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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김 Oct 31. 2018

Gap year

갭 이어로 시작된 무계획 아일랜드 라이프

수하물을 기다리며 아일랜드에서 찍은 첫 사진


한국 나이 27살에 떠난 워킹홀리데이였다. 회사를 다니다 회의감을 느꼈고, 한 해라도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지금 생각하니 이름도 거창한 Gap Year라고 노트에 크게 적었던 기억이 난다. 어떻게 아일랜드에 오게 됐어? 라는 질문을 받으면 항상 저 단어를 썼다. 난 말이지, 나에게 '갭 이어'를 주고 싶었어. 대도시에서 평생 경쟁에 시달리며 살아왔거든. 그래서 아무 계획도 이루고 싶은 것도 없어.


계획이 없다는 건 사실이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난 이런 걸 성취해서 올 거야. 라고 말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영어가 조금 늘어서 올 수도 있겠지 정도로만 생각했다. 정신적으로 그리고 육체적으로 너무나 지치고 피폐해진 당시의 내가 생산성을 내서 목표를 세운다는 것 자체가 에너지 소모로 느껴졌다. 사람에게는 아무 생각과 계획이 없을 권리도 있는 것이었다.


돌아오면 여자 나이 28살인데 취업은? 결혼은? 면접관들이 안 좋아할걸. 가서 집도 잡도 못 구하고 금방 돌아올 수도 있어. 체력도 약한 애가 벌어먹고 살 수나 있겠어? 왜 가고 싶은데? 거기 뭐가 있어?


거기 영어 쓰고, 기네스 있고, 사람보다 양이 많대. 몰라, 한국인의 서비스 정신으로 매장에서 팁 1등 서버가 될 거야. 걱정은 고마운데, 난 무슨 일이 있어도 가야 돼.


사실 별로 걱정도 불안도 없었다. 출발 전 준비한 거라고는 약간의 현금과 카페 하는 친구한테서 배운 우유 스팀하는 방법 뿐이었다. 출발 당일 새벽이 되니 잠을 설칠 만큼 두렵기는 하더라. 하지만 나는 하고 싶은 것은 해야만 했다.


비가 자주 오는 만큼 무지개도 자주 볼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오늘로 512일째 더블린에 머물고 있다. 이제는 나름 곱창 없는 생활이 익숙해진 Dubliner가 된 것 같다. 생활 방식, 사고 방식, 사람을 대하는 태도, 좋아하는 맥주, 월급, 헤어스타일, 내 인생 전반의 모든 것이 바뀌었다.


나는 해외 생활이 너무 너무 좋다고 말하고싶지 않다. 사실도 아니고. 그저 한국에서 살아오면서 경험하지 못했던 것을 한꺼번에 받아들이느라 소화력이 부족할 때마다 글을 쓰고 싶었다. 정신없이 뻗어나가는 생각과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나를 붙잡고 이제는 단순한 갭 이어가 아닌, 계획이 있는 인생을 설계하는 기로에 서 있다. 그리고 이것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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