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과의 화해 _ 그림자를 마주하는 연습

시간의 풍화, 그리고 회복의 여정

by 유별희

내 인생의 연대표에는 몇 개의 굵은 선이 그어져 있다. 그 사건을 기점으로 이전과 이후가 나뉘는, 일종의 분기점들이다. 평온한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던 그것들은 예고 없이 부상한다. 낯선 불청객처럼 의식의 문을 두드리고, 나는 속수무책으로 그 순간과 대면해야만 한다.

감각은 정직해서, 원치 않는 장면 앞에선 눈을 가리고, 듣기 싫은 소음엔 귀를 막는 신체 반응처럼, 나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과거의 특정 좌표를 소환한다. 그 데이터는 온몸의 세포에, 뼛속에 하나의 각인처럼 새겨져 고통의 시발점으로 나를 데려다 놓는다. 육체가 과거의 시간을 기억한다는 현상, 참으로 무서운 메커니즘이다.

이것은 잊으려는 노력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감각이 기억한다는 건, 그 모든 데이터가 이미 나의 일부가 되었음을 시인하는 행위다. 씻을 수 없는 기록, 지울 수 없는 얼룩으로 남는다는 의미다. 내면의 이 혹을 제거하려면 그만큼의 출혈이 동반된다. 떼어내려 발버둥 칠수록 상처만 깊어질 뿐이다.


내면에 둥지를 튼 그 그림자는 어느새 괴물로 자라나 있었다. 그 실체를 마주하는 것에 대한 혐오, 지우려는 시도에서 오는 무력감은 나를 벼랑 끝으로 내몰아 또 다른 형상의 괴물을 탄생시켰다. 그 자아의 이름은 피해의식이다.


처음엔 사건 그 자체를 원망했다. 다음엔 그 기억을 떠올리게 만든 상황에 분노했다. 감정의 파동은 점점 커져 내 주위의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이 파괴적인 감정의 소용돌이 끝에, 분노의 화살이 타인이 아닌 나를 향하는 순간, 자기혐오라는 나락으로 직행하는 악순환이 시작된다.


이 고리를 끊어내야 했다. 한때는 이것이 내 책임이 아니라고 스스로를 강변했고, 세상 누구나 품고 사는 이야기라며 특별할 것 없다고 애써 외면했다. 사건의 원인이 된 상대를 향한 증오로 매일을 지새우기도 했다. 그런 행위들은 일시적인 안정감을 주었지만, 내면의 그림자를 완벽히 차단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다른 방식을 택하기로 했다. 이물질을 억지로 제거하려는 시도를 멈추기로. 강제적인 노력은 그 기억을 더욱 선명하게 재생시켜 내 살을 뜯어내는 결과만 낳기 때문이다.


이제는 그 기억이 떠오르면 떠오르는 대로, 막아서지 않고 그저 지나가도록 길을 터준다. 관조하는 것이다. 내가 더는 그 과거에 얽매이지 않을 때, 그 그림자 역시 나를 찾는 일을 멈출 것이다. 이것이 내가 찾아낸 유일한 제거 방식이다.


물론 이 모든 여정이 독단적으로 해결될 수는 없다. 소중한 누군가와 시간을 공유하는 행위,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위로가 된다. 과거의 나는 내 고통을 내세워 상대에게 노골적인 이해와 기대를 강요했다.


하지만 타인이 나를 온전히 이해하길 바라는 건 나의 욕심일 뿐이다. 상대는 그저 최선을 다했다. 나의 아픔과 동일한 크기로 아파하지 않았다며 서운해하는 감정그것 역시 피해의식의 또 다른 발현이다.


결국은 시간이 이 모든 것을 풍화시킬 것이다. 시간은 흐르기 마련이니까. 지금은 그저 소용돌이가 지나간 자리에 햇살이 들기를 기다리는 연습이 필요할 뿐이다. 느리지만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렇게 걷다 보면, 언젠가는 편안한 마음으로 지나온 길을 돌아볼 날이 올 것이다. 반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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