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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래오 May 20. 2020

두 국적의 부부

우리가 결혼하기 까지.

나의 아내는 5개의 언어를 능숙하게 구사한다.

아내를 처음 만날 때 그녀의 능력이 자연스레 나에게도 스며들 것이라 생각했다. 아마도 확신에 가까웠다. 대부분 국제결혼을 한 사람들이 서로의 언어 정도는 충분히 구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약 3년이 지난 지금! 아내는 부산 사투리를 구사하며 화장품 샵에서 포인트를 쌓으며 회사 상사를 욕할 정도로 나의 한국어 능력을 빼앗아갔다. 물론 내 한국어 능력이 줄어든 것은 아니었지만 왠지 모르게 억울했다.


재능이 있는 자와 없는 자의 차이라고 하고 싶다.

게으른 자와 게으르지 않은 자로 구분하면 너무 자존심이 상할 것 같아서이다.


 나는 카자흐스탄 총영사관에서 요리사로 일을 할 기회가 생겨 떠나기 전 정착을 도와줄 친구를 찾게 되었다. 그렇게 처음 대화를 하게 된 사람이 지금의 아내이다.


한국어를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아 책에서나 볼 수 있는 문법이나 띄어쓰기를 딱딱 지키며 하는 아내의 메시지 덕분에 나도 오랜만에 띄어쓰기에 와 맞춤법에 신경 쓰며 메시지를 했다. 외국인에게 올바른 한글을 가르쳐야 한다는 의무감이 갑자기 생겼다.


카자흐스탄으로 가기 2주 전부터 많은 메시지로 대화를 했고, 카자흐스탄에 처음 만난 우리는 어색함 따위는 버리고 메시지에 이어서 많은 대화를 했고 코드가 맞다는 것을 느꼈다. 나중에 안 사실이었지만 카자흐스탄 사람들 자체가 그냥 말이 많은 편이었다.

 

나는 단순히 대화코드가 잘 맞는 사람인 줄만 알았지만.... 어쨌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한국어에 능숙한 아내 덕분에 러시아어를 쓰는 나라에서 아주 편하게 정착할 수 있었다. 아내는 나에게 각종 통역서비스를 제공해주고 나는 요리사로서 음식을 만들어주고 이곳저곳 여행을 함께 다녔다. 1년 넘게 향수병 없이 잘 지낼 수 있었던 건 순전히 아내 덕분이었다.


하지만 직장 상사의 심한 갑질과 짜증으로 인해 1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갈 결정을 했고, 구체적이진 않았지만 반드시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란 약속을 하고 우리는 잠시 동안 기약 없는 이별을 했다.


1년 동안 떨어져 지내며 오해가 생기고 답답한 마음에 싸우기도 하고 서운함을 얘기하기도 하며 헤어질뻔한 고비도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서로가 함께하지 않은 모습을 상상하니 쉽게 인연을 끊을 수 없었다.


그 당시에는 우리가 함께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이 막힌 것 같아 너무나도 답답했지만 결국에는 방법을 찾아냈다.


어려운 결정이었지만 우리는 서로에 대한 확실한 마음을 확인하고 결혼이라는 제도로 떨어져 있던 둘의 마음과 몸을 다시 동여맸다.


비록 꼼꼼히 준비된 결혼식은 아니었지만 참아온 날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았기에 둘은 즐거웠고 행복했다. 또 언어와 문화는 다르지만 서로의 가족에게 감사함을 느끼고 편안함을 느낀다.


한국에서 아직도 안정적인 시기는 아니지만 둘이 함께 있다는 것에 만족하며 지내고 있다. 다만 나의 한국어가 아내에게 전부 스며들고 나면 아내의 능력이 나에게 스며들기만을 기다리며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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