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차 타지 생활 생존기
나는 부모님과 떨어져 산지 14년 차이며 타지 생활을 시작한 지는 올해로 11년 차이다. 올해 세는 나이로 30이지만, 거의 인생의 절반 가량을 부모님과 떨어져 지냈다. 고등학교 3년, 대학교 1년 기숙사, 군대에서 2년 단체 생활, 전역 후 23살부터 지금까지 쭉 혼자서 지냈다. 그동안 사는 지역이 2번 바뀌었다. 대학교 때문에 경상도에서 아무런 연고 없이 강원도로 올라갔고, 26살의 나이에 홀로 상경했다.
타지로 이사 온 직후에는 설렘이 넘친다. 새로운 풍경과 장소. 신선한 변화에 여기저기 들뜨고 이곳저곳을 탐험하게 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뿐, 며칠 지나면 외로움과 불안이 밀려온다. 서울에 올라온 지 일주일쯤 되었을 때, 홀로 장을 보고 돌아오는데 세상에 나 홀로 있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고향인 안동이나, 친구들이 있는 강원도에서 취업하면 될 텐데 나는 왜 혼자 서울로 올라왔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외로움이 생겨나면 그렇게 좋아하는 책도 잘 읽히지 않는다. 누군가를 만나고 싶다는 감정밖에 들지 않는다.
나이가 어릴 때는 사람을 만나기가 비교적 쉬웠다. 부모님과 같이 살 때는, 좋든 싫든 간에 다 같이 밥을 먹고, 잠을 자기 마련이다. 기숙사 생활을 할 때도 친구들이 늘 곁에 있으니, 심심하거나 외로울 일이 없었다. 자취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23살 때도 근처에 자취하는 대학 동기들이 많아서, 밥 먹고 싶을 때 불러 함께 했다. 홀로 상경할 때는 이야기가 달랐다. 아무런 지역 커뮤니티가 없으니 하루 24시간 동안 누구와도 이야기하지 않는 날이 많아졌다.
그렇게 2년이 흘렀다. 28살에 접어든 2020년, 코로나가 터지고, 우연찮게 취업을 했다. 회사란 커뮤니티가 생겼고, 반 강제적으로 하루 9시간 동안 다른 사람들과 부대끼며 어울렸다. 사람들과 엉켜 지내다 보면, 평일은 눈 깜짝할 세도 없이 흘러갔다. 문제는 주말이었다. 업무상 이야기하던 사람마저 사라진 주말은 공허함과 적막만이 감싸 돌았다. 아무런 약속이 없는 주말이 반복되면 사라진 줄 알았던, 외로움이 다시 일었다. 외로워서 소개팅도 해보고, 소모임도 나가보면서 사람들을 만나봤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하면, 괜찮아졌고, 인연이 맞닿아, 잘 된 케이스도 있었다. 그렇게 또 2년이 흘렀다.
2022년에 접어들어 30이 되었다. 어느덧 홀로 산지도 8년 차, 서울살이를 시작한 지는 5년 차에 접어들었다. 이제는 사투리도 많이 줄어들었고, 지하철 타는 것도 익숙하다. 서울이 내 고향 같고 오히려 진짜 고향인 안동에 내려가면 어색할 지경이다.
혼자서 배달시키는 것도 익숙해졌고, 주말에 약속 없으면 카페에서 내 할 일에 집중하는 것도 익숙해졌다. 서울에서 알게 된 사람끼리 독서모임을 하기도 했고, 모임을 통해 좋은 인연을 만드는 것도 익숙해졌다. 혼자 돈을 벌어, 미래를 설계하는 것에 대해서도 두려움이 줄어들었다. 재테크를 해야지 마음먹고 아침에 일어나서 책을 읽고 신문을 보는 것도 차근차근하고 있다. 모든 게 익숙해질 시기인데, 외로움은 전혀 익숙해지지 않는다.
과거에는 외로움이란 감정을 떨쳐내고 싶었다. 외로움은 죄악이고, 마음의 평안을 얻는 것만이 최선이라 생각했다. 지금은 외로움을 억지로 떨쳐내고 싶지 않다. 어떤 감정을 느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내가 외로움이란 감정을 느끼고 있다면, 내 안에 결핍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애인, 친구, 돈 등 이유는 다양할 것이다. 외로움은 결핍을 깨닫게 해주는 불편하지만 좋은 친구가 아닐까.
내가 40에 접어들고, 더 나아가 황혼기에 접어들어도, 외로움이란 감정을 떨쳐내진 못할 거 같다. 아마 그 나이쯤 느끼는 외로움은 지금 느끼는 외로움이랑은 조금 다를지도 모른다.
홀로 살면서, 외로움이랑 익숙해지기 위해 여러 방법을 써봤다. 그중 가장 좋았던 방법이 산책이다. 우울감이 자신을 덮쳐올 때, 나는 밖에 나가 만보씩 걸었다. 15분에 2,000보를 걸으니, 약 1시간 15분 정도 걷는 셈이다. 생각이 많이 쌓여있어도 산책하다 보면 하나씩 옅어진다. 생각이 옅어지다면, 뭐 때문에 고민에 빠졌는지, 있는 그대로 보게 된다. 사람은 늘 자신의 시선에 매몰되어있으니까, 사실을 있는 그대로 객관적 관점에서 보기란 어려운 일이다. 영화에 몰입하다 보면, 주인공이 해피엔딩으로 끝나기를 바라지 않은가? 모두에게 자기의 삶은 영화보다 더 몰입감 있고, 깊게 들어가는 법이다.
서울에 산지 5년이 지난 시점에서 앞으로도 몇 번 더 사는 곳이 바뀔지 모른다. 전세계약이 끝나면, 다른 곳을 찾아 떠날 테고, 돌고 돌다 보면, 경기도로 또는 해외로 갈 가능성도 생기겠지. 미래는 알 수가 없다. 그래서 불안함을 느끼지만, 변화란 언제나 불안함을 동반하는 일이니,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