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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iara 라라 Jul 03. 2024

헤어짐과 기억 : 툴툴거려도 소중한 가족여행

- 라라 소소 37

내 신앙의 중요한 뿌리인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의 기일이 되면 되도록 성당에서 미사를 드린다. 굉장히 오랜만이라는 기분. 일 년에 한 번씩이니까 오랜만이기는 하다.     


가족들과 떨어져 지내니 미사는 보통 혼자 드리고, 미사를 드린 후에 엄마에게 넌지시 말한다. 할머니, 혹은 할아버지 기일이라 연미사를 드렸다고. 할머니는 내가 고등학생일 때 할아버지는 내가 대학생일 때 돌아가셨다. 여섯 살의 나이 차이만큼 육 년의 간격이 있는데, 할머니가 먼저 돌아가셨으니 너무 일렀다. 몇 년 후면 엄마의 나이. 지금 내 나이보다 어렸을 때 - 젊었을 때라고 해야 할까 - 엄마는 엄마의 엄마를 잃었다. 할머니의 기일은 외가 식구들이 모이는 날을 하루 더 늘려주었다. 음식도 함께 만들고 제사도 지냈다. 신앙이 깊으셨던 할머니를 기억하며 식구들이 모여 함께 미사를 드리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삼촌들은 할머니와 할아버지 기일에 모이기는 했는데 제사를 지내지는 않았다. 제사는 생략하고 미사만 함께 드리는 걸로 바꾸었다. 이제는 모여서 연미사를 드리지도 않는다.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식대로 삼촌들에게는 부모님을, 숙모들에게는 시부모님을 추모한다. 모이지 않고 각자 드리기로 하면서 둘째 삼촌이 연미사를 올린다고는 했는데, 지금도 미사를 드리는지는 잘 모르겠다. 코로나가 시작되고서는 주일 미사도 잘 드리지 않는다고 들었으니 아무래도.      


헤어짐을 아파하고 이생에서는 다시 만날 수 없음에 슬퍼하고 그리워하고.     


그랬을 거다. 모두의 마음이 그랬을 거라 믿는다. 시간이 지나면서 눈에 보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사람들과 급박하거나 조용하게 스며들 듯이 다가오는 현재의 삶에 마음이 먼저 가게 되는 건 어쩔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표면적으로 보이는 모습을 발견할 때면 나는 가끔 외롭고 종종 슬프고 또 자주 서운해지고 만다. 




엄마와 아버지, 오빠와 새언니, 둥이 조카들. 삼 대로 이루어진 가족들은 휴가 중이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제주도로 갔는데, 그 기간은 올해도 여전히 7월 초다. 그건, 여름휴가철 성수기가 시작되기 직전 조금은 저렴하게 또 조금이라도 사람들이 덜 할 때 여유롭게 다녀오겠다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7월 말에 여름 방학을 맞이하는 학생들은 보통 7월 초부터 중순까지 기말고사를 본다. 고로, 시험을 치르는 학생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나는 그 시기에 휴가를 갈 수 없다는 얘기가 된다.      


가족여행을 갈 때마다 날짜를 말하며 이때 시간을 낼 수 있는지 내게 물어본다. 다만 내가 그때 중요한 일이 있거나 변경하기 힘든 일정으로 시간을 조정하지 못해도 가족여행의 날짜 변동이 있지는 않다. 가끔 가족들은 이렇게 물어보는 게 나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미혼의 프리랜서라고 해서 아무 때나 시간을 비우고 모든 일정을 조정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프리랜서의 일도 나를 고용해 주는 이가 있어야 수입이 있는 거다. 일정을 자꾸 바꾼다면 누가 좋아하겠는가. 게다가 나는 아무도 돈을 주지 않더라도 스스로 하고 싶어서 자신을 얽매가며 하고 있는 일들도 여럿 있다. 오빠와 새언니는 휴가를 비교적 원하는 대로 낼 수가 있고, 엄마와 아버지는 조카들의 주 양육자시니 조카들과 늘 함께 있어서 시간에 크게 구애를 받지 않으신다. 나만 맞추면 되는 일. 내가 가족여행에서 빠지면 간단한 일.     



작년에는 서운한 마음이 많이 올라왔다. 이 년을 연속으로 제주도에 가지 못해서 속상했다. 나도 제주도에 가고 싶었다. 요즘에 제주도는 많이들 자주 가는 여행지 중의 하나인데 나는 천천히 여행해 본 적이 없다. 가족들과 여행을 가면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없으니 편하지는 않다. 배가 고프지 않아도 끼니마다 식사를 다 해야 하고, 조카들을 챙기고 놀아주느라 에너지도 많이 소모된다. 여유롭게 책을 읽고 싶어도 가족들과 함께 있는 낮에는 힘들다. 하루가 마무리되고 나 혼자 남게 되면 그제야 평온한데 낮에 소모한 에너지를 충전하기만도 밤시간은 너무 짧다. 혼자 쓰는 숙소를 잡지 못하면 이마저도 쉽지가 않아 진다. 게다가 한 번쯤은 아버지와 충돌이 생기기까지 하는데 애써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행동해야 하고 나빠진 기분을 되돌리도록 부단히 애써야 한다. 아무리 짧은 여행을 다녀와도 그다음 날은 지쳐 쓰러진다. 며칠은 쉬고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면서 혼자 있음에 감사하고 행복해한다. 별로 좋을 게 없고, 오히려 부정적인 측면만 나열하면서, 이러면서 왜 가족여행에 굳이 참여하려고 하냐면, 나만 소외감 느끼고 싶지 않아서,라는 간단한 대답으로만 설명되지 않는 다른 이유들이 있다.     


소외감 느끼고 싶지 않다. 그건 사실이다.     


가족들이 올리는 여행 사진을 실시간으로 보는 건 재미있는 일이다. 둥이 조카들이 요즘 무표정으로 사진을 찍는 경우가 많은데 표정이 없는 아이들이 아니니까 둥이들의 생생한 표정이 궁금해진다. 내가 가보지 못한 곳의 풍경과 카페와 식사가 궁금하다. 그곳에서 어떤 생각을 하게 될지 조카들과 어떤 대화를 나누게 될지 기대되는데 나는 그 여행에 속해 있지 않으니 기대감에 충족이 되지 않는다.     




오빠와 내가 어릴 적에 우리 집에는 차가 없었다. 텐트와 캠핑 도구들을 이고 지고 산으로 강으로 많이 다녔다. 자세히 기억나진 않지만 앨범 속 오래된 사진을 보면 새까맣고 통통한 남자아이와 새까맣고 작은 여자아이 둘이 물가에서 텐트에서 신나게 놀고 있다. 오빠는 그 기억이 너무 좋았다고 한다. 그래서 먼 곳으로 가지 않더라도 또 호화로운 여행이 아니더라도 틈틈이 가족들이 함께 많은 곳을 돌어 다니며 둥이들에게 추억을 쌓아주고 싶어 한다.     


둥이들이 아직 어리기 때문에 가족여행이 더 소중하다. 지금은 라라 고모와 책도 읽고 재미있게 놀고 함께 하는 걸 좋아하지만 몇 년이 지나고, 조금 더 자라면 고모보다는 또래 친구들이 더 소중할 때가 올 거라는 걸 알고 있다. 나도 그런 시간을 지났다.     




나의 어린 시절의 기억을 독차지하고 있는 시골은 설악산이다. 강원도 분은 아니시지만 외조부모님께서는 내가 초등학교에 다니는 동안 강원도 오색에 사셨다. 강원도가 가까운 거리는 아닌데 또 그렇게 먼 거리도 아니어서 자주 가서 며칠씩 지내다가 왔고, 방학 때에는 몇 주 동안 머물기도 했다. 내가 초등학생이었으니, 사촌 동생들도 어렸고, 심지어 막내 사촌 동생은 아기였다. 삼촌들도 숙모들도 모두 젊은 시절이었다. 지금 사진을 보면 엄마와 아버지도 젊었다. 어쩌면 어렸다고도 말할 수 있을 정도다. 산에서도 놀고 산에서 흐르는 물에서도 놀고 온천에서도 놀고 바다에 가기도 하고 장터에 나가서 구경을 하기도 하고 바다가 보이는 바위에서 바로 잡은 싱싱한 회를 먹기도 했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하는 작은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기도 했고, 스테인드글라스로 들어오는 햇살에 비친 할머니의 기도 손을 오래도록 쳐다보기도 했다. 아직도 많은 게 생생하게 기억난다. 외가 식구들이 모두 모여 편안하고도 즐겁게 함께 시간을 보낸 유일한 때였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주신 사랑과 보살핌이 지금도 따스히 느껴진다.     


외조부모님을 잊을 수 없다. 그때의 기억을 잊을 수 없다.     


둥이 조카들에게는 우리 엄마와 아버지가 친조부모님이다. 나는 고모다. 고모가 결혼을 하지 않았으니 다른 식구들은 없다. 나에게는 없는 친가의 따스함을 둥이 조카들에게 남겨주고 싶다. 외가는 멀리 있으니, 소소하게 생활에서 함께 할 수 있는 즐거움과 행복을 둥이들과 함께 하고 싶다. 점점 나이 들어가는 부모님과의 시간도 투덜투덜하면서도 나중에 생각하면 너무 소중할 것임을 알고 있기에 가족여행이 더 소중하다.     


언젠가 헤어짐이 있을 텐데, 그 헤어짐 이후에도 슬픔과 아픔이 오래도록 지속되더라도 되돌아보았을 때 미소가 있고, 따스함이 있고, 행복이 있었음을 그래서 감사한 마음이 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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