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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래오 Aug 07. 2021

성냥팔이왕 소녀

마케팅기법

 아직 앳돼 보이는 소녀는 논밭을 뛰어다니며 야무지게 일손을 거들고 있었다. 태어날 때부터 부모를 여읜 소녀는 시골에서 할머니의 손에 자랐다. 건강이 좋지 않았던 할머니를 대신해 소녀는 거짓말을 조금 보태 걸음마를 뗐을 때부터 용돈벌이를 하며 살아왔다. 고등학생 되었을 때쯤엔 온 동네의 일이란 일은 전부 소녀의 손을 거칠 정도였다. 남들이 보기엔 안타까울지 모르겠지만 수입도 나쁘지 않았고, 많은 사람들과 친해질 수 있어서 소녀는 자신의 인생이 비관적이라 생각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시골에서만 살 수는 없었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는 도시로 나가야 했다. 처음부터 대학을 갈 생각은 없었기 때문에 졸업을 하고 곧바로 시골을 떠났다.


 “할머니 밥 잘 챙겨 먹고, 자주 연락할 테니 전화기 항상 가지고 다녀.”


소녀는 평생을 함께 지낸 할머니와 잠시 이별을 하고 큰 도시로 향했다. 하지만 대학도 나오지 않고, 시골에서 온 소녀가 도시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편의점, 식당 서빙 등 수많은 아르바이트를 해봤지만 노동강도에 비해 월급이 적었다.

 

 ‘정해진 시급이 아니라 내가 노력한 만큼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


소녀는 누구보다 열심히 할 자신이 있었고, 노력한 만큼의 보상을 받고 싶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누구보다 많은 돈을 벌 자신이 있었다. 하루 종일 일을 할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하던 일을 그만두고 여러 가지 물건을 파는 영업직을 선택했다. 처음에는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게 창피하고 힘이 들었지만 자신이 부지런하면 할수록 물건이 더 많이 팔리는 것을 보니 재미도 있고, 욕심도 나기 시작했다. 신발 깔창, 보호대, 안마기 등 팔 수 있는 물건은 모조리 가져다 팔았고, 잠도 줄여가며 일을 한 소녀의 수입은 아르바이트를 할 때보다 훨씬 많아졌다. 그렇게 회사 내에서 판매왕이 된 소녀는 전국 판매왕 대회에 회사 대표로 나가 달라는 제안을 받게 되었다. 전국 판매왕 대회는 말 그대로 전국에서 모인 판매왕들이 팔기 까다로운 물건을 무작위로 골라 주어진 시간 내에 누가 가장 많이 파는지 겨루는 대회였다.


 “무작위로 고른 물건을 오늘 하루 동안 가장 많이 판매하는 사람이 판매왕입니다. 참가자들은 물건을 골라주세요!”


 소녀도 상자 하나를 골랐고, 그 안에는 성냥이 들어있었다. 어린 소녀는 성냥이라는 물건을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로 본 것이 오늘이 처음 일정도로 요즘은 사용하지 않는 물건이었다. 역시나 성냥을 대하는 사람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500원짜리 라이터를 사도 몇 달이나 쓸 수 있는데 불편하고, 쓰기도 어려운 성냥을 살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렇게 주어진 시간이 계속 흐르고, 소녀는 부지런히 돌아다녔지만 단 한 개의 성냥도 팔지 못하고 있었다.


 “할머니.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소녀는 답답한 마음에 가진 성냥 중 하나에 불을 붙이고 시골에 계신 할머니를 떠올렸다.


 “어? 이 냄새는 내가 아는 냄새인데?”


 소녀가 성냥을 직접 써보진 않았지만 소녀가 살던 시골에선 여전히 흔하게 쓰이고 있었다. 옆집 할아버지가 소여물을 끓이기 위해 올려둔 가마솥 아래에서, 또 한 겨울 방을 데우기 위해 연탄을 태우던 강 건너 할머니의 집에서, 그리고 심심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성냥개비를 마룻바닥에 차곡차곡 쌓아 올리던 뒷집 할머니 집의 손자까지. 소녀는 몰랐지만 이미 성냥은 가까이 있었다. 성냥이 타는 냄새를 맡으니 시골에서의 모든 기억이 새록새록 나기 시작했다.


 “아! 나는 성냥을 팔게 아니라 다른 걸 팔아야겠구나.”


 소녀는 성냥을 많이 팔 수 있는 방법을 떠올렸다. 사용하기도 어렵고, 라이터에 비해 비효율적인 성냥은 이제 거의 필요 없는 물건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성냥을 사용했던 어른들의 어릴 적 기억이나 추억을 성냥에 담아 판다면 충분히 팔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어릴 적 기억과 고향의 추억을 팝니다. 비 온 다음날 연탄에 불을 붙이기 위해 성냥을 몇 개나 부러뜨려 보셨나요? 저와 성냥 쌓기 대결에서 이기면 성냥 두 갑을 무료로 드립니다. 대신 지면 한 갑을 구매하셔야 합니다.”


 소녀는 시골에서 보고 들었던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이야기들을 전부 꺼내 성냥에 담았다. 한참 어린 소녀가 자신들의 어릴 적 기억을 꺼내 주니 어른들은 신기한 듯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고, 비싸지 않은 소녀의 성냥은 금세 동이 났다. 그렇게 전국 판매왕 대회에서도 1등을 한 소녀는 이제 대학교에서 마케팅을 가르치는 교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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