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상엽 Dec 26. 2021

내일 이 시간, 여기서 만나자



눈이 부시는 햇빛이 저 멀리 내려가고 있었다. 보랏빛 하늘에는 깃털 구름이 한 방향으로 뿌려졌다. 어디선가 나는 은은한 금목서 향기는 더 가고 싶지 않게 만들었다. 식은 오늘이 금요일이면 했다. 지난 며칠을 새벽까지 메타에서 새로 만난 그와 놀러 다니느라 거의 밤을 새고 출근했다. 지금 돌아가지 않으면 내일도 지각이 확실했다.


“나 이제 가봐야 할 거 같아.”

“나도 이제 일하러 가봐야 해.”

“내일도 이 시간에?”

“좋지!”


식은 이번엔 자신 있게 물어봤고 기분 좋은 대답을 들었다.


“좋은밤보내”

“너도”


헤드셋을 벗자 좁고 어두침침한 방으로 돌아왔다. 현실에서 식의 집은 셀이라고 불리는 마이크로 아파트였다. 세탁도, 요리도 하지 않는 독신자를 위한 숙소였다. 세탁은 밤에 문 앞에 내놓으면 일괄적으로 수거해가서 세탁하고 아침에 배달해줬다. 식사도 비슷한 식으로 해결했다. 집은 욕실과 창문 없는 침실뿐이었지만 메타용 헤드셋이 포함되어있었다. 창문 자리에는 서울에 없는 바닷가 풍경의 화면이 창문을 대신했다.


 줄어들 거라던 서울 인구는 줄지 않았고, 외국인들의 이주로 오히려 늘었다. 정부는 특단의 대책으로 메타에 ‘메타-서울’이라는 이름을 따 “M-서울”이라고 하는 신도시를 건설했다. 이후 독신자들이 최소한의 공간만 사용하는 셀로 이사하고 메타에서 직장을 구해서 그곳에서 생활하도록 장려하고 있다. 메타만 뺀다면 독신자 교도소라고 불러도 이상할 것이 없었지만, 오히려 시민들은 메타에 열광했다.


식도 그 시민들 중 하나였다. 이전에 살던 곳이 이보다 월등히 낫지도 않을뿐더러 식이 누릴 수 있는 서울은 비좁고, 뿌옇고, 숨 막히는 그런 곳이었다. 셀로 이사한 지 한 달, 메타 멀미 같은 것은 사라진 지 오래지만 왠지 모를 우울감은 돌아올 때마다 사라지지 않았다. 메타에서는 잊고 있었지만 현실로 돌아올 때마다 손 뻗으면 벽이 닿는 곳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괴로웠다. 메타에서 직장만 구하면 먹는 시간과 화장실 가는 시간만 제외하곤 이 비좁은 방으로 돌아올 필요가 없었다. 최근 들어 메타에서 일자리를 구하고는 있지만 그전까지는 도심으로 출퇴근을 해야만 했다.

 

 도대체 밤마다 뭘 하는지 쿵쿵대는 윗집 때문에 늦게든 잠마저 설쳤다. 식은 오늘은 퇴근하면 꼭 윗집과 담판을 지어야지 다짐하며 나섰다. 잠이 부족한 것도 있지만 어딘가 무기력하고 몽롱했다. 커피를 마시며 억지로 잠을 깨고 싶지도 깰 필요도 없었다. 회사에서 잘리지 않을 만큼만 일하고 눈치 보며 졸면되니까. 오늘은 열심히 하는 상사 덕에 식의 퇴근이 한 시간이나  늦어졌다.


서둘러 탄 지하철에서 그에게 메시지가 왔다.

가방에 손을 집어넣었다. 잡다한 물건 속에서 손을 헤집어 헤드셋을 찾았다. 서둘러 헤드셋을 머리에 썼다. 사람들이 불쾌한 눈빛으로 쳐다봤지만 오늘은 어쩔 수가 없었다. 어차피 두 정거장 뒤면 안 볼 사람들이었다. 지하철이 사라지고, 다시 어제 호숫가에 깃털 구름이 펼쳐졌다. 눈앞에 바람개비 모양 목걸이를 한 그가 손을 흔들었다. 불어오는 바람에 바람개비가 경쾌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안녕”


식도 손을 흔들었다. 식은 너무 급해서 아바타의 손을 흔든다는 걸 지하철 건너편 자리에 있는 사람에게 손을 흔들었다. 지하철에 있는 사람들이 비웃었지만 다행히 식은 눈치채지 못했다.    


“우리 오늘은 저기 저 설산에서 스키 타볼래? 너 스키 탈 줄 알아?”

저 멀리 북쪽에 구름이 걸려있는 봉우리가 하나 보였다. 그 봉우리 위에는 눈이 쌓여있었다.


“메타에서는 한 번도 안 타봤는데..”

식은 메타를 시작한 지 한 달남짓이라 할 줄 아는 게 많지 않았다.


“거의 비슷한데, 처음에는 실수로 진짜 몸을 움직이기도 하니까 내가 알려줄게”

“좋아, 해보자! 잠시만 5분만 이따가 다시 들어올게”

“알겠어”


지하철에서 내려 식은 집으로 뛰어갔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저녁을 전자레인지에 데우고 다시 헤드셋을 썼다.

“이제 가볼까?”

식은 신나서 어깨를 들썩이며 그에게 말했다.


“좋아 그럼 출발해볼까?”

그도 역시 신이 나 보였다.


그 순간 위층에서 또 쿵쿵거렸다. 식은 위에 올라가서 담판을 짓고 오겠다고 일어섰다.


“잠시만, 아니 위층에 사는 어떤 놈이 셀로 이사 온 뒤로 매일같이 쿵쿵거려서. 말하고 올게”

“나도 그런 적 있어, 너무 짜증 나지. 처음에 말할 때 확실히 말해야 해”

그가 맞장구쳐주었다.

“알겠어 단단히 말하고 올게”


식은 화가 난 표정으로 한층 위로 올라가 앞자리만 다른 호수의 문을 당해 보라는 듯 쿵쿵 쿵쿵 빠르게 두들겼다. 몇 초 뒤에 다시 한번 쿵쿵 쿵쿵 두들기자 안에서 후다닥 하는 소리를 내며 누군가 문을 열었다.


바람개비 목걸이를 하고 있는 여자가 나왔다.



작가의 이전글 감자국 춘천 닭갈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