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에 에세이를 쓰기 시작했을 때 처음엔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날마다 써도
머릿속에는 쓸 말이 남아돌았다.
그렇지만 나만의 룰을 정하고 싶어 졌고
일주일에 세 번 월, 수, 금 글을 쓰기로 했다.
그리고 수요일은 시리즈로 쓰고 싶어졌다.
일주일에 한 번 수요일마다
'사라지는 것들의 품격'이라는 큰 제목을 짓고 12개의 챕터로 나누어 써왔다.
나름대로의 룰을 정해놓으니
글을 쉬는 요일은 심심해졌다.
그래서 글들을 미리 써서 잊어버리기 전에
저장해 놓았고 야금야금 꺼내 예약을 했다.
그렇게 예약한 글들이 제법 쌓였고, 예약 글을 제외하니 저장해 놓은 글들은 금세 바닥이 났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머리를 짜내고 고민하며 글을 쓴 적은 없었는데, 시인이나 소설가, 글을 쓰는 다른 작가님들의 작품은 어떻게 탄생할까 문득 궁금해졌다. 지금까지의 내 글쓰기가 내 안에 고여 있던 것들을 쏟아내는 '분출'의 과정이었다면,
이제부터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무언가를 길어 올려야 하는
진짜 '창작'의 영역에 들어선 것일까?
그분들의 뒷모습이 궁금하다.
시인들은 단어 하나를 건져 올리기 위해
얼마나 깊은 고요 속을 헤매었을까.
소설가들은 텅 빈 공간 앞에서
얼마나 지독하게 자신과 싸웠을까.
쥐어짜지 않아도 흘러나왔던 나의 운 좋은 문장들과 달리, 누군가의 문장은
뼈를 깎는 고통의 산물이었을 것이다.
든든했던 글 저장고가 텅 빈 지금,
나는 비로소 그 기분 좋은 고통의 길목에
서 있음을 느낀다.
어쩌면 이 막막함은 '쓰는 사람'으로 거듭나기 위한 일종의 성장통일 것이라 생각한다.
너무 거창한 생각일까?
책상 앞에 앉아 머리를 짜내는 대신,
일상의 아주 작은 틈새를 유심히 들여다보려 한다.
이제 내 시선은 이전보다 더 낮고
세밀해졌으면 한다.
비워진 서랍은 위기가 아니라, 새로운 이야기를 채우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텅 빈 캔버스'다.
예약된 글들이 모두 세상 밖으로 나갈 즈음,
내 서랍엔 이전보다 조금 더 깊은 고민의 흔적이 묻은 문장들이 채워져 있기를 바라본다.
설령 그것이 짧디 짧은
단 한 줄의 문장일지라도 말이다.
내일은 어떤 문장이 나를 찾아올까.
비워진 서랍 속에 새 종이 한 장을
가만히 펼쳐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