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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리댄 Jan 31. 2022

더 볼드 타입, 나를 각자의 방식으로 안아주는 삼총사

모리댄이 픽한 드라마, 잡지사 '스칼렛'을 배경으로 한 <더 볼드 타입>

<더 볼드 타입> 시즌4까지 끝냈다. <더 볼드 타입>은 미국 인기 잡지사 '스칼렛'에서 일하는 세 20대 여성의 우정과 사랑, 그리고 커리어를 다룬 시리즈다. 어렸을 때부터 글을 잘 썼던 철저한 J형 에디터 제인, 자유롭고 정의롭지만 종종 감정이 앞서는 소셜미디어 디렉터 캣, 가난한 집안에서 힘들게 자라면서도 스타일리스트라는 꿈을 끝까지 밀고 나갔던 서턴. 이 셋은 '스칼렛'에서 같은 목표를 가지고 힘을 모으기도 하지만 결국 저마다의 삶을 성실하게 살아가며 서로를 응원해 준다. 특히 캣은 일련의 이유로 직장을 나오게 되지만 이들의 우정은 계속된다. 개성 강한 캐릭터의 다채로운 에피소드들은 자주 내게 인사이트를 줬다. 오늘은 헌정하는 마음으로 <더 볼드 타입>을 소개한다.


왼쪽부터 캣, 서턴, 제인


<더 볼드 타입>은 2017년 프리폼에서 제작해 세상에 내놓은 미국 드라마다. 이후 넷플릭스에서 서비스해 나와 같은 글로벌 팬을 양산했다. 2021년 6월 시즌5로 완결했으나 넷플릭스에는 시즌4까지만 오픈된 상태. 자존감 떨어진 서턴의 모습으로 시즌4가 마무리된 터라 얼른 시즌5를 만나보고 싶다. 극중 절친으로 나온 삼총사 제인(케이티 스티븐스), 캣(아이샤 디), 서턴(메간 페이)는 시리즈가 끝난 이후에도 돈독한 사이를 유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셋 중 가장 범생이처럼 나왔던 제인, 케이티 스티븐스의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가 100만 명 이상으로 가장 많다.


출처: 케이티 스티븐스 인스타그램

삼총사의 서사, 나에게는 이렇게 와닿았다

*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제인, 글을 쓰겠다는 열망을 지펴준 친구

제인은 타고난 글쟁이다. '스칼렛' 에디터 중에서도 편집장 재클린에게 가장 큰 신임을 받는 인물. 하지만 처음부터 뭐든 잘 해낸 캐릭터는 아니다. 직장 새내기 시절, 그는 도무지 글의 주제를 잡지 못해 몇 번이나 재클린의 퇴짜를 맞는다. 연애는 더욱 힘들었다. 같은 업종에 종사하는 라이언과 깊은 관계를 유지했지만 신뢰를 이유로 결국 이별한다. 제인은 실패하는 페미니스트로 본인을 정의한다. 본인이 실패하는 과정을 솔직하게 글로 풀어낸다. 이를테면 바람피운 남자친구를 안정을 위해 용서를 한다든지, 질염에 대해 발언을 숨긴다든지 하는 것 말이다. 유방암 유전자가 있어 큰 결단을 하기도 한다.


나는 철저한 P형 인간으로 제인처럼 계획하는 삶을 살지는 못한다. 그렇지만 글쓰기가 나, 그리고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잘 알고 있으며 글쓰기를 정말 좋아한다는 점에서 제인에 내 모습을 많이 투영했다. 한때 잡지 에디터가 되고 싶었던 만큼 그가 하는 일이 부럽기도 했다. 언젠가 내가 원하는 주제의 글을 쓰며 일할 수 있는 직장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인이 실패하는 페미니스트라는 점에서도 큰 위로가 됐다. 나는 대학시절 내 정체성을 페미니스트로 밝혔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다만 언제나 완벽하게 신념에 맞춰 행동하지는 못한다. 사회에 나오니 알면서도 지키지 않을 때도 생긴다. 잘못된 행동을 했다며 나의 행동을 후회할 때도 있다. 제인은 내게 '텄다'가 아니라 '깨달았다'라고 접근하는 용기를 줬다.



캣, 실수를 내보일 줄 아는 친구

캣은 부유하고 보수적인 가정에서 태어났으면서도 자유롭고 정의로운 인물이다. '스칼렛'의 소셜미디어 디렉터로 일하는 그는 정통 미디어 '스칼렛'을 디지털화하는데 큰 공헌을 한 인물이자 트위터 중독자다. 매 시즌마다 본인을 발견하는 친구기도 하다. 그는 시즌1에서 업무로 만난 사진작가 어디나에게 사랑을 느끼며 본인의 성 정체성에 눈을 뜬다. 시즌4에서는 다시 남성에게도 사랑을 느끼며 양성애자라는 사실을 인지한다. 백인 엄마와 흑인 아빠의 피가 고루 섞였으면서도 본인을 흑인으로 규정하는 사회에서 혼란을 느끼기도 하고, 퀴어를 밀어내는 사회 분위기에 맞서고자 정치에 뛰어들기도 한다. 정의를 위해 SNS에 기밀문서를 공개했다가 직장을 잃고, 여성 영 리더들의 커뮤니티인 더 벨에서 바텐더의 삶을 산다. 공화당을 지지하는 에바에게 이상하게 자꾸 끌린다.


캣은 실수투성이다. 정의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는 신념은 뚜렷하지만 지혜롭게, 정확하게는 본인이 다치지 않는 선에서 일하는 데에 서툴다. 삼총사 중에서는 나와 제일 거리가 있는 인물이었다. 최대한 흑역사가 없기를 바라는 나와 달리 캣의 흑역사는 많은 사람들에게, SNS를 통해 온라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다만 그 실수가 밉지 않았다. 오히려 용기 있어 보이고 귀해 보였다. 시도를 하니 인생에 남는 게 많은 사람 같달까. 사랑에 있어서도 늘 솔직했다. 내가 캣에게 가진 애정은 각별하다. 지금 다니고 있는 직장은 영어 닉네임을 사용하는데 캣의 이름을 따 'KAT'이라고 지을까 생각할 정도였다. 결국은 다른 이름을 쓰긴 했지만. 모순 없는 인간은 없다. 용기 있는 사람은 본인의 모순을 인정하고 내보일 줄 안다. 캣은 호그와트 입학한다면 무족권 그리핀도르 학생임.


서턴,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가르쳐준 친구

서턴은 패션에 대한 열정이 누구보다 큰 인물이다. 미국의 시골 지역인 해리스버그 출신인 그는 어느 알코올 중독자 어머니 밑에서 힘들게 자랐다. 그러면서도 '스칼렛' 스타일리스트가 되겠다는 목표로 뉴욕까지 왔다. 서턴은 비슷한 시기 입사한 제인과 캣이 승진할 동안 어시스턴트 생활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는 '스칼렛'의 임원인 15살 연상 리차드와 사랑에 빠지기도 하는데, 살아가는 세계가 너무 다른 터라 둘의 사랑은 순탄하지 않다. 우여곡절 끝에 서턴과 리차드는 결혼에 골인했고, 서턴은 어시스턴트에서 정식 스타일리스트로 승진한다. 탄탄대로일 것 같은 서턴의 삶은 이번에 임신 문제로 리차드와 부딪히고 만다. 서턴은 예쁜 얼굴과 착한 마음씨, 뛰어난 패션 감각을 가졌지만 불행한 가정환경 트라우마 때문에 자존감이 많이 떨어져 있다.


서턴은 자존감이 단단하지 않다. 넘어질 때마다 불행한 가정환경을 생각하며 본인이 엄마처럼 '실패한' 삶을 살까 봐 전전긍긍한다. 하지만 꿈과 사랑을 지키고자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시즌4는 서턴이 꿈에 그리던 승진을 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는 에피소드를 다뤘다. 그러나 후반부에는 유산으로 인해 깨달음을 얻은 서턴&리차드 커플이 크게 갈등을 겪는다. 그 과정에서 자꾸만 본인의 어린 시절을 꺼내 보는 서턴의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 그렇지만 시즌5에서 서턴이 한 번 더 툭툭 털고 일어나 아름다운 미소를 보여줄 것이라는 것을 의심치 않는다. 나는 서턴이 본인의 그늘을 간직하면서도 계속해서 본인을 사랑하려 노력하는 태도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예전에는 '단단하게 태어나는 사람'이 부러웠지만 지금은 '그래도 노력할 줄 아는 사람'이 부럽다. 서턴 사랑해 서턴 행복해 줘.


출처: 케이티 스티븐스 인스타그램


2022, 올해 내가 할 일

일독일행을 좋아하는 내가 일드삼행으로 슬쩍 2022 목표를 공개해 본다.


1. 책 출간

매번 결심만 하고 이뤄보지 못했던 일이다. 현 직장에서도 글 쓰는 일을 하고 있지만 내가 원하는 주제에 대해 쓴 글은 거의 없다. 보통은 회사의 서비스를 홍보하는 데에 힘을 쏟기 때문이다. 본연의 목소리로 원하는 주제에 대해 쓴 글을 엮어 책을 내고 싶다. 올해에는 꼭 이 목표를 이뤄보고 싶다. 제인처럼:)


2. 가벼워지기

나를 자주 본 사람들은 내가 유잼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진심임). 다만 지독한 낯가림과 엄청난 리셋 능력으로 다분히 많은 사람과 어색한 사이를 유지한다. 올해는 내 유잼 모멘트를 보다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다. 가끔 실언을 하더라도 내 부족한 모습을 사람들에게 솔직하게 내보이겠다. 캣처럼:)


3. 필사적으로 자기 사랑하기

나는 부모님이 알코올중독자일 정도로 불행하게 자라지는 않았지만 적당히 가난하게 자랐다. 이로 인한 약간의 자격지심을 갖고 있다. 그로 인해 많은 꿈들을 접어오기도 했다. 직업과 관련한 꿈도 있지만 교환학생을 못 갔다거나, 취향이 있지만 가격 때문에 눈을 돌려 다른 걸 산다거나 하는 행위들이 있었다. 올해는 누구보다 내 눈치를 보려 노력할 것이다. 서턴처럼:)



기타 관람 포인트

1. 조연들도 매력이 많다. 편집장 재클린은 이지적이고 섹시하다. 업무하는 데에는 누구보다 프로페셔널하지만 남편 이언과의 관계에서는 한없이 서툴다. 업계 최고로 자리매김했지만 여전히 깨닫는 삶을 산다. 배울 점이 많은 인물이다. 그런가 하면 에디터 앨릭스는 흔히 말하는 '마초'와 거리가 있는 남자다. 여성 잡지 에디터인 만큼 여성의 마음을 공감해 주고자 노력하는 캐릭터로 삼총사와 가장 친한 존재기도 하다.


2. 패션 패션 패션. 배경이 잡지사인 만큼 인물들의 스타일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제인은 깔끔한 성격에 맞게 슈트와 하이힐, 그리고 빛나는 이마를 드러내는 포니테일을 좋아한다. 캣은 보다 통통 튀는 매력을 살려 원색 계열, 히피룩 등 다양한 스타일을 시도한다. 서턴은 페미닌한 룩을 즐겨 입으며 의외로 수수한 옷들이 많다. 재클린은 숏컷 머리를 유지하며 어깨라인 등 몸의 곡선을 살리는 옷을 많이 입는다. 골드 액세서리를 좋아한다.


3. 영어 공부로도 좋다. 나는 영어 회화 공부에 관심이 많다. 어학 성적은 괜찮은 편인데 유난히 스피킹에 자신감이 없기 때문이다. 재미로 이 드라마를 보면서도 좋은 표현을 많이 발견해 영어 공부용으로도 추천하고 싶다. 이를테면 어디나가 캣과 재회해 대화를 나누면서 '너답네'라는 표현을 하기 위해 "Classic Kat"이라 했다. 캣은 "Classic me"라고 받고. 표현 배우는 재미가 쏠쏠하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고민과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간다. 원하는 직장에 들어간 이후에도 끝없이 커리어를 다시 만들어간다. 극중 삼총사의 나이는 26~27살. 직장을 잡았을지언정 안정적이지 않고, 결혼에 대해 슬쩍 고민이 시작되며, 정치적 견해가 다른 사람을 마주하면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생각하는 나이다. 막상 모이면 아이같이 깔깔거리고 무모한 짓을 벌이기도 하는 때다. 지금 내 나이기도 하다.



나는 아쉽게도 너그럽고 지혜로운 재클린 같은 상사는 없다. 소중한 친구는 있지만 언제고 'Need you guys'라는 톡을 남기는, 모든 걸 내팽개치고 와서 안아줄 존재는 없다. <더 볼드 타입>은 나를 안아주고 내가 고민하는 지점들에 대한 인사이트를 던져주는 작품이었다. 우리 위 세대들이 <섹스 인 더 시티>를 보며 열광했던 것처럼 우리 세대가 의지할 수 있는 드라마. 추후 이 작품을 다시 보면 지금 내가 고민하던 일들을 추억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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