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아버지는 무슨 일 하시노?

비혼 주의 연애 이야기 11

by 왼손잡이앤

이제 어엿한 성인이 된 나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게 나를 좋아하는 남자들이 꽤 있었다.


어느 정도 교제를 하고 나면 그들은 아직은 어린 나에게 늘 부모님을 소개해 주었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

그렇게 첫인사를 끝내고 나면 어김없이 그다음 질문은 누가 약속이라도 한 듯이 똑같았다.

"그래, 아버지는 무슨 일 하시노?"

"네?.... 아..... 저...... 아버지는 고등학교 때 돌아가셨습니다."


20대에 나는 남자 친구가 이미 다 말씀드려서 나에겐 궁금한 게 없는 건가 하는 순진한 생각을 했었다.

30대에 나는 양가 부모님이 있는 게 궁금하신 건가 하는 진중한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분들이 진짜로 궁금했던 건 바로 나의 가정형편이었던 거 같다.

아버지가 하시는 일을 알게 되면 대충 그 집의 경제상태를 파악할 수 있으니 말이다.


어른들은 그렇게 빙 둘러서 내 자식의 짝이 될 사람의 집안 환경을 파악하고자 하는 어쩌면 당연할 수도 있는 질문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누군가에게는 굳이 말하고 싶지 않은 그 질문이 나는 참 싫었다.


아버지가 없다고 해서 온 집안이 교육자이던 남자 친구 어머니에게 6개월 만에 이별을 통보받기도 하고

아버지가 없다는 이유로 연애는 하되 결혼을 하지 말아 달라는 부탁도 들어봤다.

인사하는 그 자리에서 인상을 찌푸리는 배려심이 부족한 어른들도 있었다.


그렇게 나는 어린 나이에 상처를 받으면서 결혼에 대해 점점 회의적으로 변해갔고,

결혼 말고 연애만 하리라 결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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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의 작전 (brunch.co.kr)



나의 예상과 달리 그 문이 열리니 다 식은 커피와 눈이 즐거운 각종 디저트들이 식탁 위에 있었고

그 옆에는 다 식어서 눅눅해진 돈가스 정식과 장미꽃도 놓여있었다.

그 남자가 손수 준비한 점심과 디저트였다.

집으로 데려와서 화가 나려고 했던 나는 살짝 웃음이 나와버렸다.


그 남자가 의자를 쭉 빼서 앉으라는 눈짓을 주었다.

나는 조심스레 앉았고 그가 맞은편에 앉았다.


"가족들은 나 빼고 다 2박 3일 여행 가셨어. 그러니 편하게 먹어."

내가 평소에 좋아하는 돈가스를 준비했다는 그 남자의 말에서 나도 모르게 울컥한 느낌이 들었다.


그 남자가 식은 커피와 돈가스를 데우러 간 순간

"삐삐삐 삑"

철커덩 그 남자의 집의 현관문이 움직였다.


"아니 거기서 왜 차가 멈추냐고.. 진짜 이게 뭐야. 일단 우린 집에서 기다리고 네가 가서....."

현관으로 그 남자의 가족들이 한 사람 한 사람 들어오고 있었다.

각자 캐리어를 끌고서 들어서는 모습에 나는 너무 놀래서 일어섰고 우린 서로를 쳐다보게 되었다.


그분들도 눈이 점점 동그레 졌고 나의 눈도 점점 동그레 졌다.

우린 그렇게 적당한 사회적 거리를 두고서 모두 순간 얼음땡 놀이에서 얼음 한 것처럼 서있었다.

다행히도 잠시 뒤에 그 남자가 주방에서 나왔고 동시에 모두 그 남자를 쳐다보았다.


나보다 더 당황한 그 남자가 입을 열었다.

"여자 친구예요."


"아~~~~~반가워요."

그 남자의 가족들이 동시에 나를 보면서 말했다.

"아 우리는 막 나가려던 참이었어요. 우린 여행 가는 중이라... 즐거운 시간 보내요."

말을 마치고 그 남자의 가족들은 순식간에 현관문을 통해 밖으로 나가 버렸다.


그 남자는 나에게 미안하다고 하면서 사과를 했고... 나는 어이없는 웃음이 나왔다.

창가 쪽을 바라보니 그 가족들은 어디를 못 가고 집 앞에서 조금 떨어진 길거리에 서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게 보였다.


"전화드려서 다시 오시라고 해요. 제가 나갈게요."

"아니야 이거 먹고 가. 내가 아침부터 가족들 몰래 준비한 거야."


나는 그 남자의 가족들이 길거리에 서서 짐을 잔뜩 든. 채로 있는 게 너무 신경이 쓰였고

결국 그 남자를 설득해서 다시 돌아오시게 전화를 하라고 재촉했다.




그렇게 나는 그 남자의 가족들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다들 나를 보고서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소파에 앉지도 않고 거실에 서 있었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상대 부모님과의 만남.... 나의 간단한 이름과 소개가 끝났다.

이제 내가 제일 싫어하는 그 말을 나에게 질문하시겠지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아버지가 뭐 하시는지 물어보시겠지?.... 너무 싫다....라는 생각에 코끝이 시큰거린다.


그런데.....

다소 까무잡잡한 피부에 손이 거칠고 눈이 크시던 그 아버님의 다음 질문은 달랐다.

"그래, 자네는 음식 중에 뭐를 제일 좋아하나?"

내 34년 인생 처음으로 남자 친구의 부모님이 나의 아버지가 하는 일이 아니라

나에 대해 궁금해하는 순간이다.


"아.. 저요? 전 떡뽂이요. "

"아~~ 하하 떡볶이 좋지."


내가 그토록 싫어했던 결혼을 다시 생각하는 하는 순간이었다.

이렇게 나에게만 관심을 가지고 궁금해하는 분이라면

어쩌면 내가 그동안 만났던 어른들과는 다르지 않을까?


친구들에게 들었던 혼수며 예단으로 두고두고 입을 떼시는

그런 어른들은 아니겠구나 하는 믿음이 생기는 순간이기도 했다.


"우리는 이제 그만 갈게요." 라며 나의 눈치를 보던 그 남자가 얼른 내 팔을 잡아당긴다.

온 가족들은 현관까지 다 나오셔서 나를 배웅해 주셨다.


우리 집까지 가는 동안 차 안에는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랫소리만 들렸다.

침묵을 깨고 그 남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진짜 미안해... 이건 정말 내가 의도한 건 아니었어. 억지로 부담 주고 싶었던 거 아니야.

그리고 제발 헤어지자는 말 좀 그만해. 네가 마음이 바뀔 때까지 내가 기다릴게"

겉으로 괜찮아 보여서 어찌 보면 막무가내로 밀어붙여서 강해 보였던

그 남자의 입에서 나온 뜻밖의 말에 나는 조금 놀랬다.


"나는 누구의 아내, 며느리 그런 역할 부담스러워요. 그리고 아이도 안 좋아해요.

또.... 모아놓은 돈도 없고요."

"그런 건 나한테 하나도 안 중요해. 내가 할게. 우리 집엔 내가 너희 집에도 내가 다 알아서 잘할게"

그 남자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내가 너의 보호자가 되어서 항상 지켜줄게."

나는 아무 말 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그 남자는 나의 눈빛 속에서 나의 마음이 변했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날 이후로 3개월이 지나고 내일이 우리의 결혼식날이 되었다.

어떻게 시간이 그렇게 빨리 지나간 건지 모르겠다.


나는 비혼 주의인 욕심쟁이가 아니라 어쩌면 상처 많은 겁쟁이였는지도 모르겠다.

이건 이래서 저건 저래서 자꾸만 피하고 숨고 그랬던 시간들이 참 못났게 느껴졌다.

상대 부모님 앞에서 나를 수없이 작아지게 했던 그 질문 하나 때문에 나는 참 많이도 아팠나 보다.

그게 뭐라고 그렇게 아팠을까? 그건 내 잘못도 아닌데... 나는 뭐가 그리 속상했을까?

나의 마음속 얼음을 녹게 해 주신 그분들은 우리가 상견례하는 그날까지도

나의 부모님이 무슨 일 하시는지 질문하지 않으셨다.

그냥 내 아들이 좋아하는 여자라서 오케이 하신 그 마음이 참 고마웠다.




결혼식 전날 그 남자가 찾아왔다.

"일찍 자야지 여긴 왜 왔어요?"

"내가 다른 건 몰라도 한 가지만 약속할게. 나는 항상 네 편이야. 내 가족과 너 중에서 너를 선택할 거야.

이 세상에서 이제 나한테 제일 중요한 건 너의 생각과 너의 말이야."

단호한 표정으로 말하던 그가 나를 안아주었다.


"알겠어요. 늦었으니 그만 가서 자요. 내일 일찍 일어나야 하는데"

나는 짧은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돌아서는 나를 그 남자가 뒤에서 와락 안아주고는 속삭였다.

"내가 쑥스러워서 말 못 했지만.... 아주 많이 사랑해. 내 여자가 되어줘서 고마워"


다음 날 나는 그 남자의 손을 잡은 채 결혼식장에 입장하는 곳에 서 있었다.

결혼에 회의적이고 결혼 말고 연애만 고집하던 내가 드디어 결혼식을 하는 날

나는 누구보다 환하게 웃었다.


결혼이라는 무거운 왕관은 무릇 한 남자와 한 여자 사이의 사랑만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는 걸 너무 일찍 알아버려서 항상 두려워서 피해 다니던 겁쟁이인 나를 기다려주고 손 내밀어 준 그에게 이젠 나도 보답을 해주고 싶다. 그래서 입장하기 전 처음으로 그 남자에게 말해주었다.


"저도 많이 사랑해요."


그 말을 들을 그는 나의 손에 키스를 해주었고 우린 그렇게 부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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