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봄, 피어나는 우리의 마음
해변가 모래사장에 초록색 페인트가 벗겨진 낡은 나무 의자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버려진 듯한 의자는 파도에 밀려오기라도 했는지 모래에 거꾸로 처박혀 있는 모양새였다. 아니면 누군가가 설치미술이라도 하듯 그 어떤 의도로 뒤집어 놓았는지도 모른다. 자리면은 사라져 누군가를 앉힐 수조차 없는 의자가 나는 너무도 서러워 보여 조개껍데기를 주워 쌓아 올렸다. 그 흐린 날의 기억은 남해를 생각할 때마다 제일 먼저 떠오른다.
'살아가면서 가장 아름다운 일은 누군가의 배경이 되어주는 일(안도현/배경이 되는 기쁨)'이라는 시의 한 구절처럼, 회색을 머금은 푸른 바다는 색이 바랜 모습으로 우리의 배경이 되어준다. 아직은 서늘한 5월, 함께라서 따뜻했던 그날의 해변을 나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남해 상주은모래비치는 이름처럼 고운 은빛모래로 인기 있는 해변이다. 곱지만 단단한 모래사장은 발이 푹푹 빠지지 않아 걷기에도 알맞다. 날씨 운이 없다고 말한 것이 무색할 만큼 완벽에 가까운 여행이다. 넓은 해변을 전세 낸 듯 이리저리 누비며 한가로이 노니는 우리는 들떠있다. 이렇듯 사람이 없고 조용한 주말여행이 얼마만이지 모른다. 오롯이 둘 뿐인 평화로운 이 시간이 너무 행복하다.
비가 그치자 산에 구름이 걸쳐있다. 금산 보리암으로 가는 길은 구름안개가 자욱해 더욱 몽환적이다. 신비한 분위기가 더해져 운치가 있다. 올라가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거라는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오히려 수분 가득한 풍경이 신선하게 내 시선을 붙잡는다. 다시 비가 내린다. 다랭이 마을도 오랜만에 조용히 휴식을 취한다. 빛바랜 마을은 낭만적이고, 우리는 서로의 배경이 되어 흐린 날의 기억은 더 선명하게 새겨져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