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 마리아 테레지아, 클림트, 에곤 실레 그리고 커피..?
아침 일찍 일어나 조식을 먹고 오스트리아 비엔나로 향했다. 동유럽 3국을 5일 안에 돌아다녀야 하는 패키지이다 보니 한 숙소에서 머물 수 없었다. 큰 캐리어에 다시 짐을 넣을 때 현타가 오긴 했지만 ‘쾌적한 버스 안에서 푹 자야지’라는 생각을 하며 이 악물고 캐리어를 끌었다.
창 밖에 보이는 한국과는 다른 풍경을 감상하다가 눈을 붙였다. 2시간 30분을 달려 헝가리 부다페스트를 지나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밥을 먹어야 했다. 조식 먹고 잠만 자서 배가 꺼지지 않은 상태였는데 밥을 먹어야 하다니.. 삼시세끼 다 먹을 수 있게 챙겨주셔서 건강한 돼지가 되어 한국으로 돌아가게 될 느낌이 들었다. 여행 갔을 때 먹는 음식은 그 나라 문화를 먹는 거라고 했던가.. ‘그래, 난 밥이 아니라 문화를 먹는 거야’라고 생각하며 식당 문을 열었다.
오늘은 호이리게라는 음식을 먹게 됐다. 다양한 고기요리와 소시지, 감자, 사워 크라프트로 구성되어 있는 오스트리아의 전통음식이다. 나왔을 때 비주얼은 딱 내 스타일이라서 군침이 돌았다. 소시지 한입 베어 먹는 순간! ‘와.. 짜! 뭐야 이거. 솔티소시지야, 뭐야?’라는 말이 튀어나올뻔했다. 너무 짜서 깜짝 놀람! 같이 나온 치킨도 좀 짠 편이었지만 소시지가 너무 짜서 괜찮게 느껴졌다. 절인 양배추 (사워 크라프트)가 내 입맛엔 제일 맛있었다. 같이 다니는 내 친구가 ”커피가 너무 고프다 “ 했었는데 메뉴에 멜랑지라는 커피메뉴가 있어서 가이드님께 멜랑지는 뭐냐고 여쭤봤다. 오스트리아 전통 커피라고 하셨다. 전통이라니 지나칠 수 없지. 점원(사실 사장님이신 듯..)분께 멜랑지 한 잔 주문했더니 굉장히 정색하시며 대놓고 한숨을 쉬고 가셨다. 완전 당황.. 친구와 나는 황당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봤고 웃음이 나왔다. 웃음밖에 안 나왔다. 우리는 멜랑지를 취소하기로 하고 그 식당을 빠져나왔다. 가이드님께 점원분이 혼자 굉장히 바쁘고 일이 힘들어 보이시던데 왜 그런 거냐고 여쭤봤다. 보통 주말에는 ‘가족과 함께 보내자.’라는 분위기라 사람들이 별로 없어 원래는 주말장사를 안 한다고 한다. 하지만 주말에 여행사에서 예약이 들어오면 주말에 일 할 사람이 없고(가족과 보내야 해서) 본인들이 직접 뛸 수밖에 없어서 바쁘고 정신없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런 거구나.. 너무 한국의 친절한 서비스에 길들여져 있어서 그런가.. 한국마인드를 빨리 벗어내야 상처를 덜 받겠구나 싶었다.
식당에서 20분 정도 버스를 타고 이동해 쇤부른 궁전에 도착했다. 가이드님이 나눠주신 수신기에 이어폰을 연결해 귀에 꽂았다. 가이드님을 따라 거리를 걷기 시작하니 진짜 여행이 시작된 느낌이 들어 설레었다. 쇤부른 궁전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같이 여행하는 일행분들이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오호라 이곳이 포토존이구나! 나와 친구도 서로를 찍어주기 시작했다. 이때 슬금슬금 서로의 눈치를 보던 일행분들이 “저희도 찍어주시겠어요?” 하며 다가오셨다. “물론이죠!” 드디어 서로 말을 건네기 시작한 것이다. 생판 모르던 남인데 같이 여행을 다니고 이렇게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게 되다니 상황이 재밌게 느껴졌다.
쇤부른 궁전 안은 사진이 금지되어 있다. 그래서 눈에 더 열심히 담고 설명해 주시는 것도 열심히 귀에 담았던 것 같다. 공부를 못하던 나인데 왜 이렇게 설명이 흥미로운지.. 직접 봐서 그런가.. 더 집중했던 것 같다. 하지만 여행을 다녀오고 시간이 좀 지난 지금, 내 머릿속에 데이터가 손상됐다. 데이터를 어찌어찌 복구시켜 감명받았던 부분을 말해보자면
합스부르크 왕가는 유럽에서 가장 긴 역사와 전통을 지닌 대표적인 가문이다. 17세기에 여름 별궁으로 대지가 50만 평에 이르는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큰 궁전을 지었다. 그 큰 궁전이 쇤부른 궁전이다.
근대 개혁 정치의 시발점으로 평가될만한 여왕 마리아 테레지아의 흔적을 감상할 수 있다.
쇤부른 궁전에는 총 1441개의 방이 있다.
모차르트가 6살 때 황실 첫 연주회를 했던 ‘거울의 방’ 내부를 볼 수 있다.
마리아 테레지아는 16명의 자녀를 낳았지만 그중 12명의 자녀가 생존했다. 남편과의 사이가 너무 좋았다. 하지만 마리아 테레지아는 자녀들을 대놓고 편애하여 대부분의 남매간 사이가 좋지 못했다. 생존했던 자녀들 중 많은 자녀들 인생이 비극적이었는데 결혼 이후 건강이 좋지 않거나 배우자가 일찍 세상을 뜨거나 프랑스혁명에 휘말려 나라를 떠나기도 하는 등 불행을 겪게 된다.
마리아 테레지아의 배우자 프란츠 슈테판이 서거한 뒤 충격에 휩싸여 계속 검은 상복만 입고 다녔다. 그 정도로 금슬이 좋았다.
자식들을 대놓고 편애했을 모습을 상상하니 내가 다 속상하고 한 명 한 명씩 안아주고 싶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마리아 테레지아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대단한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자식을 많이 낳아 다른 나라 군주들과 정략결혼을 시키는 등 전략적이고 냉정한 사람인 듯하다. 여자라는 불리한 점을 극복하고 정치적인 안정, 문화적 번성, 왕정의 근대화를 이루어낸 여왕으로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다.
유익한 설명을 뒤로하고 쇤부른 궁전에 있는 대정원으로 향했다. 바람이 불고 추웠지만 하늘이 맑아서 기분이 날아갈 듯했다. 날이 좋아서 그런지 사람들이 많아 생기가 돌았다. 언덕 위에 카페가 있다고 했는데 자유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버스로 향했다.
버스 타고 10분 정도 이동하여 내가 제일 기대했던 벨베데레 궁전에 도착했다. 비엔나 유력자인 오이겐 샤보이 공이 여름별궁으로 사용하던 벨베데레 궁전! 이 궁전 안에는 많은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다. 대표적으로 클림트의 키스, 에곤 실레의 죽음과 소녀 그림이 유명하다. 에곤 실레를 좋아하는 나로서 안 가볼 수가 없는 곳. 설레는 마음으로 궁전 안으로 들어섰다. 꽤나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가이드님의 설명을 들으며 전시되어 있는 그림을 관람했다. 그림들은 거의 다 사진촬영이 가능했는데 에곤 실레 작품들만 사진촬영이 금지됐었다. 너무 안타까웠지만 눈에 담을 수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했다.
클림트의 ‘키스’ 그림을 내가 직접 보게 될 줄이야. 벅차오르는 마음에 몇 번이고 그림을 쳐다봤다. 보고 있어도 실감이 안 났다. 진짜를 내가 보게 되다니..
특별하게 기억에 남는 그림은 에곤 실레의 ‘가족’ 그림이다. 에곤 실레 그림답지 않게 따듯한 분위기가 나는데 행복한 가정에 대한 에곤실레의 염원이 담겨있어서라고 한다. 에곤 실레와 에곤 실레 아내 그리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의 시선방향이 다 다르게 그려진 것이 이들의 행복할 수 없는 미래를 암시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실제로 에곤실레의 아내는 스페인독감으로 사망했고 그 당시 아내의 뱃속에 있던 아이도 사망했다. 아내가 사망한 뒤 좀 지나지 않아 에곤실레도 스페인 독감으로 사망했다. 안타까움에 탄식이 절로 났다.
유익한 그림투어를 뒤로하고 아쉬운 발걸음으로 궁전을 빠져나왔다.
비엔나의 명동 혹은 인사동으로 불려지는 곳! 도착하자마자 많은 가게들과 사람들을 보니 명동느낌이 확 풍겨졌다. 솔직히 비엔나가 아니라 명동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같이 간 친구가 여기 명동 아니냐는 말을 한.. 10번은 한 듯하다. 뭔가 비엔나느낌이 안 난달까.. 역시 나는 쇼핑을 위해 여행하는 체질은 아닌 것 같다. 심장이 뛰지 않았다. 재미있었던 건 지나다니는 사람들 구경하기! 현지인들의 옷차림새를 구경했다. 뭔가 실용적인걸 추구하는 듯하는데 비율이 좋아서 그런지 패션센스가 있어 보였다. 부러웠다. 나도 허벅지보다 종아리가 길고 싶다. 쳇. 그래도 이 먼 곳에 왔는데 쇼핑을 아예 안 할 수는 없다. 기념품샵 들어가 구경하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재미가 쏠쏠했다. 비엔나라고 적혀있는 자석을 구입했다. 여행 가서 뭐든 잘 안 사는 타입인데 빈티지한 자석이 끌려서 구입하게 됐다. 점원이 직접 계산기를 두드리고 결제를 도와주는 아날로그적인 시스템을 보니 새로웠다.
케른트너 거리 안에 있는 슈테판 성당! 확실히 우리나라와 다른 건축양식을 보면 여행 온 느낌이 든다. 고딕양식으로 137m에 달하는 첨탑이 있는 성당이다. 이곳에서 모차르트가 결혼식을 올렸으며 지하에는 흑사병으로 사망한 2000여 구의 유골과 합스부르크 왕가 유해 중 심장 등 내부장기가 보관되어 있다. 모차르트가 결혼식을 올린 곳이라니! 오스트리아 여행은 모차르트가 없으면 진행이 불가한 정도다. 엄숙한 슈테판 성당을 보며 맞다 여긴 명동이 아니라 케른트너 거리지.라고 다시 한번 상기시킬 수 있었다.
저녁은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한식의 꽃 비빔밥이다. 왜 꽃이냐고? 모른다. 지금 이 순간 내가 한식이 너무 고프기 때문에 내 마음대로 꽃이라고 할 거다. 매장 안으로 들어갔는데 정말 한국에 돌아온 줄 알았다. 무심한 인테리어와 가구들.. 이곳은 음식뿐만이 아니라 매장도 한국이다. 비빔밥이 나왔고 미니 된장국이 나왔다. 거짓말 안 하고 5분 만에 흡입한 듯하다. 잘 먹었다 정말. 만족한 배를 퉁퉁 치며 나왔다. 역시 한식이 제일 맛있어.
선택관광으로 비엔나 음악감상회가 있었는데 우리는 신청하지 않았다. 너무 좋은 경험이겠지만 우리의 의지가 아닌 본능에 취해 휩쓸려 자버릴까 봐.. 그런 민폐는 끼치고 싶지 않았다. 가이드님이 음악회를 선택하지 않은 팀들이 모두 동의하면 음악회시간을 근처 카페에서 보내는 걸로 하자고 하셨다. 우리는 너무 카페도 가고 싶고 커피도 마시고 싶어서 기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가족으로 구성된 한 팀원분들이 피곤해서 숙소로 가겠다고 하셨다. 아쉬웠다. 그래.. 패키지의 단점이라면 이런 점이겠지. 하지만 우리 또한 오늘 많이 걸어서 힘들었으니 숙소에 들어가서 푹 쉬기로 했다.
어제 숙소는 너무 깔끔하고 심플해서 좋았었다. 우리의 머릿속에 무의식적으로 숙소에 대한 기준이 첫날 묵었던 숙소로 결정 난 듯했다. 지친 몸을 이끌고 숙소로 들어가려는데 웬걸.. 방문 열쇠가 계속 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열쇠를 넣고 돌리고 돌려도 끝이 없이 돌아가는 것이었다. 아~.. 가이드님이 계속 돌려야 한다는 말씀이 이런 말씀이셨구나.. 끝없이 돌리자 철컥하고 문이 열렸다. ‘매우 아날로그 하구만’ 우리는 허허 너털웃음을 지으며 숙소로 들어갔다. 한데 숙소가 좀 무서웠다. 방탈출 게임에 나올듯한 인테리어를 뽐냈다. 겁이 많은 내 친구는 벽에 걸려있는 한 그림을 보며 기겁을 했다. 어떤 남자 그림이었는데 계속 보고 있으면 눈동자가 움직여 나를 향할 것 같은 오싹한 느낌이 드는 그림이었다. 친구가 겁먹은 모습이 너무 재밌어서 놀려줬다. 그녀의 놀라는 모습에(내 친구는 눈이 커서 크게 뜨면 무섭다.) 나도 놀라서 무서워졌다. 무서워서 우리 어떻게 자냐며 걱정에 걱정을 늘어놨는데 잠옷 입고 눕자마자 기절했다. 불을 켠 채로 그렇게 우리는 알람이 울릴 때까지 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