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구나.

by 지초지현

" 얼굴에 무슨 크레파스를 묻혀놨니~"


귀지를 파주던 소연 엄마가 소연에게 얼굴을 씻고 오라고 한다. 누워있던 소연은 몸을 일으켜 욕실에 가서 아픈 얼굴을 살살 문질러 씻었다.

소연은 맑아진 얼굴로 엄마를 마주했는데 엄마가 이상하다는 듯 다시 누운 소연의 얼굴을 자세히 살핀다.

" 이거 뭐야.. 크레파스가 아니라 멍든 거야?"

화들짝 놀라며 소연을 바로 앉혀서 물었다.

멍든 부분을 만지며 아프지 않냐고, 왜 이런 거냐고.

엄마의 반응에 놀라서였는지 아님 말하면 안 되는 것을 말해야 하는 상황에서 어찌할 바를 몰라 그랬는지 소연은 울음 섞인 목소리로 더듬더듬 떨면서 전날 낮에 있었던 일을 얘기했다.




소연이 집은 2층 주택이었다.

1층에는 사촌들이 살고 2층엔 소연이 세 가족이 살았다.

시골에 사는 소연 고모가 당신의 자녀들이 서울에서 공부하며 지낼 수 있도록 집을 샀고, 그 집에 아이들만 있게 할 수 없어 그녀의 남동생인 소연아빠에게 부탁을 해서 같이 살게 된 것이었다.

고모가 구입한 집에서 월세 대신 소연의 부모가 고모 아이들을 보살펴주는 조건으로 해서 함께 살게 되었다.


소연의 사촌들이 중학교 갈 나이가 되면 차례대로 서울로 왔다.

그렇게 몇 년 사이 총 5명의 중, 고등학생, 대학생이 된 사촌들이 한집에 모이게 되었다.




어릴 때부터 어울려 지냈던 사촌들이 아니라 그들의 사춘기가 시작될 무렵 거의 처음 만나 함께 살게 되어서 그런지 서로의 친밀감은 1도 없었다.

대학생이 된 사촌언니는 늘 집에 잘 없었고, 고등학생인 언니들은 공부하느라 학교에서 늦게 왔다.

그중에서도 중학생인 사촌오빠 한 명이 가장 무서웠는데 그의 날카로움은 밥상을 엎는데 쓰기도 했다.


가장 어렸던 소연은 그 오빠가 시키는 심부름은 뭐든 다해야 했고, 학교를 마치면 정해진 시간에 집에 와 있어야 했다.

그러다 그날은 친구들과 노느라 시계를 챙겨보지 않아 오빠가 정해놓은 시간에 집에 들어가지 못한 것이다.

대문으로 들어서는 소연을 앞에 세워두고 오빠가 '약속시간을 어겼다'면서 어긴 시간만큼 뺨을 맞아야 한다고 했다. 그 말과 동시에 날아든 손바닥으로 소연의 눈에서 번쩍 스파크가 튀었다.

소연은 아픈 것보다 두려움이 더 컸다. 그 시간 동안의 공포는 암흑의 지옥처럼 소연을 에워쌌다.

"너네 엄마에게 말하면 이 집에서 못살게 할 거다" 하고 엄포를 놓았기에 엄마에게 더 말할 수 없었던 소연은 눈물만 흘렸다.



그날 저녁에는 늘 그랬듯이 소연 엄마의 퇴근이 늦었고 초등학생이었던 소연은 울다 지쳐 일찍 잠이 들었었다. 그다음 날이 주말이라 두 모녀가 나른한 정오를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소연의 얘기를 다 들은 소연 엄마는 반쯤 미친 여자처럼 신발도 신지 않은 채 아래층으로 뛰어내려 갔다.


" 야~이 ×새끼야, 네가 사람이냐~~ 애를 어찌 저렇게 때려~~

너 한 번만 더 손대었다가는 내 손에 죽을 줄 알아" 하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소연은 엄마 뒤에서 행여 무슨 일이 일어날까 무서워 더 움츠러들고 있었다. 그런 소연이를 데리고 2층으로 올라간 소연 엄마는 얼마나 아팠냐며 끌어안고 오열하기 시작했다.

" 미안해.. 엄마가 몰라서 미안해"라고 말하며 흐느끼는 엄마의 품속에서 소연이는 어쩐지 오히려 안심이 되었다. 그렇게 모녀는 서로 안고서 한참을 같이 소리 내어 울었다.



그 뒤로 놀랍게도 사촌 오빠는 소연이에게 아무것도 시키지 않았고, 심지어 피해 다니기까지 했다.

소연은 엄마한테 일찍 말할걸, 무섭다고 도와달라 그때그때 얘기할걸 싶었다.

그런데 어린 소연이는 엄마에게 얘기를 하면 진짜 그 집에서 쫓겨나서 살 곳이 없어지는 줄 알았다.

자기만 혼자 참으면 다 되는 줄 알았다.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때 비로소 소연이는 홀가분해질 수 있었다.





소연 엄마는 그 당시 일을 소연 고모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저 소연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더 컸었다.

바로 알아차리지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이 더 들었고, 부모 없는 공간에서 혼자 자라야 했던 조카의 사춘기가 잘못 발현된 것이라 생각했다.


시간이 흘러 소연이가 결혼할 즈음 청첩장을 전해주러 고모댁에 갔을 때 고모가 소연의 손을 꼭 잡고 말했다. "네 엄마가 얼마 전에 울면서 내게 얘기하더라, 너 어릴 때 우리 애들한테 많이 맞았다고, 다 자기 잘못이라고 그리 울더라"

"미안하구나, 고모가 많이 미안하구나."



Photo by GG(유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