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롭지 않은 나의 고독, 선택적 사회성

by 이작가야


얼마 전 유튜브에서 우연히 '고독을 즐기는 사람이 반드시 내성적이지는 않다'라는 내용의 영상을 보게 되었다. 그 순간, 화면 속 이야기가 마치

내 삶을 훔쳐다 만든 것처럼 느껴져 소름이 돋았다.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긴다고 해서, 반드시 '내향적'이거나 '외로움을 타는' 것은 아니다. 나처럼 말이다. 전문가도 심리학자도 아닌 평범한 나에게, 그 영상에서 언급된 '선택적 개방성' 혹은 '선택적 사회화'라는 개념은 내 삶을 설명해 주는 가장 정확한 언어였다.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이 늘 부족하다. 주변에서 "집에서 혼자 있으면 심심하지 않아?"라고 물을 때마다 고개를 젓는다. 심심할 틈이 없다. 내게 혼자 있는 시간은 소파에 멍하니 앉아

흘려보내는 시간이 아니라,
내가 선택한 일들로 가득 채워진 생산적인 시간이기 때문이다.



오늘은 몰두하고 있는 새로운 분야를 공부하고, 마음이 복잡할 땐 따뜻한 실로 뜨개질을 하며 손끝에만 집중한다. 가끔은 기타를 안고 좋아하는 노래를 연주하기도 한다. 바람 냄새가 그리우면 혼자 드라이브를 즐기고,
여행을 하다 노랫말이 떠오르면 가사도 짓는다.
어떤 날은 카페에 앉아 따스한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여유를 갖기도 한다.

바깥세상에서 오는 소음이나 자극 없이,

오로지 내 안의 리듬에 맞춰 이 모든 것을

해낼 수 있다.



내게 고독(Solitude)은

외로움(Loneliness)과는 전혀 다른 즐거움이다. 외로움이 단절에서 오는 결핍이라면,

내가 누리는 고독은 나 자신과의 충만한 연결이다.
바쁜 하루를 보내고 나면, 내 안의 에너지가 가득 채워지는 것을 느낀다. 이 에너지는 내가 외부 세상에 나설 힘을 준다.



내 삶의 태도를 가장 잘 설명하는 단어가 바로 '선택적 사회성'이다. 나는 사람 만나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다. 오히려 깊은 대화와 교류를 즐긴다. 다만, '누구와', '언제', '얼마나 깊이' 교류할 것인지는 내가 결정한다.
불필요한 관계는 덜어낸다. 형식적이고 의무적인 만남, 나를 소모시키는 관계에는

굳이 에너지를 쏟지 않는다. 대신 진정으로 아끼고 마음이 통하는 소수의 사람들에게는 시간과 마음을 아낌없이 투자한다.
이러한 선택 덕분에 나는 감정의 통제권을 외부에 맡기지 않는다. 내향적인 사람이 에너지 방전을 우려해 관계를 피할 때,
나는 내향적인 사람만큼의 깊이를, 외향적인 사람만큼의 능동적인 힘으로 추구한다.


내가 집에서 충분히 충전하고 나갔을 때,

사람들은 나를 밝고 사교적인 사람으로 본다. 하지만 사실 그 에너지는 내가 평소

홀로 뜨개질을 하며, 기타를 치며,

공부하며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다.
나의 '선택적 사회성'은 결국

내 삶의 주도권을 내가 쥐고 있다는 증거다.

어쩌면 주변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내 생각이 다 옳은 것도 아닐 테고,

이상하게 보일 수도, 독특하다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남들이 정해놓은 기준이나 사회적 기대에 휩쓸리지 않는다.
내 마음이 가는 대로, 내 에너지가 허락하는 만큼만 세상과 소통한다.

혼자 있는 시간이 즐겁기에,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도 더 소중하고 의미 있게 다가온다.

스스로 선택한 고독으로 내면을 채우고,

그 힘으로 세상과 연결되는 삶. 이 균형이야말로 내가 쟁취한 가장 값진 자유다.

당신의 고독은 외로움인가, 아니면 충전된 선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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