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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요한 연 Apr 17. 2021

2. 동반자살자와 첫 만남

전 날, 육지에서.



  3월 6일, 내가 마지막으로 죽었을 날이다. 아무런 이상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나는 저 날 죽었어야 했다.          


내게 보이는 보기 싫던 세상

  앞선 글에선 나름 비장하게 자금을 모아야 한다고 예고했지만, 사실 처음부터 그런 생각을 했던 것은 아니다. 돈은 이미 충분해서 당장이라도 떠날 수 있었다. 그런데 하필 한 2-3주 뒤면 엄마의 제사가 있었다. 나는 딱히 그런 관습에 몰입하지는 않았지만, 그전에 떠나겠다고 통보하면 아무래도 호적에서 파일 지도 모를 일이라(그런다 해도 별 상관없기는 했다), 그때까지 기다릴 겸 남은 시간 동안 돈을 벌어두기로 다짐했다. 모든 여행에는 총알을 최대한 많이 확보해두는 편이 좋지 않나. 그렇다고 아빠에게 금전적 지원을 요구할 수도 없었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다짜고짜 이순재 할아버지에 빙의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한 100만 원만 줘보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무엇보다 이래저래 설명하기가 귀찮았다. 나를 이해시키고자 애쓰고 싶지도 않았다. 나도 나를 이해할 수 없었으니까.


  이외에도 우도에 가겠다고 정말로 결심하거나 준비하게 되기까지 적을 일은 꽤 많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생일날이나, 밀접접촉자로 분류돼서 자가격리를 한 일등이 그러하다. 후자는 언젠가 따로 분류해서 써보도록 하겠다. 당시에는 정말 끔찍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나름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파리처럼 싸돌아다니다 그리된 것은 아니고, 잇몸이 아파서 치과에 갔는데 날 진료해준 치위생사가 알고 보니 확진자였다는 충격적인 전말이었다.

  아무튼 다 제쳐두고, 가장 먼저 이야기해야 할 것은 저 3월 6일에 관한 이야기다.




  1-2. 동반자살자와의 첫 만남

  2월의 중순 즈음 어떤 경로로 알게 된 사람과 나는 동반으로 세상을 떠나기로 했었다. 희한하게도 날짜나 방법을 본격적으로 정하기 위한 단 한 번의 만남과, 이후의 셀 수 없는 연락만으로도 나와 그 사람은 친구가 되었다. 물론 친구가 한 명 더 늘었다고 해서, 그 친구는 조금 특별하다고 해서, 그 사실이 서로를 살려줄 수 있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어쨌거나 그때 같이 죽기로 했던 우리는 함께 우도에 살았다. 참 알쏭달쏭한 일이다. 인생의 성질이 그러하기 때문일까. 뜻하지 않게 한동안 동반자가 돼주었던 이 친구의 이름은 J라 하겠다.

     

  2월 말에 서울에 위치한 아담하고 평범한 카페에서 나는 J를 처음 만났다. J는 어느새 당연해진 마스크를 쓰고 있었고, 하늘색 맨투맨에 하얀색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펌을 준 까만색 머리칼은 무척 풍성했고, 투명하고 동그란 안경을 끼고 있었으며, 그 안의 눈동자는 제법 앳돼 보였다. 그 애를 보자마자 든 첫인상은 '어, 생각보다 되게 멀쩡하네?'였다. 도저히 자살을 모의하기 위해 만나러 온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물론 자살할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란 딱히 정해져 있지는 않지만, 나는 약간의 편견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당시 나는 나랑 같이 죽게 될 사람이 어떻게 생겨먹었을지에 대해선 아무런 관심이 없었지만, 아주 잠깐은 '어떻려나?', '뭐 대충 이러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스쳤던 것도 같은데, 정작 만난 사람은 그때 내가 상상했던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나중에 듣기로는, 그때 J 또한 나를 보고 비슷한 생각을 했다고 말해주었다. 누나도 전혀 자살할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는 그 말이 나는 조금 신기했었다. 나는 내가 충분히 자살할 사람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그게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적어도 잘 살아있는 사람 같지는 않았다.

     

  우리는 자리에 앉아서 각자 음료를 주문하고, 이따금 빨대를 빨아들이며 방법과 날짜에 대해 상의했다. 그러다 문득 이다지도 무사한 카페에서, 방금 처음 만난 사람과 이렇게나 평화롭게 자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는 것에 다양한 감정이 들었다. 낯설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고, 야릇하기도 하고,  우습기도 했다. 그러다 미리 정해둔 펍으로 이동해, 무슨 수란 로제 파스타와 하이볼과  맥주와 샹그리아 와인을 먹으며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로 서로의 인생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그렇다 해서 정말 제대로  이야기는 하나도 하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J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랬다. J  미더웠다거나  자리가 불편했던 것은 아니다. 단지 나는 나에 대해 제대로 전달할  있는 상태는 아니었다. 나를 털어놓는 일은 설령 완전하고 건강한 상태라 해도 쉽지가 않다. 나는 애초에 완전히 건강했던 적이 있었던  같지도 않지만, 그래도 지금보다는 훨씬 나았을 시절에도 그것은 매번 어려웠다. 상대방의 예상지 못할 반응이나 이후에 달라질 공기나 온도 같은 것들,  그런  두려웠다.     


  3학년 1학기 때 수강했던 심리학개론 수업에서는 이러한 전달 과정을 '자기 공개'라고 칭했다. 누구든 여러 가지는 넣어놨을 비밀 꾸러미, 혹 거창하게 비밀이라고 부르기엔 머쓱하더라도 감춰놓았던 사소한 속내나 개인적인 취향이나 사연 같은 것들을 상대방에게 털어놓는 일을 자기 공개라고 하는데, 이를 통해 상대방과의 관계가 더욱 깊어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누군가 나에게 자신을 공개해준다면 친밀감이 형성되기 마련인데, 그만큼 상대가 나를 친근하고 각별하게 여겨준다고 생각하게 되어서다. 그럼 나 또한 마음의 문을 열고 자기 공개를 함으로써 더욱 돈독한 사이로 발전하게 된다는, 참 이상적인 이야기다. 하지만 현실은 그다지 이론적이며 녹록지는 못했다. 이 짧은 배움이 완전한 진리라고 착각했던 때도 있었지만, 매사에 꼭 들어맞는 이론이란 사실 존재하지 않았던 것 같다. 우리의 현실은 너무 많은 변수들로 촘촘히 구성돼 있어서 지나치게 가변적이고 유동적이다. 나는 그러한 격동을 견뎌내기가 조금 버거웠다. 내가 나를 공개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거나, 나의 너무 잦거나 깊은 공개에 넌더리가 나거나, 혹은 내가 원하는 만큼의 반응이 돌아오지 않는다고 해서 혼자 실망하거나... 등의 다양한 변수들로 인해 '더욱 끈끈하고 돈독해진 사이'로 마무리된 경우는 잘 없었다.  그것은 아무래도 선 때문이 아니었나, 지금에서야 생각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반드시 선이 있다. 모든 사람의 바깥에는 자기만의 선이 있다. 단지  간격과 선명함의 차이만이 있을 뿐이다. 그것은 공평한 듯하면서도, 알고 보면 상대적이다. 누구에게는 나와  선의 간격이 유독 늘어나서 조금만 다가와도 침범이면서도, 누군가에게는 제법 좁아져서 한참을 걸어와도 넘기진 않는다. 간격은 주로 친밀도든 상황이든 다양한 요인에 의해 형성되고 변화하지만, 선명도를 바꿀  있는 방법은 오로지 사랑이다. 사랑할수록 선은 희미해진다. 사랑하는 만큼 선은 흐릿하고 투명해져서, 때로는 아예 허물어졌다는 달콤한 착각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사라진 것은 아니다. 보이지 않음에도 존재하는 것들은  세계에 널려있다. 사랑이 동이 날수록, 뒤늦게 선은 형체를 드러낸다. 봐봐, 너는 이만큼이나 넘은 거야. 네가 이렇게나 넘었잖아.  수가 없거나 보이지가 않아 한참을 이탈한 선은 화살이 되고,  화살은 서로에게로, 혹은 자신에게로 추락한다. 아낌없이 내어준 만큼 버려졌을  돌아오는 것은 대개 슬픔과 아픔이다. 선을 넘기지 않았더라면, 넘게 하지 않았더라면, 조금은 달라질  있었을까. 그런 후회도 하며, 다시  바깥으로 걸어가거나 밀어내거나 튕겨나가고야 만다. 누구보다 가까워진, 누구에게 보다 짙어진 상대의 선을 덩그러니 바라볼 때는 이미 너무 늦은 후다.

  그렇지만 같은 원 안에 꼭 붙어 한평생 머무르고 싶은 것이 사랑인데, 어찌할 도리가 있었을까.     



  벌써부터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던 것은 아닌데, 잠시 감성에 젖었나 보다. 사랑은 하여간 눈치 없이 방문하는 손님 같다. 초대한 적도 없는데, 어느 틈에 주인 자리를 제멋대로 차지하고 만다.  웃기다. 방금도 자리를 내어줄 뻔했다.     

  겨우 본론으로 돌아가자면, 나를 털어놓거나 털어놓은 상대방을 받아들이는 일 또한 선의 간격에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가 있다. 하지만 전자라 해서 완전한 긍정은 아니다. 실제로도 그러했다면 성공이지만 착각이라면 실패로 돌아간다. 혹은 당시에는 성공했다 하더라도, 이는 얼마든지 다시금 착각이 될 수 있기에, 입을 열고 마음을 내어주는 순간, 저도 모르게 실패의 대기열에 서버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선을 자꾸 넘기면 쫓겨나고 말 테니까.     


  결국 나는 실패하는 일에 지치기도 했고, 그런 것과 상관없이 그냥 모든 게 다 귀찮아지기도 해서, 그렇게 실속 있는 뭔가를 얘기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설령 해냈더라도 상대의 기억에 어엿하게 남아있지는 않았겠지. 그렇지만 우리는 나름 괜찮은 시간을 보냈었다. 안주를 하나 더 주문했고, 칵테일도 몇 잔 더 시켰다. 나는 되게 멀쩡했는데, 술을 그 날 처음 먹어본다던 J는 후에 많이 어지러워했다. 지금은 J도 술을 꽤 잘 먹는다. J는 이후로 술의 미학에 눈을 떴다.        

  그렇게 우리는 마지막이 될 다음 만남에는 아주 맛있는 음식과 술을 잔뜩 먹고 마시며 더욱 많은 얘기를 나누기로 약속하고는 헤어졌다. 나도 그때만큼은 죽기 바로 전이니만큼 모든 이야기를 하게 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하지만 그중에 어떤 것도 이뤄내지 못했다. 이상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날 먹은 것들. 로제는 맛있었으나 감바스 면은 고무줄을 삶아 만든 것 같았다.




  나는 여태껏 다 아는 척 떠들어대고 있지만 실은 아무것도 모른다. 나는 나로밖에 살지 못해서 오로지 내 인생 하나밖에 못 보는 반 쪽짜리 장님이다. 원래는 그마저도 전혀 몰랐다. 그렇지만 이제는 다 알아버렸다. 적어도 이대로 아무것도 되지 못하고 죽으리란 것쯤은 얼추 알게 되었다.

  볼품없는 단상을 애써 그럴듯하게 포장하기 위해, 그래도 맥락이란 걸 부여하고 싶어서, 이전의 일을 끄집어내며 말도 안 되거나 그래도 말은 될 법한 헛소리를 늘어놓고 있었지만 사실은 빨리 우도에 대한 이야기나 쓰고 싶다. 뭐 여기라 해서 대단한 건 아니지만, 기막힌 일이라고는 도무지 없었지만, 그래도 자랑하고 싶은 풍경이 참 많다. 고작 풍경만으로는 살아갈 수도 없는데, 그래서 자랑이라도 하고 싶은 걸까.

    

  원래는 이 '육지에서'를 격식 있게 한 4편까지는 연재한 뒤에 본격적으로 우도에서의 나날을 기록하려 했지만, 워낙 제멋대로라 과연 지켜낼지는 모르겠다. 순서 없이 뒤죽박죽 진행될지도 모르고, 쓰다가 다 포기하고 떠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어쨌거나 나는 지금 불 켜진데 한 곳 없는 이 적적한 섬에서, 범죄자의 노래나 들으면서, 연두색 캔맥주와 샛노란 과자를 함께 씹으며 이번 글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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