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워드 카운티에 조성된 코리아타운 입구의 한국 상징 조형물 앞에 서 있는 래리 호건 미국 메릴랜드 주지사와 부인 유미 호건 여사
“메릴랜드 코리아타운 지정은 제 오랜 꿈이었는데 2년 만에 현실이 됐습니다. 남편의 주지사 임기가 1년 3개월 남았는데 앞으로도 아시아계 증오범죄 척결 등을 위해 계속 노력할 생각입니다.”
지난 9일(현지시간) 미국 메릴랜드주 하워드 카운티에서 열린 ‘메릴랜드 코리아타운 완공식’ 행사에서 만난 래리 호건(65) 주지사의 한국계 부인 유미 호건(62) 여사의 표정은 “오랜 숙원이 이뤄졌다는 말”처럼 더없이 밝았다. 유미 여사는 “처음 이 지역이 코리안 웨이(2016년 12월)로 지정된 이후 꼭 코리아타운으로 만들어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정치적 이유로 반대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며 “한 사람씩 만나 설득하고 특히 이곳 카운티 케빈 볼 행정관과는 몇 번이나 만났는지 모를 정도”라고 말했다.
유미 여사는 “코리아타운 지정이 코로나19로 어려운 교민 상권을 살리는 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며 “주지사 관저에 들어갈 때 나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게 아니고 교민사회를 위해 도움 되는 일을 하고 싶다고 결심했고 지금껏 그렇게 해왔다”라고 강조했다.
문화일보 메릴랜드 = 김남석 특파원
2021년 10월 9일((현지시간) 미국 메릴랜드주 하워드 카운티 엘리콧시티에서 ‘메릴랜드 코리아타운 완공식’ 행사가 있었다는 뉴스가 한국 신문을 장식했다.
나는 운 좋게도 메릴랜드에 머무는 동안 이 조형물이 들어서는 것을 보았다.
사돈의 집은 하워드 카운티 메릴랜드의 엘리콧시티에 있는데 사돈 지인의 식사초대를 받고 나갔을 때 나는 어리둥절했다. 미국이 아니라 한국의 한 모퉁이를 옮겨온 듯했다. 줄지어 늘어선 가게들은 한글 간판이 대부분이었고 간혹 보이는 영어도 내용은 한국의 명칭이었다. 대로 건너편 거리에도 대다수 한글들이었다.
한국에서 흔히 보던 가게명들, 뚤레주르, 정관장, 대장금, 항아리, 등등.... 한국보다 간판의 디자인은 다소 유행이 뒤졌지만 한국인의 긍지가 당당했고 오히려 한국에서는 사라져 가는 한국적 명칭과 정서가 정겨웠다.
들어선 식당 안은 코로나 때문에 텅텅 빈 한국의 식당과는 전혀 달랐다. 자리가 없을 만큼 꽉 차있었는데 거의 다 한국인들이었다. 곳곳에서 들리는 한국말과 상위에 놓이는 짭조름한 한국 밑반찬들, 여기가 한국이야 미국이야, 헷갈릴 정도였다.
종업원들은 마스크를 하고 있지만 마스크를 쓰고 있는 손님들은 없었다. 식당이니 그럴 수밖에 없긴 하지만 마스크와 거리두기 등의 통제에 익숙했던 나는 지나친 자유로움이 조금은 두려웠다. 그런데 알고보면 무모한 자유가 아니었다.
뉴스를 보니 한인이 가장 많이 거주하고 사돈이 사는 하워드 카운티는 1주일 전체 평균 3명의 환자가 나타나는 정도라고 했다. 메릴랜드의 다른 지역의 확진자 수도 그 정도였고 그건 우리나라를 포함해서 코로나로 신음하는 다른 지역에 비하면 놀라운 성적이었다. 그래서 메릴랜드는 7월 1일 기준으로 모든 규제를 중단했다고 했다.
그 덕에 나는 자가격리 같은 조치 없이 미국에 입국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것도 유미 호건 주지사 부인의 덕이 아닐까 생각했다. 미국의 어느 주보다 재빨리 한국의 진단키트를 수입해서 코로나 초기대응에 성공했고, 진단키트 덕에 코로나 초기에는 성공했지만 백신 도입은 늦어버린 한국과 달리 백신 접종 역시 빨랐으니 코로나에 관한 한 초기부터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물론 미국의 어느 주보다 신속하고 적절한 방비를 해내지 않았을까.
미국도 한때는 미국 전역에 셧다운 명령이 내려져 고통을 받았다고 했다. 하지만 내가 왔을 때의 메릴랜드는 자유로웠고 일상을 회복한 활기가 넘쳤다. 있는 동안 많은 한국인들을 만났는데 그들을 비롯하여 다른 한국인들 중 코로나에 걸렸다는 소문은 들리지 않았다. 서서히 나의 긴장도 풀려갔다.
조카집과 사돈집을 오가려면 2016년에 코리아 거리(KOREA WAY)라는 이름이 붙여진 큰 대로 사거리를 지나야 했다. 어느 날 나는 거리 양 쪽에 한국식 기와를 얹은 문이 두 개 세워져 있는 것을 보았다. 철망을 막아 접근을 막고 있었지만 문에는 KOREATOWN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었다. 사돈은 마침내 한국 교민들의 숙원 사업이던 코리아타운이 미국 전역에 정식으로 선포되게 된 거라고 우리들에게 설명했다. 그러면서 넓은 대로에 너무 작게 만들어 눈에 잘 뜨이지 않는 것이 아쉽다는 말도 덧붙였 다. 한 번 만들면 영구히 갈 수도 있는데 이왕이면 좀 더 크게 만들지라는 생각은 나도 들었지만 한국의 전통을 잘살린 디자인이나 고급스런 단층의 색깔 등이 마음에는 들었다.
내가 메릴랜드에 있는 동안 이 조형물을 보게 되다니. 뜻밖의 행운에 나는 가슴이 뛰었다. 거기에 이 일에 깊숙이 참여하여 추진해왔던 교민을 만나 자세히 들을 수 있는 운도 따라주었다.
이 조형물을 위해 한국에서 장인을 초빙하였는데 장인은 자신의 문하생 포함하여 일곱 명과 함께 왔다고 했다. 나무는 한국의 최고 좋은 소나무를 잘 말려서 배로 실어왔다. 그들의 비행기 값, 체류비, 그리고 한국에서 공수해온 자재들. 조형물을 세울 땅 밑의 전기나 기반 시설들을 옮기는 작업까지 하느라 생각 이상으로 많은 비용이 들어갔다. 내가 잘못 들었나 싶어 몇 번 되물을 정도로 큰 금액이었다. 앞으로 들게 될 유지 보수비도 확보해두었다고 했다. 한국 정부도 후원금 10만 달러를 보냈고 한국 교민들이 십시일반으로 낸 후원금으로 이루어진 결과물이었다. 세워진 땅은 한쪽은 한인회 소유이고 다른 편은 카운티에서 무상으로 내준 거였다.
내가 와서 보기에도 그랬지만 메릴랜드 한인회에서 일했던 분의 말을 들어보니 충분히 코리아 타운으로 선포될만했었다. 이 일대에 15만 명의 한국인이 있는데 메릴랜드에 6만 명, 버지니아에 7만 명 워싱턴에 2만 명 정도이지만 집은 메릴랜드지만 직장은 워싱턴이거나 버지니아, 혹은 그 반대, 그런 식으로 이 세 지역은 직장과 집을 공유하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고 했다.
하지만 이 사업은 메릴랜드 주지사 부인 유미 호건의 도움이 없었다면 힘들었을라고 교민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사람들은 유미 호건을 매우 사랑하고 있었다. 같은 한국인 이어서만이 아니었다. 그녀와 가깝게 지냈던 어떤 사람은 그녀에 대해 묻는 내게 '천사'라는 한 단어로 그녀를 설명했다. 한국인들은 유미 호건이 이민 후 어떤 고생을 하며 자녀들을 키웠는지, 래리 호건과의 로맨스, 그리고 래리 호건이 혈액암에 걸렸을 때 얼마나 헌신적이었는지도 자세히 알고 있었다. 이후 래리 호건은 암이 완치되었고 재선에도 성공했다. 바른말도 많이 하여 당시 대통령이던 트럼프와 종종 부딪히기도 했지만 공화당 차기 대통령 후보까지 거론된다고 했다. 래리 호건이 훌륭하기도 하지만 유미 호건의 힘도 매우 컸을 것이다.
유미 호건은 따뜻하고 동정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자신이 아이들 세 명을 데리고 미국 땅에서 힘겹게 살아보았던 이민자의 삶을 잊지 않고 있었으며 어렵고 힘든 사람들의 고통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유미 호건이 그들을 대할 때 보면 정치가로서 하는 시늉이 아니라 진심이 느껴진다고 어떤 교민이 말해 주었다. 그래서 한국인들은 물론 메릴랜드의 다른 이민자들에게도 많은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다고 했다.
한국보다 미국에서 산 시간이 훨씬 길고 메릴랜드 퍼스트레이디까지 되었지만 유미 호건은 한국인으로의 정체성을 잊지 않고 있었고 한국과 미국 모두에게 도움 되는 가교 역할을 하고 싶어 했다. 그리고 말만이 아니라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고 있었다.
나는 미국 체류하는 동안 거의 매일 메릴랜드 KOREA WAY를 지나다니다시피 했는데 그럴 때마다 유미 호건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녀가 자랑스러웠다.
미국에 있는 동안 내가 체류한 메릴랜드나 버지니아에는 곳곳에 대형 한국 마트도 많았는데 들어가 보면 한국보다 더 많은 한국 제품들이 진열대마다 꽉 채우고 있었다. 한국에서 보지 못한 수많은 종류의 토종 된장으로 채운 진열대, 모든 종류의 김치가 가득한 진열대, 순 한국식 밑반찬들은 그 가짓수를 셀 수가 없을 만큼 늘어서 있었고 사 먹어보면 한국 어느 반찬 가게의 것보다 더 한국적이었고 맛있었다.
한국 마트에서 멸치볶음, 김치 같은 밑반찬을 사서 뚤레주르나 파리바케트에서 빵을 사서 조카 집으로 돌아와 남편과 함께 식사 후 커피를 마시거나, 한국적 인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한국 교민들과 함께 한국식당에서 마스크 벗고 마음 편히 이야기 나누는 시간들이 행복했다.
2021년도 코리아 타운은 풍족하고 당당하였고 한국인으로서의 여유가 느껴졌다.
이 2021년의 미국 체류 한 달을 코리아 타운 조형물 앞에 선 래리 호건과 유미 호건의 사진과 함께 나는 아마 영원히 기억하게 될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