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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강가 Jul 07. 2024

42. 서울 재즈 페스티벌 2019

#2 봄, 피어나는 우리의 마음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계절의 서울 올림픽공원이다. 재즈 페스티벌을 찾아 우리는 또다시 이곳으로 왔다. 1년 전에 느꼈던, 날씨만큼 뜨거웠던 열기와 탁 트인 야외에서 만끽한 해방감 같은 것이 생각나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내 안에 쌓여있던 일상생활의 긴장감과 응축된 스트레스를 한꺼번에 분출하고 재충전할 수 있는 시간을 놓칠 수 없어 이번에도 1일권 티켓을 끊었다. 에너지 발산과 전환은 단 하루면 충분하다.





4개의 스테이지였던 작년과는 다르게 올해는 5개의 스테이지다. 선택지가 넓어진 만큼 고민도 깊어질 수밖에 없다. 우리의 선택은 최소한의 동선이었고, 야외무대(May Forest)에서 시작해 아주 뜨거운 한낮은 실내무대(SJF Theatre)로 옮겨갔다가 다시 해가 질 무렵에 야외무대(May Forest)로 나오는 방향으로 잡았다. 입장 부스가 열리고 무대가 잘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으려는 경쟁이 치열하다. 우리도 잔디밭에 자리를 펴고 앉아 공연이 시작되기를 기다린다. 맥주로 마른 목을 축이면서.





그 첫 무대는 더 퍼피니 시스터즈(The puppini sisters)다. 민트색 원피스를 입은 세 명의 여인은 이 계절과 너무 잘 어울린다. 전통적인 재즈는 물론, 소울, 알앤비, 팝 스타일을 고전적인 스타일로 재해석하는 복고풍 그룹이다. Java Jive, It's raining men, Diamonds are a girl's best friend 등 대중적인 음악이 들려온다. 늘어지는 한낮의 시간을 스윙재즈와 아름다운 화음으로 깨워 자연스럽게 흥을 이끌어낸다. 나도 모르게 점점 몸이 들썩거린다. 이미 스탠딩석으로 달려가는 사람들도 보인다.





열기를 식히기 위해 실내무대로 옮겨왔다. 바로 포크 뮤지션 김사월을 보기 위함이다. 4년 전, EBS에서 진행하는 '스페이스 공감'이라는 프로그램에서 그녀를 처음 보았다. '안아줘'라는 곡을 부르는 그녀의 목소리가 꽤 독특해서 기억에 남아 종종 그녀의 음악을 찾아 듣는데, 그런 그녀를 이곳에서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그녀는 이번 재즈 페스티벌에서 기대했던 뮤지션 중 한 명이다. 작년에 발매된 정규 앨범 <로맨스>의 수록곡들이 내 귀에 들려온다. 타이틀곡 '누군가에게'를 마지막으로 무대가 끝이 났다. 좋아하는 뮤지션을 직접 볼 수 있는 이런 행운이야말로 페스티벌의 묘미이자 당첨된 로또나 다름없다. 





이어서 송영주 쿼텟의 무대다. 드디어 제대로 재즈를 마주해 본다. 그녀의 피아노 연주를 필두로 드럼, 기타, 베이스까지 환상의 4중주가 펼쳐진다. 그녀의 편안하고도 섬세한 음악은 날이 갈수록 깊어져 한계가 없다. 그 끝없는 성장 가능성에 내 심장이 다 두근거린다. 내가 이 시간을 기다린 이유다. 스페셜 게스트인 선우정아와 함께한 곡 'One Note Samba'는 흥겨운 리듬으로 내 기분을 한층 더 고조시킨다. 





루시드폴 모르폴린 앙상블의 잔잔한 음악들이 한껏 들뜬 열기로 솟구치는 내 아드레날린을 다시 가라앉힌다. 그래, 뭐든지 적당히 해야 하는 법이다. 흥분된 몸과 마음의 균형이 맞춰지는 것을 느껴본다. 이런 것이 바로 음악의 힘이다. 아직 남아있는 공연을 즐기기 위해서라도 넘쳐흐르는 에너지를 잠시 비축해 둘 필요가 있다. 다시 야외무대로 나와 자리를 잡는다. 노을 지는 야외 공연에서 와인은 빠질 수가 없다. 평소에 술을 즐기지 않는 그도 오늘만큼은 취할 준비가 되어 있다. 무대가 준비되는 동안 우리도 낭만적인 밤을 준비해 본다. 





체력을 비축해두길 잘했다. 존 스코필드(John Scofield)는 정말 흥이 많은 재즈 기타리스트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 곡이 끝날 것 같으면서도 끝나지 않는다. 그만큼 즉흥적으로 리듬을 이어간다는 뜻이다. 괜히 기타 거장이라 불리는 것이 아니다. 재즈에서 즉흥연주는 가장 기본이자 필수로 꼽히는 기법인데, 자신의 정체성과 창의성을 나타내기도 해 꽤 중요하다. 특히나 이번 페스티벌에서의 앙상블 네임이 '콤보 66'인데, 그의 나이 66세를 기념하기 위한 앨범명과도 같다. 아, 이렇게 나이 들면 참 행복하겠다고 생각했다. 기타 잘 치는 이런 멋진 아저씨라니! 




오늘의 하이라이트이자 헤드라이너는 오마라 포루투온도 여사다. 존 스코필드의 나이는 애교에 불과했다. 1930년생의 그녀가 피아니스트의 부축을 받으며 무대에 등장하자 잔디마당에는 박수와 함성이 울려 퍼진다.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의 살아있는 전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는 오늘뿐이다. 그녀를 만나기 위해 이번 공연을 기다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전히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의 연주는 계속되고 있다. 다만 건강상의 이유로 그녀는 쿠바에서만 활동하고 있다. 그런 그녀의 서울 라이브 공연을 나는 놓칠 수 없었다. 부축을 받고 나온 것에 비해 목소리에는 여전히 힘이 있다. 아아아~ 아아아~ 그녀의 스캣을 따라 관객들도 외친다. 힘에 부치면 잠시 휴식을 취하는 그녀를 위해 그녀의 세션들이 각자의 기술을 펼쳐 보인다. 자신을 기다려주는 동료들과 흥에 겨운 관객들을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은 흐뭇함이 묻어난다. 나오지 않을 것처럼 들어가셔서는 앙코르를 외치는 관객들 소리에 총총걸음으로 나오시던 모습이 어찌나 귀여우시던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할 뿐이라는 말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베사메무초'를 부르는 그녀의 얼굴은 빛이 난다. 평생을 소녀 같은 모습으로 살 수 있다면 저런 얼굴일까. 페스티벌을 통해 행복하게 나이 드는 법을 배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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