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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르세데스 Jun 10. 2022

나란 사람

꾸준히 읽고 쓰는 사람이 되기까지

   나는 평소 말하는 것을 즐겨하지 않는다. 하고 싶은 말이 생겨도 바로 내뱉지 않고 좀 묵혀두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가까운 가족이나 지인들은 내가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요즘엔 내향인도 많이 존중받고 그들의 목소리를 내는 분위기라 이런 분위기에 좀 더 편안하게 내 생각과 마음들을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서툴다. 내 말에 누군가가 상처받을까 봐 걱정도 되고 나는 그렇지 않은데, 다르게 해석하고 오해할까 봐 미리 걱정한다. 그런 나에게 글쓰기는 아주 유용하다. 글쓰기가 어렵다면 책의 문장을 빌려 내 마음을 쓰는 것도 도움이 된다.




   가부장적인 남편과 두 아이를 돌보며 사느라 나는 한동안 온전한 '내 시간'을 맘껏 누리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여러 모양으로 쌓인 감정들이 뜻하지 않는 순간에 터져 나와 불편한 상황들을 만들었다. 그 피해는 아이들에게 돌아갔고, 난 평소 80점 엄마로 아이들에게 맞춰 주다가도 쌓인 감정들을 못 참고 분출해버려 그동안의 노력과 신뢰를 와장창 무너뜨렸다. 그리고 얻은 것은 자책과 죄책감이다. 더 이상은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 싶었을 때 글쓰기를 시작했고 그 글쓰기가 내 감정과 생각은 물론 삶까지 정리해 주었다. 그리고 이따금 찾아오는 외로움과 공허한 마음은 '책 읽기'로 달랠 수 있었다. 그러면서 꾸준히 읽은 책에 대한 감상을 블로그에 남기기 시작했고 블로그에는 240개 정도의 서평이, 다른 SNS 플랫폼에는 350개의 서평이 쌓였다. 책을 집중해서 읽기 시작한 것은 둘째 아이가 잘 걷기 시작한 2018년 정도부터 였고, 2019년 6월쯤부터 서평으로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다. 생각의 흐름대로 쓰다 보니 읽고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지금까지 4년째 "꾸준히 읽고 쓰는 사람"이 되어 있구나, 나는 그런 사람이구나 싶다.



   그럼 꾸준히 읽고 쓰는 사람으로서 어떤 성과들이 있었을까?
책을 읽고 나서 좋았던 감정만 품은 채로 책을 덮는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책의 핵심이 되는 발췌 문장을 정리하고 생각도 덧붙이다 보니 책에 대해 애정이 생기는 것은 물론 기억도 오래 남았다. 또한 그것을 나만 보는 것이 아니라 '공개글'로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고 의견을 들으며 타인의 생각도 들을 수 있었다. 혼자 읽었을 때와는 다르게 더욱 의미 있고 즐거웠다. 특히 2020년부터 오랫동안 이어진 '코로나 시국'에 친구들이나 지인을 만나지 않아도 외로움과 공허함이 생기지 않았고 책으로 소통하는 이들이 있어서 마음이 풍성했다. 혹자는 인터넷 상에서 만나는 이들과 어떻게 '진심'을 나누고 '신뢰'를 쌓을 수 있냐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글에는 그 사람 만의 색채와 가치관이 묻어 있다. 아무리 포장되게 꾸며 쓴다 해도 읽는 사람들은 단박에 알아볼 수 있다.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진심을 글에 담았는지 또는 단순한 '발설의 욕구'에만 충만한 글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 그래서 자신과 맞는 결을 가진 사람의 글을 알아보고 끌린다. 한 번 두 번 댓글을 달다가 자신의 마음과 와닿아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고 이후 마음이 열려 더욱 친밀한 소통으로 이어지게 된다.



   처음에는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다. 그러다가 사서도 보게 되고 네이버판_책 분야에서 '책 서평 이벤트'를 신청하거나 서평 전문 카페에 가입해서 책을 무료로 받아 서평을 쓰기 시작했다. 잘 찾아보면 유튜브에서도 출판사 이벤트가 있어 좋은 신간 책을 무료로 받아볼 수 있다. 책 선물이 일주일에 한두 번 택배로 오다가 3일에 한번 정도 오기 시작했고 기한에 맞춰 책을 읽고 글을 쓰려면 부지런해야 했다. 책을 지정된 시간 안에 집중에서 꾸준히 읽다 보니 책을 읽는 속도도 빨라지고, 책의 핵심도 좀 더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관심 있는 분야의 책을 신청하기도 하지만 때론 단순한 호기심에 과학, 인문, 철학 책도 받아보기 시작했고 책 편독은 자연스레 없어지고 어떤 책을 만나도 '읽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러다 보니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고 '나를 잃어버린 채'로 살다가 한없이 낮아진 자존감을 자연스레 끌어올릴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은 책을 받기 위한 서평단 신청은 부러 하지 않는다. 읽고 싶어 산 책들의 탑이 무너질 듯 위태롭게 서있기도 하고, 좋은 책을 보는 안목이 조금은 생기면서 서평 제안이 와도 읽을 만한 가치(모든 책은 정말 한 가지 이상의 좋은 메시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가 있는 것을 선택해 읽게 되었다. 나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시간이므로.



이석원, 박정민, 이다혜 작가님 등 9인의 작가들이 쓴 책. 그 마음의 이면이 좋았던 책이다.


누구에게나 기회는 온다. 하지만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준비된 자'이다. 준비된 자만이 자신에게 맞는 기회가 온 것인지, 그것을 받아들여 성장할 수 있는지를 알 수 있다. 목표한 바가 있으면 그것을 향해 힘들어도 한 발, 한 발 대딛다 보면 더 많은 기회가 따라온다. 배울 기회, 도움을 받을 기회들 말이다.

  《믿을 구석은 회사가 아니었다》 꿈을 꾸다 중에서




   위의 문장은 내가 쓴 책(공저) 속의 문장이다. 사실 난 오랫동안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르고 살았다. 하지만 나를 알고자 하는 간절함이 날 쓰게 만들었고, 나를 알아보게 만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보다 '책을 읽고 서평을 쓰는 것'이다. 그 좋아하는 것을 꾸준히 하다 보니 책 쓰기 공부를 할 기회도 생겼고, 책 모임을 할 수 있는 기회도 생겼다. 또한 같은 꿈을 가진 엄마와 서로 의지하고 응원할 수 있었고 단행본은 아니지만 작게나마 내 지분이 허락된 책을 낼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좋아하는 것을 꾸준히 하다 보니 '북 인플루언서' 자격으로 어느 출판사에 초청되는 즐거움도 누릴 수 있었다. 혼자만 좋아한다고 조용히 즐기는 것이 아니라 '내가 무엇을 좋아한다고 드러냈을 때' 기회들이 따라왔다.  




   아직은 미미하지만 내가 읽고 좋은 책들을 주변 지인들에게 소개했을 때 좋은 반응이 따라왔고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할 내적 동기를 자극해 주어 고맙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좀 더 개인적으로는 남편과의 사소한 말다툼에서 '승자'가 될 수 있었다.(결혼 15년 차, 20년 차, 결혼 선배님들 그게 무슨 소용인가? 말씀하실 수도 있지만 늘 위축돼 있었던 나에게는 중요한 문제였다.) 남편의 사고방식으로는 아내가 집안 살림을 돌보는 것 외에 다른 것에 관심을 두는 것이 거슬릴 것이 분명했다. 실제로도 식탁 위에 쌓인 책들을 좀 치우라고 언성을 높인 적도 있다. 하지만 꾸준히 읽으면서 쓰자 나의 생각이 정리되는 것은 물론 하고자 하는 말도 위축되지 않고 당당히 이야기할 수 있었고 남편의 불합리한 요구에 울먹이지 않고 조목조목 따져 물을 수 있었다.



   나는 욕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음식에 대해서도, 성취에 대해서도. 사랑이나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이유를 생각해보면 난 가진 게 없기 때문에 잃을 것도 없고 워낙 다른 사람들과 비교할 만한 사람이 못된다고 스스로를 낮게 보았기 때문에 나 자신에 대한 기대치도 낮았던 것 같다.
   하지만 글을 읽고 서평을 꾸준히 SNS 올리며 책을 보는 안목이나 정리하는 습관 등이 남들에게는 없는 고유한 내 능력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나 같은 분들은 블로그에나 인스타그램에나 참 많다. 난 어쩜 평범한 책 리뷰어일지도 모른다.) 글을 남길 수 있는 플랫폼에 글을 쓸수록 다양한 사람들을 알게 되었다. 일반 책 리뷰어는 물론, 작가, 강연가, 아니운서, 목사, 싱어송라이터, 책 편집가, 디자이너 등 등 다양한 사람들과 자연스레 관계 맺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면서 느낀 것은 근사한 직업, 지위, 명성을 갖고 있는 사람일지라도 비슷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비슷한 가치를 추구하고 비슷한 욕구를 가진 사람, 비슷한 어려움을 가진 사람 말이다. 예전에는 나의 위치와 경력에 아무것도 아닌 '무용한'사람이라고 스스로 정의했다면 나도 가치 있는 '쓸모 있는'사람으로 정의할 수 있게 되었다.
   지적 호기심과 학습능력도 좀 향상된 듯하다. 사실 이것은 학창 시절에 생겼다면 참 좋았겠지만 이젠 평생 공부하는 시대이니 아무렴 어떤가 싶다.



   앞서 책 편독이 사라지고 다양하게 읽을 수 있다고 했지만 그래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분야는 '소설'이다. 소설을 통해서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타인의 삶을 경험한다. 또한 입체적 인물을 통해 함께 울고 웃으며 그의 아픔을 함께 느끼고 우리는 힘들어도 함께 살아갈 때 일어설 수 있다는 것을 배운다. 때론 한껏 솟아오르는 고양감으로 빨리 이루고 싶은 성취감으로 들뜰 때도 있지만 인간의 생과 사를 겸허히 담아낸, 깊이 있는 책을 보노라면 한없이 작은 미물일 뿐인 내가 보인다. 이후엔 '겸손하게 살자. 나를 존중하고 타인을 있는 모습 그대로 존중하자.'라는 마음만 남는다.




   오늘도 읽을 책들이 내 양쪽으로 쌓여있다. 요즘엔 책을 읽어도 아내로, 엄마로 사는 내 삶에 지장이 없도록 읽으려고 한다. 아무래도 글을 쓰게 된 5주 동안은 좀 적게 읽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도 조급해하지 않기로 한다. 또한, 플랫폼에 쓸 글들이 조금 엉성하고 부족해도 시간 내에 글을 쓰는 것을 목표로 삼으려 한다. 무엇보다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 쓰는 것이고, 나의 정체성, 내 플랫폼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쓰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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