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하필 애플인가?
나는 1년 동안 애플 제품을 사는데 1천만 원을 썼다. 내가 연봉이 6천만 원 이상일만큼 많은 돈을 번다면, 그렇게 쓸 수도 있겠지만, 아쉽게도 고액 연봉자는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왜 천만 원이나 되는 돈을 지불했을까?
예전에 쓴 글인 애플에 빠지게 된 이야기에서만 해도, 700만 원의 돈을 쓴 상황이었지만, 어느새 1천만 원이 넘게 돈을 지불한 거 보고 그 이유를 궁금해할지도 몰라서 이 글에서 상황을 밝히고자 한다. 내가 아이맥을 사서 300만 원이 늘어난 걸까? 아니다. 사실 나는 M1 Max 16인치 맥북프로를 사버렸다. 사실 아이패드를 2개 샀을 때부터, 나의 소비를 합리화할 수 있는 이유가 사라졌다는 걸 감지했다. 그래도 아이패드 에어는 휴대용으로 쓸 수 있을 크기였고 셀룰러 모델을 써서 합리화할 이유가 있었지만(하지만, 이직하고 나서 기존에 쓰던 아이패드 에어를 처분해버렸다. 아이패드 프로를 쓰고 아이패드 에어를 쓰니 역체 감이 상당했다), M1 Max 16인치 맥북프로는 완벽히 과소비의 영역이었다. 소형 샤넬백 1개 정도의 금액을 맥북에 투자한 셈이다.
어떻게 보면 나는 1년 동안 애플이라는 명품 브랜드를 사는데 1천만 원을 쓴 셈이다(미쳤지 정말...). 예전에는 명품에 빠지는 게 사치라고 생각했다. 합리적이지 못한 이유로 소비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소비를 해보니, 합리적인 이유도 있지만, 대다수가 합리적이지 못한 이유라는 걸 느끼게 되었다. 이번 글에서는 내가 어떤 감정을 느껴서 이렇게 많은 돈을 사용한 건지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먼저 내가 왜 애플 제품에만 열광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내 직업을 이야기해야 할 듯한데, 현재 나는 회사에서 영상 디자이너로서 일하고 있다. 영상과 디자인 업계에서 일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많은 사람이 맥을 쓴다. 이유는 여러 가지인데, 영상 직무의 경우 맥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파이널 컷과 특유의 안정성 때문에 맥을 고른다. 디자이너는 맥북과 아이맥이 가진 디스플레이가 실제 색상과 유사하게 나오기 때문에, 맥이 가성비 있는 선택으로 느껴진다. 실제 디자인 업무를 해보면 알 텐데, 모니터에서의 색상과 실제 인쇄 품질의 색상이 차이 날 수밖에 없다. 이는 모니터의 RGB 색상과 인쇄 품질인 CMYK색상의 영역이 달라서 생기는 이유다.
영상과 디자인을 하는 사람들 대다수는 이런 이유 때문에 맥을 선호한다. 하지만, 잘 알다시피 애플의 사악한 가격 정책을 보면, 구매를 할 맘이 싹 사라진다. 업그레이드를 하면 맥북 하나에 400만 원 이상하는 가격이 일상다반사이니, 성능대 스펙으로만 본다면, 애플 제품을 구매하는 건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이렇게 애플 제품이 비싼 이유는 애플 제품 자체가 소비재로써의 가치가 아니라, 자본재적 성격을 띠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용호수라는 유튜브가 잘 정리한 게 있어, 아래 링크를 남긴다.
https://www.youtube.com/watch?v=MMlPH8gTXs0
업계 특성상 맥을 선호하기에, 애플 제품을 한 번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늘 있었다. 하지만 비싼 가격이 첫 번째 걸림돌이었고, 두 번째로 20년 넘게 윈도를 쓰고, 8년 넘게 안드로이드 폰을 사용한 입장에서 맥과 ios운영체제는 미지의 도전이었다. 특히나 우리나라 특유의 Active X 정책 때문에 공공기관 사이트 이용 시 맥에서 지원이 안 되는 경우가 있어, 메인 컴퓨터를 맥으로 하는 게 고민되는 선택이었다. 물론 지금은 공동 인증서를 사용해서 맥으로 공공기관을 사이트를 이용하는 게 많이 해결되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맥은 한국 사회에서 사용하기에 태생적인 한계가 있다.
이런 내가 맥을 구매하게 된 건 정말 애플이 내놓은 회심의 프로세서 때문이다. 바로 M1. 이 프로세서의 성능은 가히 혁명적이라고 할 수 있다. M1맥북에어의 경우 정가는 129만 원인데, 실질적인 프로세서의 성능은 300만 원짜리 인텔 맥북프로와 비빌 정도다. 그리고 동 가격의 윈도 노트북과 비교해 모니터, 스피커, 트랙패드, 프로세서, 영상편집, 전성비를 모두 종합적으로 비교했을 때 우위에 있는 스펙을 보여줬다. 또 1.3kg의 무게 자체는 휴대용 노트북으로 사용하기에도 나쁘지 않았다. 아쉬운 건 모니터 크기뿐이었지만, 전에도 10인치 윈도 태블릿을 주로 썼고, 책을 쓸 때 오로지 그 태블릿으로 모든 원고를 작성한 적도 있기 때문에, 크기는 나한테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물론 내가 처음 구매할 당시 M1맥북에어가 모두 품절이라, 바로 받을 수 있는 M1 13인치 맥북프로를 사용했다. 그 제품은 100g 무거운 것, 팬이 달린 것, 터치 바가 달린 게 차이다. 처음 맥을 쓸 때는 os차이 때문에 많은 불편을 겪었다. 하지만, os는 쓰다 보니 익숙해졌고 이제는 커맨드와 컨트롤 키의 차이에 익숙해질 정도가 되었다. M1 13인치 맥북프로를 쓰면서 느꼈던 건데, 이 가격에 이 정도 완성도의 마감과 세련된 디자인이 혁신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전부터 많은 윈도 노트북과 데스크톱을 사용했다. 그리고 전 회사에서는 15인치 LG 그램을 지급해줘서 메인 컴퓨터로 사용해봤다. 무게와 모니터 크기는 LG 그램의 승리지만, 전체적인 성능이 딸렸고(프리미어로 풀 HD 영상 편집을 하는 것도 버거워했다) 플라스틱으로 마감된 LG 그램과 알루미늄으로 마감된 맥북의 심미적인 만족도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맥 os에서 제공하는 기본적인 애니메이션도 부드러웠고 하드웨어/소프트웨어적인 사용자 경험 모두 최고였다. 또, 팬이 거의 돌아가지 않는 것도 만족스러웠는데, LG 그램의 경우 영상 편집이 아니라, 일반적인 엑셀 작업 중에도 팬이 돌아갈 정도였다. 다른 윈도 노트북도 마찬가지였는데, 예민한 성격인 나는 팬이 돌아갈 때마다 신경이 거슬렸다. 물론 그 당시에는 팬이 돌아가는 게 당연한 거라고 생각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지만, M1 맥북을 한 번 써보고 나서 윈도 노트북을 써보니 역체 감이 심해 오래 쓰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부터 애플에 빠지게 되었고, 광신도가 되었다.
베블런 효과라고 아는가? 유한계급론의 저자 소스타인 베블런이 책에서 이야기한 내용인데, 상류층의 소비습관을 대중이 따라 하면서, 상류층이 된 것 같은 느낌을 받고 싶은 현상을 말한다. 돈이 별로 없는 사회초년생 시절에 1년 동안 1천만 원을 애플 제품에 쓴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애플 제품은 전문가의 제품임과 동시에, 비싼 가격 때문에 돈 많은 사람이 구매하는 제품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아마 내가 애플 제품을 사면서, 사람들에게 내가 전문가이고, 돈 많은 사람이라는 인식을 무의식적으로나마 주고 싶지는 않았을까?
이 감정을 허영이라고 치부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명품을 구매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2030의 명품 구매가 큰 폭으로 늘어났다. 이를 해석하기 위해 언론에서는 명품의 진입장벽이 무너지거나 재테크 수단으로 구매한다는 여러 가지 분석을 내놓았다.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큰 이유는 상류층이 되기 힘든 현실에서 명품을 구매하는 것이 가장 쉽게 나를 상류층인 것처럼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것이기 때문에 명품을 사는 게 아닐까 싶다.
내가 애플 제품을 가장 많이 구매한 2021년은 영상일이 아니라 마케팅 업무를 하고 있었다. 영상을 아예 안 하고 있는 시절에 가장 많은 애플 제품을 구매한 셈이다. 그때 당시를 돌이켜볼 때, 내가 애플 제품을 사면서 자신을 합리화한 프로세스는, 이 제품을 산 가격 이상만큼 많은 영상을 만들어 지출한 돈을 메워보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막상 사고 난 뒤로 영상을 자주 만들지도 않았다. 오히려 마케팅일을 더 본격적으로 하게 되어 영상과는 거리가 멀어져 갔다. 아마 내가 점점 영상 일과 멀어져 가는 것에 대한 불안이, 애플 제품을 사는 것으로 표출된 게 아닌가 싶다. 영상 전문가로 보이고 싶은 사회초년생 아마추어의 마음이 반영되어 1년 동안 1천만 원을 애플 제품에 쓰도록 한 게 아닐까?
3. 나는 지독한 IT덕후다.
고백하나 하자면, 나는 IT와 관련된 것들을 사랑하는 진짜 IT덕후다. 어릴 때부터 노트북 정보 찾는 것만으로 하루 몇 시간을 허비해도 즐거울 만큼 IT에 대해 알아가는 게 무척이나 재밌었고 신났다. 애플의 M1을 만나고 나서는 내가 알고 있던 상식이 완전히 깨지는 경험을 했다.(나는 애플의 M1 제품을 쓰고 나서부터, 애플 주식을 사야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현재 난 애플 제품을 사랑하는 고객인 동시에 주주다)
그 뒤로 애플 제품을 하나 둘 사게 되었고, 하나하나가 주는 사용자 경험과 성능에서 만족스러웠고, 계속해서 애플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리고 M1이후 나오는 애플의 제품들이 컴퓨터 업계와 모바일 시장에 큰 변화를 주리라 확신한다.
나는 극도로 예민하다. 누구는 사소한 차이라고 생각될 만한 것도, 쉽게 느끼고 오래 남는다. 사회생활할 때는 내 기질을 최대한 억제하기 위해, 예민함이 심해질 때 걸어 다니고, 명상을 했다. 하지만 제품을 사용할 때만큼은 이 예민함이 계속해서 나를 건드린다. 애플 제품 같은 경우에는 모든 걸 완벽하게 만들지 않는다. 하나하나의 제품은 각자 포지션의 프로라인에서는 완벽한 경험을 제공하지만, 하위 제품으로 갈수록 급 나누기를 통해 부족한 부분을 남겨 놓는다. 처음 상위 제품을 쓰다 하위 제품을 써보면, 역체 감으로 인해 만족도가 떨어진다. 그래서 계속 상위 제품을 살 수밖에 없게 만든다.
특히 각자의 제품군이 할 수 있는 급을 명확히 나누는데, 아이패드는 스마트폰과 노트북의 중간 정도라 많이들 애매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애플은 태블릿의 포지션을 단순히 큰 화면으로 스마트폰을 쓰고 싶은 사람의 포지션으로 정하지 않았다. 대표적인 예로 아이패드 전용 앱과 아이패드 os가 따라 나뉘어 있는 점이다. 안드로이드 태블릿 같은 경우는 독자적인 안드로이드 태블릿 os가 없지만, 애플은 아이패드 os를 개발할 만큼 태블릿 PC에 진심이다. 또한, 애플 펜슬을 통해 터치 이상의 체험을 선사 준다. 이 때문에 그림 그리는 사람들은 아이패드 프로를 많이들 사며 수익을 창출한다.
하지만, 중간지점에 있는 태블릿 PC과 스마트폰, 노트북을 완전히 대처하지 못하게 os를 제한해 놨다. 때문에, 태블릿으로서의 기능 이상의 것을 원한다면 자연스레 아이폰 또는 맥북을 사게 만들어놨다. 맥북 역시 마찬가지다. 맥북에어와 맥북프로의 급이 명확히 나뉘어있다. 이번에 나온 M1 Pro, M1 Max 맥북프로는 명확히 프로를 위한 맥북이다. 프로한테 필요한 모든 하드웨어 폼펙터를 제공함과 동시에, 디자인도 바꾸어, 최적의 성능을 누릴 수 있게 설계되었다.
반면 맥북에어는 명확히 라이트 한 소비자층을 겨냥한 제품이다. 가격도 맥북치고 저렴한 129만 원에 측정해(물론 성능 업그레이드하면 비싸지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애플을 사용하지 않은 유저들이 애플 생태계에 들어올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내가 그 희생양이다). 또, 애플 생태계에 있는 사람이 휴대용으로도 쓰기 좋게 만들어, 맥북이 있음에도 맥북에어를 구매하게 했다(바로 내가 그 희생양이다).
이 애매한 차이가 나에게는 크리티컬 하게 작용했다. 어떤 점에서는 완벽한데, 애매하게 부족한 부분을 예민한 성격 때문에 더 크게 느꼈고, 다른 애플의 제품을 구매하게 했다. 또한, 애플은 iCloud를 통해 애플 제품의 경험을 균일하게 만들었다. 끊기지 않는 연속성 덕분에, 애플 제품이 하나둘씩 늘어날 때마다, 편리함이 배가 되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예를 들어 내가 스마트폰으로 텍스트를 복사하면 맥북에서 그대로 붙여 넣기 할 수 있다. 누군가는 이게 별거 아닌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한번 사용해보면 감탄하게 될 정도로 연동이 잘되어있다. 요즘은 삼성 역시 애플 생태계처럼 연동성을 가지게 만든다고 하는데, 기본적으로 자체 os와 칩, 하드웨어를 모두 생산하는 애플의 연동성만큼 정교하게 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이 차이를 명확히 이해하기 위해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M1칩을 통해 만들어진 애플의 맥북을 하나의 시계라고 생각해보자. 이 시계를 만드는 사람은 애플이라는 장인이다. 시계 장인은 내가 원하는 시계의 모든 작업을 본인이 담당한다. 총괄 설계자와 제작자가 본인이기에 어떻게 하면 가장 효율적이고 정교하게 만들지를 모두 계획하고 실행에 옮길 수 있다. 즉, M1맥북은 시계 장인이 직접 만든 시계이다.
반대로, 삼성은 시계를 만드는 c라는 공장의 사장이다. c공장은 다른 공장에서 찍어내는 시계의 부품들을 본인이 선택할 수 없고 해당 부품을 활용해서 공산품을 만들어야 한다. a공장에서 받는 부품과 b공장에서 받는 부품들을 조합해, 시계 제품을 만들어야 하는 셈이다. 각자의 공장에서 받는 제품들은 이미 기성품이다. 설계가 끝난 기성품이라서, 부품의 규격을 마음대로 바꿀 수 없다. 때문에, 이 구성품들이 가진 장점과 약점을 최대한 강화하고 보완하는 방식으로밖에 설계할 수 없다. 물론 공장의 능력이 좋아 잘 찍어낼 수도 있지만, 자기가 설계해서 제품을 만드는 게 아니니, 태생적인 한계가 존재한다.
이게 애플과 다른 회사의 차이다.
애플이란 회사는 나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해준 대단한 회사임과 동시에, 내 지갑을 얇게 해준 애증의 회사이다. 하지만 애플의 제품을 직접 써보면서, 마케팅적으로 차별화를 어떻게 하는지 배우게 되었다. 물론 그 결과 처음에는 합리적 소비로 포장할 수도 있을 만한 것들이 이제는 포장하기도 힘들 정도로 비합리적으로 바뀌었지만, 난 애플을 여전히 사랑한다.
사랑의 감정을 합리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을까? 아마 합리적으로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으면 대다수 사람이 로봇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어쩌면 내가 애플의 제품을 도구로 느끼지 않고 애플의 브랜드와 사용자 경험 모두를 사랑하기에, 애플 제품에 열광하고 지갑을 계속 벌리는 게 아닌가 싶다. 모든 브랜드의 목표는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한다. 사람으로 느껴져야, 좀 더 친근하고 지갑을 열 수 있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관점에서 볼 때 애플의 브랜드는 아주 성공한 셈이다. 너무나 전문가답고 가까이하고 싶은 사람의 냄새가 애플에서는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