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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파규동 May 24. 2019

잔나비를 생각하며
MBC의 미래를 그리다

잔나비가 ‘나혼자산다’에만 나와 아쉬운 당신에게

 올해 3월, 정규 2집 발표와 함께 전국을 강타했던 ‘잔나비 신드롬’은 아직까지 잠잠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전국의 대학교와 페스티벌에서 러브콜이 끊이질 않고, 음원사이트 실시간차트에는 아직까지 타이틀곡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가 상위권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잔나비의 흥행 원인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분석들이 존재합니다. 물론 잔나비가 수많은 공연을 통해서 팬덤의 저변을 넓힌 것은 사실이지만, 이번 앨범의 ‘신드롬’이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는 데에는 두 차례의 ‘나혼자산다’ 출연이 결정적이었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방송을 통해서 ‘레트로 보이’라는 이미지가 형성되면서 밴드음악에 관심이 없었던 대중들에게도 어필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두 번째 출연한 ‘나혼자산다’에서 잔나비의 보컬 최정훈은, ‘첫 방송 이후 100차례 이상의 섭외 전화가 오고, 광고도 찍게 되었다’며 놀라움을 표한 바 있습니다.

'나혼자산다' 출연 효과를 실감한다고 밝힌 잔나비의 보컬 최정훈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 ‘전지적 참견 시점’에서도 뮤지션 카더가든이 출연하여 색다른 매력을 보여줬습니다. 카더가든의 경우 방송 출연으로 음원 성적이 눈에 띄게 반등하지는 않았지만, 여러 대학 축제에 초대되는 등 인지도 확대의 효과를 톡톡히 봤습니다.


 잔나비와 카더가든 모두 아이돌 위주의 음악시장에 균열을 일으킬 수 있는 뮤지션들입니다. 그동안 계속 한 끗발이 모자라 보였는데, 방송출연을 계기로 확실하게 대중적 인지도를 높인 모양새입니다. 이러한 ‘잔나비 신드롬’을 목격하면서, 저는 이들의 MBC 예능 출연이 대중음악계가 다변화되는 계기로 작용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게 되었습니다.

'카더가든' 역시 '전지적 참견 시점 출연으로 인지도를 높였다

 물론 MBC가 예능을 통해 가능성있는 아티스트들을 대중에게 소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그대는 찹쌀떡~ 그대는 나의 메밀국수~


 이 노래 기억 나시나요? 바로 2011년 무한도전 ‘서해안 고속도로 가요제’에서 십센치와 하하가 부른 ‘찹쌀떡’ 인데요. 앵콜곡이었던 이 노래가 음원차트에서 높은 순위를 기록함으로써 십센치는 전국구 아티스트로 발돋움하게 됩니다. (원래부터 십센치의 팬이었던 저는 ‘나만 알던 가수’가 너무 유명해져 버려서 시원섭섭했던 기억이 있네요...)

2010년 혜성처럼 등장한 십센치는 2011년 무한도전 출연을 통해 전국구 아티스트로 발돋움했다

  십센치를 시작으로 장미여관과 혁오가 독특한 매력을 선보이며 폭발적으로 성장했습니다. 일각에서는 방송 프로그램의 음원 발매함로 대중음악계가 교란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무한도전 가요제가 아이돌 일변도였던 음악시장에 신선한 메시지를 던지고, 인디음악의 대중화를 이끌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십센치와 혁오 등이 뜨면서 다른 밴드들의 인기까지 덩달아 높아졌기 때문이지요.


아티스트와 프로그램의 관계에서, 사회문화 현상과 MBC의 관계로


 MBC 예능의 섭외 정책에 ‘대중음악 다변화’라는 거창한 수식어를 붙이는 것이 부적절할 수도 있습니다. 내부적으로는 니치 마켓을 공략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섭외를 진행한 것일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MBC가 추구하는 가치를 실현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단순히 ‘섭외’로 그치기에는 아쉬운 것이 사실입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묻습니다. 

‘잔나비 신드롬’과 MBC의 동행이, ‘나혼자산다’에서 끝나는 것에 만족하십니까?


ㅣ정형화되지 않은 음악에는 매력적인 이야기, 더 나아가 사회적 함의가 들어있습니다.

 

 저와 친한 동기들 중 ‘나상현씨밴드’라는 이름으로 음악활동을 하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저마다 학업 및 취업준비에 매진하면서도, 공연을 하고 앨범을 내며 밴드활동을 병행하고 있는데요. 이런 친구들이 작은 자취방 안에서, 소규모 공연장에서, 늦은 시간 도서관에서 풀어내는 이야기들에는, 그 자체로 흔들리는 20대의 자화상을 보여주는 울림이 있었습니다.


 잔나비의 내러티브가 갖는 확장성은 여기에 기인합니다. 대형기획사에서 어렸을 때부터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스스로 부딪히고 고민하며, 실패를 거듭해왔기 때문에 사회와의 강한 연결고리가 존재하는 것이죠.

잔나비의 내러티브는 예능 뿐만 아니라 교양 프로그램에도 손색이 없다

 따라서 만약 잔나비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 경우, 다양한 방향으로 변주가 가능할 것입니다.


1) ‘잔나비’라는 브랜드를 극대화하는 자전적 스토리
(tvn에서 곧 방영하는 손흥민 선수에 대한 다큐멘터리처럼) 

2) 잔나비의 성공을 통해 독립음악계의 명과 암을 진단하는 사회적인 스토리
3) 청년세대의 삶을 잔나비의 노래 안에서 풀어내는 스토리

(맘마미아에서 ABBA의 노래를 이용하듯)


MBC로서는 이러한 크로스오버를 통해 교양 프로그램의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습니다. 최근 MBC는 드라마를 오후 9시에, 교양프로그램을 10시에 편성하며 대대적인 변화를 꾀했는데요. 동시간대 타사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에 경쟁우위를 확보하는 데에, 화제성이 있는 스토리라인과 사회적인 함의를 갖고 있는 뮤지션들의 이야기들이 힘이 될 것입니다.


시스템을 갖추었을 때 소재는 무한히 확장 가능합니다.

 

 앞서는 MBC가 ‘대중음악계의 다변화’에 기여하는 방법에 데에서 살펴봤지만, 사실 다룰 수 있는 문화적 어젠다는 무궁무진합니다. 어젠다 설정의 시발점이 되는 ‘소재’ 역시, 콩쿠르에서 입상한 피아니스트/ 해외 페스티벌에서 공연하는 DJ/ 스포츠 선수/ 벤처사업가 등등 다양한 곳에서 흩어져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시청자의 니즈에 맞는 소재를 골라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후, 그 집중력을 의미있는 어젠다로 전환시킬 수 있는 시스템이라 생각합니다.


 막연하게 ‘예능 프로그램에 섭외해서 이미지를 구축하고, 거기서 얻은 화제성이 지속되는 동안 교양 프로그램을 제작하면 되지 않나?’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는 오산입니다. 방송사가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은지, 어떤 프로그램을 통해 목소리를 내고 싶은지를 정하기 위해서는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각 프로그램의 제작자들의 자율성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구성원 간의 합의도 필수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러한 제반 시스템이 갖추어졌을 때, MBC가 ‘문화 창달’이란 목표에 다각적으로 접근할 수 있을 것입니다.

MBC가 추구하는 가치

대부분의 사람들이 ‘잔나비는 어떻게 성공했는가’에 초점을 맞춥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이렇게도 물을 수 있습니다. 

왜 잔나비 이외의 수많은 밴드들은 음악을 포기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는가

 MBC는 ‘나혼자산다’를 통해 ‘잔나비 신드롬’을 완성했습니다. 하지만 공영방송으로서, MBC에게는 후자의 질문들에 대답할 책임 역시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잔나비의 내러티브는 이러한 질문들에 접근하는 효과적이고 흥미로운 수단입니다.


 MBC가 가능성 있는 아티스트들을 대중에게 소개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대중음악계의 다변화’를 위한 구조적인 문제 해소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더 나아가 음악뿐만 아니라 다양한 어젠다에서 예능과 교양, 뉴미디어의 유기적인 연결이 일어나는 내일을 그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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