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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M씽크 2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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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나 May 24. 2019

"야! 너도 연애할 수 있어"

Feat. 우리가 호구왕을 응원하는 이유


 이 글을 읽는 당신을 솔로라 가정하자. (가정이 아닐 수도 있겠다?!) 당신의 성별은 여자이다. 외로움을 견디지 못한 당신은 여행 동호회를 가입해 짝을 찾아보고자 한다. 설레는 마음으로 준비를 하고 첫 여행을 떠나는 모임에 참석했다. 그런데 이 동호회, 심상치가 않다. 알고 보니 유명한 호구들만 가입한다는 호구 동호회였던 것!

어쩔 수 없이 눈물을 머금고 당신은 여러 호구들 중 한 명을 골라야만 한다. 당신은 다음의 후보들 중에 누구를 연애 상대로 선택할 것인가?


1번 츤데레 호구. 아담한 키와 다부진 몸매에 유머러스함을 가졌다. 허세가 있고 주변에 여자가 많다. 항상 그의 말은 진심인지 헷갈려 불안하다. 내 여자 다 싶을 때도 정말 표현을 안 한다. 하지만 은근 츤데레로 챙기며, 한 여자만 보는 순정파 직진남이다.  


2번 얍삽한 호구. 배려심 있고 위트가 넘쳐 여러 호구들 중 여자들의 마음을 가장 먼저 사로잡는 인기남. 조금 얍삽한 면이 있어서 게임을 할 때도, 연애를 할 때도 얄미울 때가 있다. 누가 봐도 작업 멘트이고 가볍게 던지듯 말하는 것 같은데, 이 남자가 하면 진심같이 여겨지는 건 왜일까.  


3번 바보 호구. 잘 생긴 얼굴에 키도 훤칠해 시선을 사로잡는 남자. 하지만, 눈치가 없어도 너무 없다. 형들이 마음에 드는 여자와 연애전선이 형성되려고 하는 순간, “형! 저랑 같이 해요”하며 의도치 않은 훼방(?)을 놓는다. 백치미와 순수함을 동시에 겸비한 남자.


4번 불쌍한 호구. 얼굴도 못 생기고 키도 작고 연애도 서툴기만 하다. 게임을 해도 늘 하위권을 유지하며,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불쌍한 매력을 선보인다. 눈에 보이는 매력은 없지만 자꾸 보면 볼수록 매력적이다. 누가 봐도 한 여자만 바라볼 것 같은 따뜻한 남자.  


 물론 짧은 문장으로 한 사람을 설명하는데 한계가 있다. 당신의 선택은 몇 번인가? 처음엔 호구라는 말에 흥미가 떨어져 번호도 고르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잘 들여다보니 한 사람, 한 사람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완벽하지 않아서, 더 인간적이고 편안해서 맘에 든다. MBC 주말 예능 <호구의 연애>가 매력적으로 다가온 이유다.


남자 1번에서 4번 얼굴 공개. 왼쪽부터 허경환, 양세찬, 김민규, 박성광 순이다.

 

 내가 지금껏 봤던 연애 버라이어티 예능 프로그램들을 생각해보면 출연진들이 모두 이성 앞에서 한껏 차려입고 ‘나 매력 넘쳐, 이래도 나한테 안 넘어와?’라고 온몸으로 자신의 매력을 어필하는 잘난 사람들 (소위 말해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엄친아, 엄친딸)이 주인공이었다. <호구의 연애>는 좀 반대다. 호감 구호자라는 뜻으로 ‘호(好-좋을 호) 구(求-구할 구)’의 연애라는 프로그램의 이름을 땄지만 완벽하지 않은, 뭐 하나라도 꼭 부족해 보이는 우리 주변의 보통의 호구들을 지켜보며, 그들의 성공적 썸을 응원하게 만드는 연애 버라이어티이다.

    

호구 씨들의 찬란했던 역사

 ‘호구(虎口)’는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어수룩한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한자 뜻으로는 ‘호랑이의 입’이라고 하는데, 바둑에서 흰 돌을 둘러싼 검은 돌이 호랑이 입처럼 보인 데서 유래한다고 한다. 약간은 모자란 듯하며 좋은 말로 인간미 넘치는 사람을 우리는 보통 호구라 부른다. 사실 이런 호구 씨들의 등장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호구 씨는 예전부터 대중문화 속 종종 등장했던 캐릭터로 우리에게 매우 친숙하다.


 먼저, 오랜 호구 씨로 영국 BBC 방송국에서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며, 1990년대 전 세계적 인기를 끌었던 <미스터 빈>을 꼽을 수 있다. 미스터 빈이 사랑받았던 이유는 외양은 어수룩하고 다소 모자라지만, 때 묻지 않은 순수한 매력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일까. 모든 일을 재거나 계산하지 않고 순수한 열정으로 임하는 그를 이상하게도 응원하고 싶었다. 여자 친구가 서툴고 모자란 그의 연애 방식을 알아주길 빌었고, 그를 떠나지 않고 끝까지 잘 되기를 시청자로서 진심으로 응원했었다.


 먼 나라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호구 캐릭터는 종종 등장하며 인기를 끌었다. 특히 MBC 청춘시트콤 <뉴 논스톱>의 ‘양동근-장나라’ 커플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양동근은 어수룩한 말투와 보통이 아닌 괴이한 행동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항상 ‘구리구리’라는 별명으로 놀림받는 캐릭터였다. 연애 기술도 없어서 매일 사랑 앞에 좌절했지만 결국 그는 조금씩 진심을 다해 그의 방식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다가간다. 그런 진심은 장나라의 마음을 열었고, 둘은 결국 누구보다 예쁜 사랑을 하는 커플이 된다. 모자라고 느리지만 따뜻한 진심을 가진 양동근을 애정 했던 이들과 <호구의 연애> 속 호구들의 연애를 응원하는 현재의 시청자들의 마음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MBC <뉴 논스톱> 양동근-장나라 커플


<호구의 연애> 속 호구 씨들

 <호구의 연애> 프로그램이 첫 방영될 때 나는 이 프로그램에 대해 한 가지 오해를 했었다. 기존의 연애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처럼 달달한 썸을 지켜보는 관찰 예능으로 말이다. 그런데, 기존 연애 예능과는 좀 달랐다. 퀴즈 게임, 물속에서 오래 버티기 게임 등 망가지는 모습들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제작진이 설치해놓은 특수한 장치들과 예능 요소가 호구 캐릭터와 만나 재미가 극대화되었다.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는 요즘 트렌드에 걸맞지 않아서 더 신선하달까. 우리가 할 일은 이제 깔깔 웃으며, 이러한 망가짐 속 피어나는 남녀 간의 미묘한 설렘의 현장을 스튜디오 MC들과 함께 숨 죽이고 지켜보는 것뿐이다. 과연 그들이 연애를 할 수 있을까.



 그런데 최근에 프로그램에 한 가지 변화가 생겼다. 기존 멤버들의 동호회 탈퇴로 뉴페이스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 새로운 인물들의 등장은 호감 구호자들 사이에서 자연스레 새로운 역학 관계를 형성한다. 그리고 이는 지난주와 또 다른 낯선 기류를 형성하며 남녀 간의 새로운 갈등도 만들어진다. 아쉬운(?) 점은 그 새로운 인물이 기존의 호구 씨들과 다르게 조금 덜 호구스러운 연애 고수님들이라는 것이다.  고수님들은 호구 씨들이 하지 못했던 심쿵사를 유발하는 여러 이벤트를 기획하기 시작한다. 예를 들면 '밤에 몰래 따로 만나 생일 챙겨주기' 같은 것들이다. 감동의 눈물 펑펑 쏟는 여성 출연자들 마음에 호구 씨들이 들어갈 틈이 있을까? ‘아니, 호구도 연애할 수 있는 거 맞아요?’ 사랑 앞에 다 퍼주고도 눈물 꽤나 쏟아본 호구님들은 이렇게 반문할 수도 있겠다.   



 일상에서도 <호구의 연애>에서도 호구 씨들의 연애에는 완벽남들보다 몇 배의 노력과 정성이 더 들어간다. 완벽하지 않음을 알기에 더 열정적이다. <호구의 연애> 속 호구 씨들은 부딪히고 넘어져도 일편단심 그 사랑을 열정적으로 표출해낸다. 그리고 그 열정이 많은 시청자들을 느끼듯 사람을 더 매력적으로 만든다. 에리히 프롬은 저서 <사랑의 기술>에서 “사랑이란 능동적 활동”이라고 말했다. 즉, 사람의 감정은 '빠지는 것'이 아니라 '참여하는 활동'이다. 또 사랑이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라 할 때 “준다”의 의미는 단순히 교환의 의미가 아닌 자신의 잠재적인 능력을 최고로 표현하는 것이라고 한다. 즉, 사랑은 자신의 잠재력을 경험하는 데에서 오는 열정적 환희인 것이다. 아마 우리는 당장 그들이 눈에 안 들어올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잠재력을 힘껏 발휘하며, 열정적인 환희로 당신에게 망설임 없이 성큼 다가오는 호구 씨들을 우리는 곧 눈치채며 서서히 물들어갈 것이다.  



우리들의 호구왕을 응원합니다!

<호구의 연애>는 패스트푸드 같은 강렬한 달콤함이 아니다. 어수룩하고 모자라지만, 열정적 진심으로 빚어내는 슬로푸드 같은 진국의 연애 쪽에 더 가깝다. 마음만 먹으면 버튼 하나로 새로운 관계를 맺고 끊는 시대. 느리지만 따뜻한 진심으로 마음속 깊게 뿌리내리는 호구의 사랑을 응원한다. 게임도 하고, 서로 깔깔 비웃기도 하며 누가 봐도 모자란 연애 호구들이 느리지만 한결같은 마음으로 사랑을 쟁취해낸다는 이야기. 진실된 관계에 목마른 우리들에게 더 큰 울림으로 다가오는 부분이다.


 하지만, 리얼 연애 버라이어티인 만큼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 진짜 연애를 성공할 주인공이 있을지, 그리고 있다면 누가 될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럼에도 미스터 빈의 직진 연애를 응원했듯, 어수룩한 양동근의 고백을 응원했듯, 당분간은 매주 일요일 <호구의 연애> 속 그들의 열정적인 사랑 쟁취 과정을 생생히 지켜볼 것 같다. 그리고 어쩌면 그 성공스토리는 현실 속에 기죽어 있지만, 매력이 넘치는 수많은 호구 씨들에게 당당히 희망의 불꽃으로 타오를 것만 같다.  <호구의 연애> 속 호구 씨들이 “야! 너도 연애할 수 있어”라고 당당히 외치는 그날까지 호구왕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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