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혼자 있다고 생각되는 감정이 불안과 외로움을 낳을때, 해결법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누구나 불안을 겪는다. 이유는 저마다 다양하고 각자 느끼는 감정도 다르다. 불안이 무엇일까? 나는 불안을 '이 길이 맞는지 정확하지 않음에 따라오는 작용'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홀로 태어나, 홀로 죽는다. 나의 생각을 정확히 타인에게 복사 붙여 넣기 할 수 없다. 지금 내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 이렇게 글을 쓴다고 하지만, 그 누구도 나의 생각을 100% 알 수는 없다. 왜일까? 나의 생각을 이루는 모든 전기신호를 타인에게 공유 가능한가? 불가능하다.
인생이란 모두에게 처음인 미션이다. 빌 게이츠도 자신의 인생은 처음이고, 일론 머스크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프로세스는 처음인 것에 대해 불안을 느끼도록 되어있다. 한 번도 코딩을 해보지 않은 문과생이, 갑자기 코딩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고 생각해보자. 완전 처음인 것을 해야 한다는 사실에 불안감이 커질 것이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나이가 들면서, 우리의 사회적 규범도 달라지고 행동도 달라지지만 모든 게 처음일 수밖에 없다. 30대에 느끼는 감정은 내가 30대에 접어들어서야 느낄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40대, 50대에 접어들어서도 그때 느끼는 감정은 처음일 것이다. 아울러 죽음에 이를 때는 더더욱 처음이고 불안할 것이다.
사람은 불안함을 느끼면 의지할 대상을 찾는다. 진화론적으로 자연환경에서 홀로 지내면, 수없이 많은 적들의 위협을 겪을 수밖에 없다. 생명을 위협받는 가능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개체는 다른 개체를 찾고 무리를 짓는다. 불안은 진화론적으로 볼 때 아주 당연한 감정이다.
내 개인적인 이야기로 들어가 보자. 처음 불안함을 느낀 건 고향인 경상도에서 지내다가 홀로 강원도에 있는 대학교로 갔을 때다. 처음인 대학생활, 새로운 친구, 낯선 타지 등 완전히 처음이고 새로운 경험들이 나를 힘들게 했다. 한 달쯤 지나자,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몰래 눈물을 흘린 적도 있었다. 비슷한 시기에 이성에게 관심이 생겼고, 타인과의 관계 유지에 몰입했다.
강원도에서 서울로 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홀로 상경해 주거지 구하기, 취직, 자취 등 모든 상황을 혼자서 해결했다. 서울이란 지역은 너무 낯설었고, 지하철을 타는 일상도 신기했다. 잘못 타서 길을 잃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일었다.
사회초년생 때도 불안했다. 이대로 가면 10년 뒤의 내 미래가 보이지 않았고, 이렇게 사는 게 맞나 싶은 생각이 자꾸 들었다. 30에 접어들어도 비슷했다. '20대 때는 다 그런 거다.'라고 불안을 자위했지만, 30에 접어드니 핑곗거리가 보이지 않았다. 30의 나도 새로운 경험이 있으면 낯설고 불편했다.
한 때 불안감이 심해 동물을 키우기도 했고, 이성을 갈구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은 건, 외부로부터 내 불안을 채우려고 해도,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일시적인 납땜보다는 근본적 원인을 해결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늘 똑같은 문제가 반복된다. 불안 때문에 다른 사람을 갈구해도, 그 사람이 사라지면 또 다른 사람을 찾는 게 반복될 뿐이다. 또한, 내 감정을 100% 이해하고 공유할 사람을 찾는 건 불가능하다. 모든 사람은 인생이 처음이고 자신의 감정에서 세상을 보기 때문에, 상대방을 100% 이해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가장 먼저 나 자신을 단련해 불안감을 해결하는 게 최선이다.
나는 외로움이 커질 때마다 딱 2가지를 병행했다. 3가지도 아니다. 이 2가지 만으로 나는 내 감정에서 겪는 대다수의 불안을 잠재울 수 있었다.
걷는 것이 좋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걷는 게 불안을 해소하는데도 도움된다는 사실을 아는가? 나는 불안을 느낄 때마다 늘 걸었다. 짧게는 20분, 길게는 3시간이 넘는 시간 걸었다. 걷다 보면 내 생각이 정리된다. 생각이 정리된다는 게 무슨 뜻일까? 대부분의 불안은 대체 내가 무엇을 생각하는지도 모를 만큼 수없이 많은 생각들이 머리에 들어와 느끼는 감정이다. 복잡한 생각들로부터 거리를 두게 해 주는 게 걷기다.
걷다 보면 왜 생각이 정리될까? 걷다가 고민하는 일과 집에서 고민하는 걸 비교하면, 둘 다 비슷할 텐데 왜 걷기가 더 좋다고 하는 걸까? 과학적인 관점에서 접근해보자. 우리의 몸은 유산소 운동을 하다 보면 엔돌핀이 분비된다. 엔돌핀은 스트레스를 완화시켜주는 호르몬인데, 엔돌핀이 분비되면서 내 불안을 잠재워 준다. 불안이 줄어들면 문제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된다. 마음의 평정심이 돌아오고, 이전에 하던 고민이 별게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다.
한 발 한 발 내딛으며 변해가는 풍경을 보고 있자면, 지금의 내 고민도 나아가다 보면 해결될 수 있을 거란 희망이 생긴다. 밖에서 잘 지내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내가 하는 고민이 상대적으로 작아 보이기도 한다.
철학자들은 많이 걸었다. '걷기 철학자의 생각법'이란 책을 보면, 우리가 이름만 들어도 아는 유명한 철학자들 대부분이 걷는 걸 생활화했다.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매일 정해진 시간에 산책을 해, 사람들이 그가 지나가는 것만 보고도 몇 시인지 정확히 알 수 있다는 일화가 전해질 정도다. 철학자들은 늘 자신의 고민에 빠지다가 불안에 빠지는 경우가 많았을 것이다. 그들이 취미로 걷기를 택한 건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먼저 이야기하자면, 내가 말하는 책은 소설이나 시가 아니라, 인문, 경제, 과학, 사회과학 등을 말한다(인사이트가 있는 소설, 에세이, 자기 계발 책 등도 포함이다). 왜 이렇게 기준을 정하냐면, 종이로 된 책이라도 다 똑같은 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러분이 6시간 동안 책을 읽었는데, '인터넷에서 긁어모은 댓글 모음집'이라는 책을 읽었다면, 재미는 있을지언정 인생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반면 같은 6시간을 읽어도,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나,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같은 책을 읽는다면 인생에 도움이 될 계기를 마련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책이라는 것은 너무 방대하고, 그중에서 어떤 책을 읽냐에 따라 미래가 바뀐다. 내가 1년 동안 365권을 읽었는데, 그 책이 모두 추리, 판타지 소설이라면 내가 그쪽 장르의 작가가 되는 게 아닌 이상 다른데 사용할 기회비용을 날려버린 셈이다.
내가 너무 빡빡해 보인다고 생각할 수 있고, 불안과 관련된 이야기에서 왜 갑자기 자기 계발 이야기를 하는지 의문스러울 수 있다. 내가 위에서 불안은 모두의 인생이 처음이라서 발생하는 문제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우리는 무언가를 처음 할 때 어떻게 하는가? 관련된 간접경험이나 지식을 쌓으려고 하지 않던가? 맞다. 인생이 처음이면, 인생에 대해 좀 더 알려줄 지식과 간접경험을 쌓아두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책이 필요하다.
단순히 한 분야의 책만 읽는다고 해서 간접경험을 쌓는 게 아니다. 나는 다방면의 독서를 권장하는데, 평소에 소설만 읽는다면 경제/과학/사회과학 책도 읽어보고 비문학 책만 읽는다면 문학계열 책도 어느 정도 읽어보는 게 도움이 된다. 인생이 어려운 건 늘 나의 생각 테두리 안에서 문제를 해결하려 하기 때문이다. 현재 내 지식과 지혜로는 도저히 해결되지 않으면 고통을 느끼며 불안이 생긴다. 하지만, 다방면의 독서는 현재 내 지식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풀어 줄 실마리를 제공한다.
나는 늘 불안을 달고 산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30에 접어들어 무엇을 이뤄내야 할지에 대해 불안해하고 있다. 불안을 이기기 위해 나는 늘 걷고, 책을 읽는다. 하루도 빠짐없이 걷고, 책을 읽으려고 한다. 그러다 보면 불안이 사라지고, 긍정적인 에너지가 생겨나 하루에 최선을 다하게 된다.
누군가는 내가 불안이 크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천만에, 예전의 나는 불안이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었다. 늘 불안해서 의심하게 되었다. 의심을 낳는 건 불안이고, 불안을 낳는 건 미지의 길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이 감정의 굴레를 깨우치고 나서는 안 좋은 연쇄가 반복되지 않게 하루에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나보다 더 안 좋은 일을 겪고 불안을 가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너도 할 수 있으니까 한 번 해봐'라고 이야기하는 말 한마디가 폭력일 수 있다.
내 삶의 불행도를 따져 봤을 때, 객관적으로 큰 불행은 겪어보지 않은 것 같다. 기껏해야 5번 정도 죽을뻔한 것과 은따를 당한 것. 연애를 오래 실패한 것. 그리고 망막박리와 허리디스크가 생긴 것 정도? 그렇지만, 이것 하나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과거의 일에 매몰될수록 자신의 미래가 사라진다. 과거의 일을 생각하며 아파할수록 과거에 계속 머물게 된다. 내가 과거에 매몰되어 있어도 주변 사람들은 바뀌어가고 세상은 바뀐다. 나는 평생 과거에 남아 현재와 미래를 살 수 없게 된다.
이건 나의 불안을 해결하는 방법이다. 사람마다 방법은 다를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해온 나의 방법 중 가장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해주고, 나를 발전시켜준 방법이 이 2가지다.
할지 말지는 여러분의 몫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