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보고 싶어.

by 지초지현

'오늘도 콩자반이야?'

미선은 도시락 뚜껑을 열며 얕은 한숨을 쉰다.

곁눈으로 옆짝지가 꺼내는 도시락을 슬쩍 보니 군침이 돈다.

계란에 둘러 노릇노릇하게 구운 분홍색 소시지가 맛있어 보인다.


미선은 부모님이 계시는 곳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중학교를 왔다.

언니들이 중학교 갈 때쯤 서울로 가는 것을 보고 미선이도 곧 갈 것이라는 기대감에 초등학교 6년을 보냈다.

서울에 올라가면 아침에 일찍 일어나라는 엄마의 잔소리도 안 들을 테고, 아빠가 술 마시고 온 날이면 아빠입에서 나는 내장 썩은 내 같은 날숨을 맡지 않아도 될 터였다. 초등학교 졸업 후 긴 겨울 방학 동안 서울 올라갈 채비를 했다. 집에서 가장 큰 가방은 두툼한 목화이불이 2개쯤 들어갈 수 있는 천 가방이었다. 그 가방에 옷과 책들을 챙겨도 여유롭게 남았다. 미선은 무엇을 넣을까 고민하다가 늘 안고 자는 인형을 가방 안에 넣어보았다. 그랬더니 그나마 빈 공간이 줄어들었다. 인형은 가는 날 넣기로 하고 짐 챙긴 가방을 방 한편에 두고 그 겨울 동안 이불 안에서 삶은 고구마와 엄마가 음료수처럼 늘 만들어두는 식혜를 마시며 뒹굴거렸다.

나중에 미선은 그때 인형을 안 챙겼으면 어쩔 뻔했나 싶었다.




미선 아빠는 4계절 모두 바다에 나가 각 계절에 잡을 수 있는 생선과 오징어를 잡아오느라 늘 검은색 작업복을 입고 있었다.

그가 술을 마시지 않을 때는 옷에서 생선비린내가 났다. 일을 마치고 나면 피로를 풀 겸 저녁식사와 함께 한잔 하는 술잔이 두 잔이 되고 세잔이 되면서 결국 그의 입에서도 비린내가 나고 만다.

미선은 늘 비린내가 나는 아빠가 " 우리 막내딸~안아보자"하고 다가오면 슬금 뒷걸음질을 했다.


겨울이 되면 엄마는 하던 밭일에 손이 줄어들어 이것저것을 만들기 시작한다. 늦가을 집 뒷산에 있는 감나무에 감들이 열리면 온 마을 사람들이 함께 감을 따서 나눈다. 받아온 감을 마른 수건으로 닦고 껍질을 벗겨 줄에 매달아 말리기 시작한다. 그 감이 겨울의 찬 공기 속으로 수분을 모두 날려 보내면 달달함을 한껏 품은 곶감이 된다.

제일 예쁘게 마른 곶감은 따로 챙겨두어 명절 차례상에 올렸다. 엄마가 못난이라고 골라준 곶감을 야금야금 받아 겨울 내내 먹을 수 있다.


그리고 미선의 오빠가 특히 좋아했던 식혜는 늘 자주 만든 것이었는데 오빠가 서울에 올라가고 나서는 좀 뜸했다. 이번 겨울에 오랜만에 만든 식혜인 것이다.

이번에는 많이 만드는 것을 보니 미선의 서울 가는 길에 식혜를 실어 보낼 요량인듯했다.

덕분에 미선이는 질리도록 식혜를 맘껏 먹을 수 있었다.




길었던 겨울이 지나고 꽃샘추위가 머물러있는 봄이 되어서야 서울로 올라갔다.

오빠 언니들을 먼저 보내본 미선 엄마는 미선을 버스에 태워 보내고 미선의 외삼촌에게 출발을 알리는 전화를 걸었다.

서울의 버스터미널에서 미선과 외삼촌이 어색하게 만나 차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미선은 명절 때에만 가끔 만나던 외삼촌을 보니 왠지 낯설었다. 시골의 분주함과는 또 다른 서울만의 번잡함으로 미선은 더 낯설었는지도 모르겠다.

집에 도착하여 외삼촌보다 더 자주 못 본 외숙모와 인사하고 나니 그제야 집을 떠나온 사실이 실감되었다.


2층에서 외삼촌네 가족과 인사한 후 1층으로 내려오니 언니 오빠가 있었다. 집에서도 그다지 살갑게 지낸 사이가 아니라 “왔니?” 한마디로 인사하고 미선과 같이 방을 쓸 셋째 언니가 짐가방을 챙겨 들어갔다. 미선의 집에서 유일하게 아들이었던 까칠한 오빠는 역시 나와보지도 않는다.


미선이 살던 곳은 집을 나서면 다 아는 이웃들이라 인사하느라 바빴는데 서울에 오니 다 모르는 사람이라 미선은 벙어리가 된 듯했다.

입학을 한 새로운 중학교에서 적응하느라 미선은 혼자 마음이 바빴다.


외숙모가 싸주는 도시락에는 늘 콩자반이나 멸치볶음, 계란말이 중 하나와 김치가 대부분인 반찬이 들어있었다.

엄마가 곁에 있었다면 “나도 소시지!”하면서 투정을 부렸을 텐데 외숙모에게는 차마 그러지 못했다. 일하고 늦게 들어오는 외숙모라 만나기도 힘들었다.


아침이 되면 고등학생인 미선의 셋째 언니가 먼저 일어나 미선을 깨워 같이 2층으로 올라간다. 2층 부엌에서 외숙모가 차려놓은 아침을 먹고 도시락을 챙겨 학교로 향했다.

학교에서 야간자율학습까지 하고 오는 둘째, 셋째 언니는 도시락이 2개나 된다.

늘 2층에 올라가면 도시락이 10개 정도 줄이 세워져 있다. 그 안의 도시락에는 거의 같은 반찬이 들어있어 아무것이나 집어 들고 가면 되었다.

미선은 들고 가기 전에 도시락 뚜껑을 열어보고 “아이! 또 콩자반이야~ 나도 소시지 싸죠”라고 얘기하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1층으로 내려왔다.


그 마음을 전할 수 있는 엄마가 보고 싶은 아침이었다.







Photo by GG(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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