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에서, 첫째 날.
나는 줄곧 게스트 하우스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혼자 여행을 떠나 나처럼 홀로 여행을 왔거나, 혹은 동반자가 있는 낯선 이들과 친해져서 캔맥주 한 개씩 기울이며 그간 전혀 다른 장소에서 쌓아왔던 제 인생의 귀퉁이를 조금씩 나눠준다… 이 얼마나 낭만적인가. 우도에 가기 앞서 제주도에서 하룻밤 묵을 때 이러한 로망을 실현하고자, 나는 공항 근처에 위치한 게스트 하우스를 예약했다. 이는 우도 다음으로 내가 가장 기대하던 코스 중에 하나였는데… 음, 딱히 좋은 얘기는 없으니 상호명을 밝히진 않겠다.
2-1. 제주도와 생애 첫 게스트 하우스와 INFP
생애 첫 게스트하우스라고 썼지만, 이전에 친구와 속초여행을 갔을 때도 한 번 게스트하우스를 방문한 적이 있다. 그때도 나름 기대에 부풀어서 갔는데, 애석하게도 다른 투숙객이 거의 없었고 우리와 한 방을 쓴다던 여성분은 얼굴조차 단 한 번도 뵙지 못했다. (우리가 체크인했을 때는 이미 나가서 없었고, 밤에 돌아왔을 때는 이불을 이마까지 덮은 채 주무시고 계셨으며, 다음날 우리가 기상했을 때는 그분은 발 빠르게 떠난 뒤였다. 나는 얼리버드 아니냐며 감탄했다.)
아무튼 그러한 사정으로 속초 건은 없었다 치면, 제주도가 처음이었다. 잔고가 여유로웠던 J는 처음엔 호캉스를 하겠다 선언했지만, 마음을 바꿔먹고 내 게스트하우스행에 합류했다. (J와 잠시 함께 하게 된 경위는 건너뛴 4편에서 다루겠다.) 우리는 아주 신중하게 게하를 골랐다. 나는 여태 면허도 없고 J는 렌트할 나이가 안되므로 갸륵한 뚜벅이 었던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위치였다.
첫 번째, 공항과 최대한 가까워야 한다. 두 번째, 이왕이면 가격이 덜해야 한다. 그래야 게하지. 세 번째, 감성적이어야 한다. 이 같은 치열한 조건을 뚫고 선정된 최종 후보가 N과 D였는데, N은 사장님이 게하 운영에 진심이신 듯 공지부터가 구구절절 정성스러웠고, 후기도 아주 좋았다. 스탭이 잘 챙겨줬다느니 혼자 왔다가 사람들이 너무 좋아서 연박했다느니 여러모로 내 이상향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곳 같았다. 다만 마음에 걸리는 것은, 술을 각 1병 혹은 한 캔 밖에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 외는 가정집을 개조한 것이라 화장실이 단 한 개라는 것 정도?(이건 당시엔 별로 신경 쓰지 않았지만, 후에 엄청난 재앙으로 다가온다...)
D는 일단 북카페를 겸비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고, 무엇보다 조식이 엄청나게 맛있어 보였다. 사장님이 직접 만드신 감귤잼 등으로 조리한 토스트를 주신다는데, 비주얼을 보자마자 군침이 절로 흘러나왔다. 후기도 조식 얘기가 빠지질 않았다. 과장 좀 보태면 거의 신라호텔 뷔페 수준인 듯했다. 나와 J는 하필 둘 다 결정장애라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고민을 거듭했는데, 그러다 주저 없이 결정을 확정 지은 것은 미처 보지 못했던 D의 안내사항이었다. ‘게스트 하우스 내 음주 금지.’ 청천벽력이었다. N의 한 병 제한도 석연치 않았는데, 여긴 아예 못 마신다고?? 이건 못 참지. 더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우리는 당장 D를 내다 버리고 N의 객실을 예약했다.
제주도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택시를 타고 10분 거리에 위치한 N으로 향했다. 가는 도중에 택시기사 아저씨는 우리가 뚜벅이라 하니 요놈이다 싶었는지 화려한 영업 신공을 펼치셨는데, 대충 제주도는 택시가 거의 안 잡혀서 제게 무슨무슨 택시 서비스를 신청하면 하루당 약 10만 원에 여기저기 태워다 준다느니 렌트비보다 싸다느니 하는 내용이었는데, J가 단칼에 거절하자 비로소 조용해지셨다. 그리고 알고 보니 제주도는 택시가 아주 잘 잡혔다. (어딜 가든 3분 컷이었다.)
어색한 체크인 과정을 마치고, (예상보다 투숙객이 많은듯해 뒤늦게 걱정이 들었다.) 우리는 내가 아는 제주도민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극찬했던 빨간집에 가서 떡볶이와 등갈비와 술을 먹고, (다 꽤 맛있었지만 입에 침이 마를 정도는 아니었다.) 동문시장에 걸어가서 너무 보고 싶었던 고등어회와 사랑스러운 딱새우 회를 포장하고, 맛집이라고 자자한 화마운틴 2020에 가서 생애 첫 후토 마끼와 몸국이란 걸 생애 첫 혼디주와 함께 먹었다. 적고 보니 내내 먹기만 해서 충격적이다. 화마운틴2020에 대한 평은 말을 아끼겠다. 단지 여길 또 가느니 앞에난 바다에 뛰어드는 편이 좀 더 낫겠다는 말을 하고 싶다.
그러고 포장한 회를 들고 게스트 하우스로 향했다. 회를 1인분씩 밖에 못 샀어서, 나는 다른 투숙객들이 우리의 소중한 고등어회를 뺏어먹을까 봐 내심 걱정했다. 지붕 뚫고 하이킥의 황정음 캐릭터가 아닌 이상 대놓고 한입만 달라고는 안 하겠지만, 마지못해 나눠줘야 하는 분위기가 조성되면 어쩌지? 다들 한 점씩만 먹어도 끝장날 거 같은데. 아무튼 그런 지질하고 희한한 걱정을 하며 도착하니, 이미 저들끼리 술판이 한창이었다. 그러나 역시 우리의 안주가 가장 호화스러웠다. 우리는 꿋꿋하게 우리끼리 먹다가, 나중에 가서는 스스로가 트롤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너무 눈치가 보여서 다른 분들께도 조심스레 권했는데, 대부분은 거절하셨지만 한 분은 환하게 웃으시며 딱새우 회로 젓가락을 뻗으셨다. 아이처럼 행복해하시는 그 모습을 보니 좀 더 일찍 말할 걸 그랬나 하는 죄책감도 들었다. 하지만 치킨 닭다리보다 훨씬 더 양보할 수 없는 것이 고등어횐데, 어쩌겠는가.
그러고는 우리도 합세한(?) 본격적인 술자리가 시작됐는데…… 쓰다 보니 너무 길어진 것 같다. 그동안은 한편 한편이 너무 길었던 듯하여 이제 적당히 짧게 쓰려했는데, 또 이렇게 돼버렸다. 역시 나는 말이 너무 많다. 그런 의미로 남은 내용은 다음 편에 나눠서 이어 쓰도록 하겠다.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말은, 제주도는 고등어회와 흑돼지 구이가 가장 맛있다. 다른 잔챙이들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다. 또 먹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