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라라 소소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hiara 라라 May 22. 2024

마음, 당신에게 소소한 선물을

- 라라 소소 31

 일상에서 소소하게 선물을 고를 기회가 종종 생기곤 한다.


 뜬금없이 누군가가 생각나서 선물을 고를 때도 있고 어떤 행사 – 가령 생일이라든지, 기념일이라든지, 마니토를 하고 있다든지 – 가 있어 선물을 고르게 될 때도 있다. 선물을 고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상대에 대해서 잘 알고 있으면 그나마 그 취향을 파악하는데 수월할 수는 있지만 그렇게 잘 아는 사이가 아니거나 상대방을 잘 모르는, 혹은 상대방 모르게 선물을 준비해야 하는 경우에는 때때로 난감해지기도 한다. 나만의 선물 고르는 노하우가 있다면 나는 보통 내가 좋아하는 걸 준비한다. 내가 좋아하는 걸 상대가 마음에 들어 하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고 나는 이런 걸 좋아하니 그 마음을 상대와도 나누고 싶다는 의미가 담겨 있기도 하다. 그렇다고 책도 별로 좋아하지 않고, 책에는 그다지 관심도 없는 상대에게 내가 좋아한다는 이유로 책을 덜컥 선물하지는 않는다. 책이라는 물성은 동일하게 지니고 있지만 상대가 관심을 보일 수 있도록 작은 사이즈라든지 호기심을 끌 수 있도록 표지가 예쁘다든지, 그림이 많고 글이 적다든지, 아니면 정말로 상대가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든지, 혹은 단순하게 상대가 떠올랐다는 그런 이유가 있으면 책을 선물하기도 한다. 상대가 책을 좋아하면 내 선물이 빛을 발할 수도 있는데 그건 또 그거 나름의 고민거리를 던져주기도 한다. 내가 고른 책이 상대가 읽은 책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내가 좋아하는 책과 상대가 좋아하는 책은 다를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만큼 선물을 고르는 데에는 상당한 에너지가 소모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를 위해 선물을 준비하는 건 내가 건넨 무언가에 반응하는 상대방의 표정 때문이 아닐까 싶다. 별거 아닌 작은 선물에도 상대의 활짝 웃는 모습과 정말 좋아하는 모습에 나까지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는 경험은 많이들 해봤을 거다.




 코로나가 시작되고 나서 온라인에서 몇몇 활동을 하게 되었다. 설계할 때는 디자인 툴이나 관련 프로그램을 많이 사용했지만, 그 이후에는 간단하게 서류 관련 프로그램만 사용하고 컴퓨터로 따로 온라인에서 어떤 활동을 하려는 생각을 별로 해 본 적이 없다. 전자기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기도 하고 나만의 공간이 더 중요했기에 일기를 쓰거나 기록을 해도 타인과 온라인상으로는 교류를 거의 하지 않고 지내왔다. 온라인 활동을 하면서 처음 경험하게 된, 온라인 친구 혹은 비대면 친구. 비대면으로도 친구를 사귈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온라인 친구는 오프라인으로 직접 만나지 않아도 되고 서로의 비슷한 관심사만으로 상대를 바라보니까 다른 건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쓸데없이 에너지를 낭비하거나 필요 없는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아도 되니까 좋기도 하다.


 나는 사람을 일부러 멀리하지는 않지만 의식적으로 가까이하지도 않는다. 즐겁게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고 들어와도 내성적인 성향 때문에 소모되는 것이 많아 상당히 지친다. 그런 모습이 겉으로는 표가 잘 나지 않아서 나의 내향성을 모르는 사람이 많기도 하다. 아무튼, 이런 성향의 나에게 온라인 친구는 조금 특별하기도 하고 좋고 편안하기도 했다. 책 얘기를 잔뜩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는데, 책 말고 다른 이런저런 얘기도 온라인 친구는 약간은 일종의 타인이라는 생각이 들어 조금은 덜 부담스럽게 나눌 수 있었다. 이렇게 온라인에서 만난 친구들도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쌓이면서 마음으로 가까워지니까 생각이 나고 선물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도 했다. 어떤 물건을 봤을 때, 어떤 책을 읽었을 때 누군가가 떠올랐다. 작은 선물이지만 손편지와 함께 보내면 직접 표정을 본 건 아니어도 감동하는 마음이 나에게 살며시 전해졌다. 별거 아닌 말 한마디 덕분이겠지. 그리고 내가 생각났다며 보내주는 책에서 그 마음을 또 확인할 수도 있었다. 다만, 이것도 인간관계인지라 내가 상대를 생각하는 마음과 상대가 나를 생각하는 마음이 다르다고 느껴지면 실망하고 상처를 받게 되기도 한다. 나는 내향인답게 한 사람이나 소수의 사람과 마음을 주고받기에 익숙 하지만 상대는 그게 아니어서 다수의 사람에게 골고루 똑같이 마음을 주는 것이 느껴질 때 실망스러운 마음이 들고 맘이 아프기도 했다. 이건 내가 상대에게 내 마음을 주어버렸다는, 오프라인에서와 마찬가지로 온라인에서도 어쩔 수 없이 상대를 진심 어린 친구로 만들었다는 표시가 된다.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적당히, 무엇이든 적당히 마음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그래야 비교하지 않게 되고 상처도 덜 받을 수 있게 된다.




 온라인에서의 인연이 오프라인으로까지 확장되기도 하는데 이건 좀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조금 더 가볍게 나 자신을 숨길 수 있는 온라인에서와는 다르게 실생활에서 보여지는 새로운 나의 모습들이 어색하게 발현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온라인 상에서의 대화만으로 내가 생각하고 상상했던 모습이 실제로 만난 상대와 많이 다르게 느껴진다면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고민스럽기도 하다. 인연을 넓혀 나가는 게 좋은 건지 아닌지에 대한 확신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래서 두렵다. 정말 쓸데없이 에너지를 소모하며 벌어지지 않은 일까지 생각하고 걱정하는 내 모습에 고개가 절레절레 흔들어진다. 나이가 한 살 한 살 늘어나면서 이런 생각이 더 드는지도 모르겠다. 다행히 이런 모든 두려움을 이겨내고 온라인 인연에서 오프라인으로까지 확장된 독서 모임에 하나 참여하고 있다. 한 달에 한 번 책을 읽고 의견을 나누고 다른 책 얘기도 담뿍하고 또 다른 일상을 조곤조곤 나누기도 한다. 많이 웃기도 하는 고마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지난해 마지막 모임에서 예상치 못한 책 선물을 받았다. 한 분이 모임 인원수대로 다 다른 책을 예쁘게 포장해서 책 안의 글귀까지 손으로 직접 작성해서 준비해 주셨다. 우리는 책 글귀를 읽고 선물을 선택했고, 각자에게 딱 필요한, 각자가 읽고 싶었던 또 관심 있던 책을 받게 되었다. 정말 감사했던, 눈이 많이 내리던 그날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나는 올해 첫 모임에 작은 책 선물을 준비했다. 새 책으로 구입하는 데는 부담이 있어, 작년에 읽은 책 중에서 좋았던 책을 각 분야별(에세이, 소설, 고전, 인문 등등)로 선정해서 모임 인원수대로 준비해 갔다. 책 제목은 보여 주지 않고 각 책을 선정한 이유를 설명해 주며 고를 수 있도록 했다. 책을 좋아한다는 공통점 외에는 다 다른 이들의 모임인데, 책을 받아 든 모두의 표정이 밝아지는 모습에 내 마음도 따듯해졌다. 우리는 이제, 모임 때마다 각자의 책장에서 책을 한 권씩 가지고 나온다. 읽고 좋았던 책도 있고, 아직 읽지는 않았는데 좋다고 해서 가지고 있는 책도 있다. 상대가 읽으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책을 가지고 나오기도 한다. 그렇게 소소하게 책 나눔도 하고 있다. 새 책이 아니어도 내가 아직 읽지 않았고, 가지고 있지 않은 책이 생기는 건 무조건 좋고 언제든지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


 지난밤에 친구에게 보낼 작은 소포를 포장했다. 시간이 은근히 많이 걸리고 힘들었는데 이를 받고 기뻐할 친구를 생각하면 한편으로는 벌써부터 기분이 좋아지고 있다.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지는 말자며 손편지도 간단히 썼는데 그럼에도 오늘 뭔가 너무 피곤하다. 하루가 벌써 다 지나가고 있다. 빨리 우체국에 가서 소포를 보내야겠다. 천천히 친구의 우편함으로 도착하게 될 일반 소포로.

매거진의 이전글 + 딱 항아리가 들어갈 정도의 여유로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