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상엽 Aug 26. 2024

만약 당신의 차가 가끔 시동이 안 걸리고

만약 당신의 차가 가끔 시동이 안걸리고 기름도 새는것 같다면

시작부터 말해두지만 이 글은 사기당한 중고차에 대한 글은 아니며 중고차 고르는 법에 대한 가이드 또한 아니다. 이 글은 ADHD에 관한 글이다. 나는 30살이 되던 해에 ADHD로 진단받았다. 그 직후에도 지금도 많이 알아보고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예를 들자면 자동차를 산 지 30년 만에 설명서를 집어든 상황이랄까?


adhd는 요즘 여기저기서 많이 언급되고 있는 도파민과 관련되어 있다. 도파민은 신나는 일을 하기 직전에 나와 그 일을 끝마치도록 돕는다. 차로 말하자면 연료와 같고 adhd는 그 연료가 항상 새고 있는 것과 같다. 나는 연료탱크에 구멍이난 차를 30년 동안 타고 다닌 셈이다. 도파민은 신나는 일을 하면 나온다고 하는데 보통 사람들은 채워진 도파민이 꽤 오래 가지만 나 같은 사람은 신나는 일을 할 때뿐 연료 게이지는 F(full)과 E(empty) 사이에서 춤을 춘다. 주황색 주유경고등은 원래 켜져 있는 줄 알았다.  


운전하다가 기름이 바닥난 경험이 있다면 알겠지만 시동이 꺼지고 차가 그 자리에 멈춘다. 다시 시동을 걸면 차는 캑캑 소리를 내다가 다시 시동이 꺼진다. 나는 지난 30년 동안 매일 아침 겪었다. 아침에 학교 가라고 엄마가 깨우면 연체동물처럼 바닥에서 기어 다니다가 화장실에 들어가 화장실 바닥에서 잠을 잤다. 시동을 못 걸어서 출발을 못하니 엄마차가 견인해서 학교 앞에 데려다 놓기 일쑤였는데, 그러면 또 가방을 질질 끌고 들어가 지각했다며 선생님한테 혼났다. 가끔 심하게 혼나면 딸꾹질하듯 연료탱크에 힘이 들어가는지 연료가 안 새는 적도 있었다. 흔히들 도파민은 신날 때만 나온다고 생각하지만 스트레스받는 상황에서도 나온다. 도파민은 동기부여 호르몬이다.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내차를 보며 내 차는 문제없다고 말했다. 그 말을 모든 사람에게 30년 동안 들었다. 사람들은 내가 운전하는 방법이 잘못되었다고 말했다. 그런 비난은 주로 내 행동에서 시작해 습관, 생각으로 이어졌다. 내 차가 시동이 안 걸리거나, 매번 기름이 없는 이유는 마음이 해이해서라거나,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서였다. 극복의 대상이었다. 나도 그게 맞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매일 같이 퍼져있지만 가끔은, 아주 가끔은 남들보다 빠르게 쌔앵 하고 질주할 때가 있었다. 그럴 때는 기름이 얼마나 남았는지는 신경도 안 쓰고 내가 제일 먼저 도착해 있었다. 중학교 때 미술 과제로 그림을 그렸는데 밤새 그려서 학교에 가져간 적이 있다. 학교에서 내가 가장 멀리 빨리 간 것 같아 뿌듯했다. 단발적으로 보여주는 그런 모습 때문에 사람들은 내 차가 빠르고 좋은 차라고 생각했다. 대부분의 시간에는 아침에 일어나지도 못해 지각하고, 지우개조차 못 챙겨서 친구에게 빌리는 그런 모습이었다. 숙제는 안 해간 것이 아니라 있는 줄도 모르는 상황이 많았다.


adhd를 가진 사람들에게 가장 독이 되는 것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자율성이다. 대학을 가고 성인이 되어서 나에게 주어진 자율성은 아무 도로도 없는 사막같이 느껴졌다. 도로와 신호등에 맞춰서 가다 서다를 반복해야 하는 의무감이 없는 것이 반가웠다. 그러나 사막에서 내차는 출발 한번 못해보고 그냥 제자리에 멈춰있었다. 대학교 1학년 때는 한 학기 동안 기억이 나는 시간보다 기억이 안나는 시간이 많을 정도로 술을 마시고 친구들도 만취한 나를 더 반가워했다. 수업은 들어도 되고 안 들어도 되니 안 들었다. 가끔 가다가 재미있어 보이는 캐드 수업을 들으면 실습시간에 재미있게 하다가 그뿐이었다. 이런 자율성은 내가 19살부터 31살까지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대학을 다니게 된 이유였다.


이쯤 되면 대학을 졸업한 게 신기할 정도다. 연료탱크에 구멍이 뚫린 채로 말이다. 내가 처음 문제를 자각하게 된 것은 보영이와 만나면서부터다. 처음으로 내 운전습관이 아닌 차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말해주었다. 너 차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카센터에 가보는 게 어떻냐는 말을 했다. 침대에 누워 통화하다가 그 말을 들었을 때도 도파민이 솟구쳤다. 그래, 내 차가 문제였다. 바로 다음날 카센터, 아니 신경정신과를 찾아갔다. 정비사 아저씨, 아니 의사 선생님은 내 생활기록부부터 살아온 인생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뇌파검사, 심리검사 등을 하고는 adhd라고 진단했다. 웃기게도 다행이라는 생각에 안도감이 들었다. 그 이후로 3년째 지금까지 매일 아침 약을 한 알씩 먹는다. 매일 아침 시동걸기 전에 넣는 연료첨가제 같은 것이다. 그러면 기름도 안 새고 지루한 도로를 멈추지 않고 갈 수 있다. 대학교의 마지막 두 학기는 4점대의 성적으로 원하는 전공으로 전과를 했다. 정상인처럼 회사를 다니고 있는 지금도 약의 효과를 보고 있다. 물론 약을 먹어도 때에 따라 기름이 새는 것은 여전하지만 차가 나를 운전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차를 운전한다는 느낌은 즐겁다.


그러니, 만약 당신의 차가 고질적으로 시동이 안 걸린다면, 스스로의 운전습관을 비난하지 말고 카센터를 가보기를 바란다. 너무 상식적이고 당연하지 않은가?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몸에 대해서는 특히 정신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이토록 무관심하다. 적어도 당신의 차가 어떤 종류의 차이고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보기를 권한다.


30년째 기름이 새는,

가끔은 누구보다 빠른 스포츠카 차주 드림

작가의 이전글 8 지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