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호 PD가 돌아왔다. 무려 1년 4개월만이다. 예전 ‘무한도전’과 똑같은 시간대에 들어간 프로그램에 관한 기대는 비단 ‘무한도전’의 애청자만의 것이 아니었을테다. 과연 변화하고 있는 미디어 업계의 지각을 어떻게 풀어냈을까, 과거의 영예를 이어 나갈 수 있는 대작 프로그램일까 등 … 모두가 가진 궁금증은 결국 한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얼마나 대단하고 재미있는 프로그램일까’. 그렇게 7월 27일 오후 6시 30분, 모두가 집중하는 가운데 ‘놀면 뭐하니?’의 첫 방송, ‘릴레이 카메라’편이 전파를 탔다.
닐슨 미디어 기준, 시청률은 4퍼센트로 집계됐다. (4.3%(1부), 4.6% (2부)) 이는 전 주의 프리뷰 방송회와 비슷한 수준으로 마냥 기뻐할 수도, 그렇다고 마냥 슬퍼하기도 이른 수치였다. 하지만 어찌 첫 술에 배부를 수 있겠는가, 아직은 조금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일단 확정된 방향만큼은 신선해보였다.
‘놀면 뭐하니?’는 무정형 포맷을 주 컨텐츠로 삼는다. 첫 회와 유튜브에서 미리 선공개되었던 ‘릴레이 카메라’에선 김태호 PD가 유재석을 불러낸 뒤 카메라에 관한 간단한 설명을 한 뒤 정말 그대로 떠나버린다. 카메라를 주고, 찍고 싶은 것들을 마음대로 찍으며 다른 누군가에게 전달하는 것이 바로 본 코너의 규칙. 그렇게 해서 메모리에 쌓이게 되는 n명의 일상들을 함께 모아보는 것에서 재미는 배가되고, (김태호 PD피셜) 일종의 행복 전도가 이루어진다. 꽤 흥미롭고 설득력 있는 기획 의도였다.
고정 출연자도 유재석 밖에 없고, 카메라 메모리에 켜켜이 쌓여가는 누군가의 일상들은 그 주제가 다양하고 또 변화 가능성이 굉장히 높은 것들에 해당했다. 김태호 PD가 제작 발표회에서 밝혔던 바와 같이 ‘무한도전’보다 더욱 과감한 무정형 포맷을 택하고 있다는 거다. 앞으로의 방향성과 가능성은 모두 시청자와 함께 만들어 나가겠다는 김태호 PD의 포부가 과연 잘 실현될 수 있을까. 우선 현재 지적 받고 있는 지상파 예능의 문제점을 타파하기 위한 다양한 뉴미디어와의 결합 노력은 확실히 신선했던 시도였다고 할 수 있었다.
코드커팅(Code Cutting) 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미국에서 만들어진 신조어로, 기존에 사용하던 케이블 TV 등의 유료 방송 서비스를 끊고,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또 다양한 컨텐츠가 있는 OTT (Over The Top, 인터넷 스트리밍을 통해 콘텐츠를 제공하는 서비스)를 택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하지만 유료방송의 이용료가 워낙 비싼 미국과 달리, 국내는 애초 서비스 제공 당시부터 저렴한 가격이 형성되었기에 아직까지 코드커팅을 걱정해야 할 필요는 없는 듯해 보인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이를 기점으로 콘텐츠 경쟁이 치열해졌다는 것이다. 기존 지상파들이 케이블과 IPTV만 신경 써도 됐다면, 이젠 OTT사업자들까지 신경을 써야한다. 이는 자연스레 콘텐츠 확보, 더 나아가 ‘자체 디지털 콘텐츠’ 및 해당 부문의 ‘경쟁력 확보’의 당위성으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를 여기서 꺼내는 이유가 무엇일까, 바로 MBC의 ‘놀면 뭐하니?’가 이 치열한 경쟁 속 지상파 예능이 내릴 수 있는 나름의 신선한 대안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유튜브와 지상파의 파격적이고 신선한 결합을 선보이는 지상파 예능. 그 수식어는 구(舊)에서 신(新)으로의 확장이라는 거창한 타이틀을 넘어 괄목할만한 시도이기도 하다. 그러한 현 시점에서 본 프로그램의 포맷을 간단히 분석해보았다.
브이로그, 비디오와 블로그의 합성어인 Video Blog의 줄임말로 일상을 비롯한 콘텐츠를 영상 포맷으로 제공하는 모든 형태를 이르는 말이다. ‘변호사의 24시간 vlog’, ‘의대생의 시험기간 vlog’ 등, 유튜브에서 유행하는 이러한 콘텐츠들이 다 브이로그 형식에 해당한다. 이러한 콘텐츠들의 인기 요인은 바로 사소한 공감 포인트에 기반한 타인의 일상을 엿볼 수 있다는 점인데, ‘놀면 뭐하니?’에서는 그 콘텐츠를 기존의 유튜브 시장이 아닌, 지상파의 영역으로 끌어와 시청자들의 수요를 충족시키고자 한다.
유재석이라는 고정 출연진에서 시작해 하하와 유희열, 양세형 등으로 확장되며 그들의 소소한 일상 단면을 엿본다는 것은, 기존 유튜브에서 볼 수 없었던 인물들의 새로운 모습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 또한 추가적으로 첨가된 예능적 요소들과 BGM, CG효과, 자막 등은 기존의 평이한 유튜브 브이로그 콘텐츠와 다른 차별점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기존 콘텐츠들 중에서 다양한 자막 및 CG들을 활용하는 것도 많다. 하지만, 저작권에 걸리지 않는 BGM만 사용해야 한다던가 하는 등의 제약으로 인해 만들어지는 소극적인 컨텐츠의 양상도 인지해야 한다. 이로 미루어 보았을 때, 본 릴레이 카메라는 보다 ‘확장되고 예능적 요소를 강화한 신규 브이로그’ 라는 새로운 포지셔닝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시청자들을 포획할 수 있다고 본다. 여러 측면에서 볼 때 도전적이고 흥미로운 시도이자 콘텐츠의 성공적인 전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독특한 화면구성도 돋보였다. 카메라가 넘어가며 개개인의 일상이 시작될 때 마다 마치 유튜브의 썸네일과 같은 화면구성이 약 3초간 등장한다. 썸네일이란 콘텐츠 전체의 내용을 대략적으로 요약해 보여주는 대표 이미지를 일컫는 말로, 해당 콘텐츠가 대략적으로 어떤 내용을 중심으로 펼쳐지는지를 예고하는 기능을 한다.
브이로그 형식의 영상들, 거기에 달라붙는 썸네일 형식의 이미지는 분명 지상파 예능이 기존에 택하지 않았던 새로운 형식 그 자체였다. 물론 이처럼 커다란 제목을 중심으로 한 화면들은 많았지만 누군가의 일상을 담아내는 브이로그 형식의 영상에서 각각의 일상이 시작하기 전마다 이를 마련해 흐름을 갈라두지는 않았다. 하지만 ‘놀면 뭐하니?’에선 출연진들의 결이 달라지는 일상마다 가독성 좋은 썸네일 영상을 약 3초간 배치해 시청자들의 이목을 계속해서 집중시키도록 했다. 배려가 돋보이는 편집이었다.
본 프로그램은 그저 릴레이 카메라영상만을 전파에 실어 보내지 않는다. 이를 진행했던 출연진들이 조세호의 집에 모여 그 때의 내가 어땠는지, 이 상황이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이었는지를 설명하며 카메라가 어디로 갔는지를 시청자들과 함께 추적하고, 반응한다.
실제로 이러한 리액션 영상은 실제로 콘텐츠 시장에서 괄목할만한 하나의 사회적 흐름이기도 하다. 대면의 기회가 줄어듦에 따라 활자와 같은 댓글이 아닌, 영상을 통한 상대의 반응을 보는 것이 하나의 ‘유희’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유튜브 리액션 비디오 제작자로 가장 유명한 ‘FBE’ 채널은 2019년 7월 현재, 구독자 수 1941만여명을 보유하고 있는 거대 채널로 고속성장하고 있다. 그들의 컨텐츠는 아주 사소하고도 다양하다. 치즈케익에 관한 세대별 반응, 혹은 KPOP팬이 아닌 사람들이 보는 KPOP 반응 등, 사소한 영역은 시청자들에게 문제될게 없다. 그들은 그저 계속해서 영상을 통한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싶어하기 때문이다. 1900만이 넘는 구독자 수는 이런 콘텐츠를 원했던 시청자들이 그만큼 많았다는 것과, 해당 수요를 잘 포착했기에 얻을 수 있었던 하나의 성과라고 해석될 수 있다.
유튜브 시장의 이러한 흐름과 리액션 콘텐츠를 지상파 예능의 영역으로 가져왔다는 것, 이는 신규 형식의 콘텐츠를 레거시 미디어에 어색하지 않게 접목하려는 제작진의 센스가 돋보이는 기획이자 연출이었다고 생각한다. 굉장히 신선한 시도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쉬웠던 점은 분명 존재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김태호 PD의 가장 큰 경쟁자는 동시간대 타방송사의 프로그램이 아닌, 이전에 본인이 제작했던 ‘무한도전’이 되었다. 무엇을 시도하더라도 항상 ‘무한도전’과의 비교가 따라오는 현 시점에서, 과거와 다를 바 없는 출연진들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아쉬움을 자아낸다.
유재석이라는 고정 출연진을 중심으로 같은 무한도전 멤버였던 하하와 양세형, 게스트로 자주 등장했던 조세호와 데프콘, 그리고 특집마다 간간히 등장했던 소수의 아이돌 (이번 첫 회에선 유노윤호였다.) 까지, 이젠 눈에 자동으로 읽히는 흐름과 ‘무한도전’과 다를바 없는 출연진들에 시청자들은 진부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획기적인 형식이 한정된 출연자로부터 기인하는 진부함까지는 상쇄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출연진들을 다변화시킬 수 없다면 방점이 찍히는 인물의 소구 방식을 변화시켜야 한다. 예컨대 딘딘 또한 타 예능에서 소비되는 이미지와 동일했고 데프콘 또한 ‘유재석에 대한 치사량 넘는 존경심’을 갖춘 이미지로 전과 다를 바 없었다. 시청자들은 ‘무한도전’을 원하지만 또 ‘무한도전’을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한다. 이 말은 시청자들은 ‘무한도전’속에 새겨져 있던 참신한 도전정신과 재미는 원하지만, 그 방식이 이전과 같은 진부한 레파토리이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하다. 출연진에 관한 숙고가 필요한 지점이다.
직관적으로 생각하면 너무 당연한 아쉬움이다. 유튜브의 브이로그를 시청한다고 가정해보자, 지루한 부분이 나온다면 앞으로 넘길 수 있고, 재미가 없는 영상이라면 다른 콘텐츠를 직접 선택해 시청할 수 있다. 상대적으로 시청자의 자유도가 높은 유튜브에 비해 지상파 예능프로그램은 그렇지 않다. 지상파 예능도 자유롭게 콘텐츠를 바꾸어 시청 가능해야 한다는, 막무가내의 주장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의 일상을 담아내는 브이로그의 형식을 킬러 콘텐츠로 삼으려면 해당 출연진들간의 분량 및 그 간격을 잘 조절해야 하는 것은 물론, 요즘 넘쳐나는 관찰예능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리액션과 릴레이 카메라 영상의 분량이 유기적이지 못하다면 시청자들은 피로감을 느낄 수 밖에 없다. 예컨대 리액션 부분에서의 필요없는 드립을 던진다던가 출연진들간의 친밀도를 강조하는 오디오들은 과감하게 쳐내야 한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일상을 지켜본다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집중력을 필요로 한다. 자칫하면 자사의 관찰 예능 ‘나 혼자 산다’나 ‘전지적 참견 시점’으로 전락할 수 있다. 그 가능성을 경계하고 조리에 맞는 편집으로 구성되어야 한다.
유튜브 전성시대라고 불리는 요즘, 과감하게 도전장을 내던진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 아직 ‘릴레이 카메라’라는 첫 하위 코너 밖에 방영되지 않은 시점에서 본 프로그램의 성공여부를 논하는 것은 시기상조에 해당하는 듯하다. 하지만 ‘릴레이 카메라’의 선방으로 미루어 보아 김태호 PD가 강조했던 ‘확장’이라는 개념이 기대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대한민국 라이브’, ‘조의 아파트’ 등 다양한 하위 코너들에 대한 기대감까지 커져가는 현 시점에서 다시 ‘무한도전’을 떠올려 본다. 그리고 과거의 영예에만 머무르지 않으려는 제작진들의 열의와 시시각각 변화하는 미디어 생태계에서 나름의 생존 방식을 구축하는 모습에는 일단 박수를 보내고 싶다.
구에서 신으로의 확장, 분야를 막론하고 해당 경계에는 언제나 불안한 변화가 동반되어왔다. 확정된 방향자체는 충분히 바람직하다. 제2의 무한도전이 될 지, 아니면 예능계의 또 다른 패러다임이자 하나의 흐름이 될지가 벌써부터 궁금한 현 시점에서, 진정으로 본 프로그램의 무한한 확장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