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저녁부터 목이 칼칼했다.
목감기에 몸살까지 올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생전 처음으로 미리 약을 샀다.
감기 초기에 미리 약을 먹기는 처음이다.
약봉지를 뜯으며 효능을 읽어본다.
기침, 가래, 인후통, 오한, 발열.
난 인후통만 있을 뿐이지만 일단 먹어보자.
약을 보니 문득 아주 오래전 일이 떠올랐다.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이었을 때,
우리 집 뒷마당에서 흑염소를 키웠다.
어느 날 새끼 염소 한 마리가 콧물을 흘리고 재채기를 하는 게 아닌가.
감기에 걸린 게 분명했다.
안쓰러운 마음에 집에 있던 "감기조심하세요"를 얼른 가져다 먹이기로 했다.
먹이그릇에 쏟아주었더니 새끼 염소는 냄새만 맡고 고개를 돌렸다. 그래서 한 병은 먹이지도 못하고 버렸다. 이러면 안 낫는데. 나는 또 한병의 물약을 가져와 새끼 염소의 입을 억지로 벌리고 다 먹였다.
그리고 감기약 병을 잘 보이는 곳에 자랑스럽게 놓아두었다. 내일이면 새끼 염소가 엄마를 따라 팔팔하게 뛰어다니겠지.
다음 날 아침, 일찌감치 뒷마당으로 나갔다.
새끼 염소가 보이지 않았다.
'이거 먹였냐?'
아빠는 감기약 두 병을 들고 계셨다.
그리고 염소가 죽었다고 하셨다.
자랑스럽게 놓아둔 약병은 증거가 되었고, 엄마에게 등짝을 얼마나 맞았는지.
칭찬받을 줄 알았던 어린 내 마음은 그렇게 산산조각이 났다.
약을 입에 털어 넣고 물을 마신다.
좋은 마음도 때로는 해가 될 수 있다는 걸,
그날 처음 배웠던 것 같다.
지금도 가끔 그 새끼 염소가 생각난다
약 먹고 뜨끈하게 누워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