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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M씽크 2기

세련된 진부함에 질릴 때, B급 감성을 섞어보자

<놀면 뭐하니?>, MBC 예능에도 찾아온 뉴트로 디자인(?)

by 이현주

공중파 예능의 디자인. 체계적이고 깔끔하고, 세련됐죠. 하지만 기성품처럼 비슷비슷한 예능 디자인에 좀 무뎌진 건 사실입니다. 예능을 볼 때, 영상 디자인의 존재를 인지조차 못하기도 합니다.

최근 시작한 김태호 PD의 예능 <놀면 뭐하니?>의 디자인은 좀 달랐습니다. 그간의 무뎌짐을 깨고 영상 디자인에 눈이 가게 할 정도로 새로웠습니다. 영상 참 개성 있게 잘 만들어내는 유튜브 채널(개인적으로 72tv나 위아워어스(WEOURUS) 같은 채널..)을 볼 때 느꼈던 영상미로 인한 즐거움을, 거의 처음으로 TV 방송을 보며 느낀 것 같습니다.

특히 예능에서 흔히 보지 못한 B급 감성의, 소위 힙한 디자인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디자인은 프로그램의 아이덴티티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방송 디자인은 프로그램의 정체성을 반영하고, 프로그램의 색깔을 시청자들에게 각인시키고 강조합니다. 그렇다면 <놀면 뭐하니?>의 그 힙하고 색다른 디자인은 어떠한 프로그램 아이덴티티를 반영하고 있는지, (디자인 알못이지만... 동경의 눈빛으로) 한 번 살펴봤습니다.


<놀면 뭐하니?>는 '무계획이 최고의 계획이다'는 말처럼 우연을 따라가는 프로그램입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제작진이 짜 놓은 틀에서 출연자들이 맡은 캐릭터를 소화해내는 것이 아닌, 출연자 한 명 한 명의 선택과 행동이 프로그램을 흘러가게 만드는 예능입니다. '릴레이 카메라'에서 볼 수 있듯 카메라를 받은 출연자가 누구에게 카메라를 전해줄지에 따라 다음 출연자로 누가 나올지가 결정됩니다.

제작진의 개입이 적다 보니 한편으로는 출연자들의 자연스러운 모습이 드러납니다. 출연자가 혼자 카메라를 들고 찍는 방식에 마치 V-log를 찍듯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모습이 담깁니다. 게다가 '릴레이 카메라'로 찍힌 영상을 출연자들이 함께 모니터 하는 곳은 조세호가 실제 살고 있는 집입니다. 스튜디오까지 정말 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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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인위적인 완벽함보다는 자연스러운 우연을 지향하는 <놀면 뭐하니?>. 이러한 콘셉트는 포스터 디자인에서부터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포스터 사진은 조세호가, 로고 글씨는 유재석이 맡았습니다. 김태호 PD는 전문 사진기사가 아닌, 조세호에게 그것도 일회용 필름 카메라를 쥐어 주고는 대뜸 포스터용 사진을 찍도록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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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석이 "학교 작품도 아니고"라고 반응한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MBC 김태호 PD의 1년 만의 복귀작, <놀면 뭐하니?>의 포스터를 비전문가인 출연자들에게 맡긴다는 것은 무모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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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호 PD는 조세호의 사진이 "전문가적이지 못한 아마추어 틱함에는 딱이에요."라고 말합니다. A급 정석을 비튼 B급 감성에 적합한 인재로 채택된 겁니다.

실패를 하더라도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싶다.

<놀면 뭐하니?>를 기획할 때 유재석이 한 말입니다. 편안하고 익숙한 걸로 채우기보다는 실험성과 새로움이 들어간 프로그램을 만들고자 <놀면 뭐하니?>가 시작됐습니다. 이러한 프로그램의 정체성이 포스터 제작 방식과 디자인으로 드러냅니다. 기성 포스터 디자인의 진부한 틀을 깨부수는 조세호와 유재석의 아마추어스러움과 자연스러움, 일회용 필름 카메라의 우연성으로 만들어진 <놀면 뭐하니?>의 포스터. 이 포스터가 '<놀면 뭐하니?>는 제작진보다 출연자들의 손으로 직접 만들어가는 색다른 프로그램입니다'라고 말해주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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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 촬영지는 을지로였습니다. 을지로라면 뉴트로 열풍의 중심지로, 일명 힙지로라고 불리고 있는 곳 아닙니까. 거기에다 일회용 필카와 아날로그 감성의 디자인까지. <놀면 뭐하니?>의 포스터에서 요즘 그 핫하다는 뉴트로의 냄새가 납니다.


포스터처럼 영상에서도 B급 감성, 또 뉴트로 느낌이 담겨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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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 카메라, 8비트 이미지, 포스트잇, 손으로 찢은 듯한 종이, 테이프 위에 적힌 손글씨.

<놀면 뭐하니?>의 영상 디자인은 전체적으로 레트로, 아날로그 느낌이 납니다. 또 일러스트를 화려하고 과감하게 사용하고, 만화적인 화면과 아이템들을 사용하면서 '뉴트로'스러운 디자인 컨셉을 잡은 듯 느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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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면 뭐하니?> 디자인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꽤나 파격적으로 사용된 일러스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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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감하게 출연진의 얼굴에 그림을 그려 넣는다던지, 힙합 뮤비에서 본 듯한 움직임을 일러스트를 이용해 표현하는 효과도 들어갔습니다. <놀면 뭐하니?>가 굉장히 트렌디한 디자인 컨셉을 잡았다고 느껴집니다. 유튜브에서 시작한 프로그램답게 기존 예능 디자인의 틀에서 벗어나 트렌디하고 힙한 색을 입힌 듯합니다. 이처럼 정석적이지 않은 디자인은 <놀면 뭐하니?>의 '새로움'이라는 정체성, 그리고 캐주얼한 느낌을 한층 강하게 만들어 줍니다. 이렇게 B급 감성 담긴 장난기 많은 디자인은 그 독특한 매력으로 시청자들의 눈길을 끕니다.


그동안 저는 예능 프로그램의 디자인들을 그저 흘려보낸 줄 알았는데,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거 즐겨봤던 예능을 떠올리면 그 프로그램의 로고, 자막, CG 효과가 함께 생각이 납니다. 특히 <무한도전>이 그렇습니다. 매번 방송 컨셉에 맞게 변하던 물음표 모양의 로고, 억울한 멤버 옆에 박히는 해골 CG이 여전히 <무한도전>이라는 이름과 함께 떠오릅니다. 디자인은 프로그램의 개성을 품고 생각보다도 오래도록 시청자들의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는 듯합니다. 훗날 <놀면 뭐하니?>를 떠올리면 이 프로그램의 재밌었던 이야기들과 함께, 그 화려하던 일러스트와 아날로그적인 디자인이 함께 생각나지 않을까 싶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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