구성마저 조금씩 변화시킨다. 바로 기존 라디오 방송처럼 문자나 댓글을 통해 실시간 질문을 받기보다는 프로그램 진행 중 아이돌에 대한 소개, 혹은 그 과정에 있어서 나오는 각종 화려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데 집중하는 것이다.
다른 라디오 프로그램처럼 꾸준하고 오래 청취자들과의 사연을 주고받고 통화 연결을 하지는 못하지만 그렇다고 이를 소통 없는 라디오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구체화된 타깃 청취자들을 중심으로 방송의 목적에 맞게 친절히, 다른 방향으로 소통을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제작진들의 통찰력이, 그리고 그들이 시도하는 ‘친절한’ 소통의 맥락이 드러난다.
또 하나 눈여겨볼 점은 바로 생생함이다. 아무리 소통하고 있다고 강조하더라도 이를 쌍방이 체감하지 못한다면 의미가 없다. 이는 과거 커뮤니케이션 학자들이 다수 지적한 바이기도 하다. 예컨대 죠르즈 귀스도프가 지은 <말>이라는 저서에 따르면, 그는 소통의 어려움을 언어가 가진 표현 기능과 커뮤니케이션 기능의 모순적 관계를 통해 설명한다. 나의 생각을 어느 환경에서 구성하는지에 따라 그 내용은 ‘나 중심적’으로 구성될 수도, ‘상대방’ 중심적으로 구성될 수도 있기에 이 지점에서 결국 소통의 어려움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는 결국 생생함의 결여에서 비롯된 문제이기도 하다. 상대방과 나 사이의 진정한 공감이 있기 위해선 서로를 파악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전파를 타고 온 청취자의 문자 사연을 그대로 줄줄 읽어내려나가는 DJ, 라디오 프로그램의 혁신을 위해선 이 고착화된 관계를 탈피해야 한다. 그래서 ‘아이돌 라디오’는 생생함을 제공하려고 노력한다. 그중 눈에 띄는 시도가 바로 가든 스튜디오에서의 진행이다. ‘아이돌 라디오’는 상암 MBC 신사옥 1층에 위치한 공개홀, 가든 스튜디오에서 진행하는데 이는 여러 프로그램이 돌아가며 라디오 공개방송을 진행하기 위해 제작된 스튜디오라고 생각하면 쉽다.
그냥 일반적인 공개홀이 아니냐 하겠지만 조금은 다르다. 바로 벽이 유리로 되어있어 청취자들은 누구나 자유롭게 찾아올 수 있으며, 여기서 아이돌 및 아티스트간의 무한정 교감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를 단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코너의 사이사이마다 나오는 노래 재생 시점이다. 막간에 노래가 재생되면 아이돌들과 현 DJ인 정일훈은 모두 가든 스튜디오의 유리창에 다가가 팬들에게 팬서비스를 하기도 하고, 짤막하게 안무를 추는 등 자기 어필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팬들도 그런 그들의 사진과 영상을 남기고 좋아하는 아이돌들에게 호응도 하면서 얇은 유리창 한 겹만 사이에 둔 생생한 소통을 한다.
‘아이돌 라디오’가 추구하는 생생함은 200회 특집 공개방송으로 이어진다. 지난 4월 24일, 서울 여의도 이랜드 크루즈 선착장 앞에서 열린 봄맞이 특집 공개방송 ‘오구오구 아이돌 라디오’엔 DJ 정일훈을 비롯한 여러 아이돌이 출연했고, 탁 트인 한강에서 1000여 명의 청취자들을 위한 라이브 무대를 선보였다.
기존 라디오들이 주관하는 공개방송과 다름없다고 느껴질 수 있겠지만, 이는 생생한 소통을 위해 제작진들이 해온 꾸준한 시도의 연장 선상에 놓여있었기에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과거처럼 일방적으로 수용하고, 청취만 하는 올드 미디어적인 성격을 탈피해 청취자들과 직접 교감하고, 체험하는 소통적 측면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트일 소와 통할 통자로 이루어진 소통 (疏通)의 글자적 해석은 닫힌 문이 열려 밖으로 연결돼 나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통에 관한 수업을 수강하고 있는 나조차도 사실, 아직까지는 소통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어렵고, 복잡한 것은 물론 다차원적인 측면에서 바라보고 다뤄야 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라디오를 비롯한 기존의 올드 미디어들을 수식하는 말들은 암울하다. 감성 채널, 아날로그, 구시대적 가치 등…. 하지만 치열한 경쟁이 계속되는 무한 경쟁 시대에서도 그런 올드 미디어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한다.
해답은 바로 소통이다. 앞서 진단한 고도화되는 갈등과 매체들 간의 무한 경쟁이라는 위험한 환경에서 진단할 수 있는 치명적인 문제는 바로 ‘소통의 결여’라고 할 수 있다. 심지어는 같은 라디오에서조차 청취율 경쟁이 심화됨에 따라 게스트와 잡담만을 전면에 배치하고, 정작 청취자들은 배제하는 상황이다. 물론 이런 문제점을 인지하고 소통을 중시하는 모습을 보이던 몇몇 라디오 프로그램들도 있었지만, 결국 이들조차 청취자로부터 소스를 얻고, 이를 통해 제작진이 구현하고 싶은 이야기를 구성하는 식의 ‘소극적’ 소통에 머무르는, 아이러니한 상황까지 연출되고 있다.
그간 사랑받아왔던 라디오 프로그램의 공통분모에는 항상 소통이 있어왔다. 청취자들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이야기들과 진행 사이사이에 소통이 가능케 하는 장치가 존재해왔다는 것이다. 디지털 미디어가 급속도로 발전함에 따라 나름의 변화 시도가 있어왔지만 아직은 부족하다. 이는 소통의 부재를 거론하며 시도하는 보여주기 식 소통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숨은 의도를 넘어 다른 시도마저 의심받을 수 있다. 답은 간단하다. 결국 올드 미디어들의 돌파구는 본질과 잘 맞는 목적성과 그에 따른 수단을 구체화시켜 마음껏 소통하는 것에 있다는 것이다.
일반 예능과 다를바가 없다는 비판에 앞서 그 본질을 먼저 살펴보길 바란다. 높은 청취율을 얻기 위해 눈가리기식 소통을 하는 프로그램보다 청취자 주변에 한 걸음 다가서는 프로그램이 차라리 해답이 된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청취자들과 ‘잘’소통하는 라디오에는 분명 힘이 있다. 그 속에서 다변화된 소통의 새로운 국면을 제시하는 ‘아이돌 라디오’의 다음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